표주박으로 바다를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130] 以

등록 2015.05.15 14:13수정 2015.05.1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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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 써 이(以)는 사람이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뭔가를 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써 이(以)는 사람이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뭔가를 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 漢典


어릴 적, 고향집에서 두부를 만들 때 간수 대용으로 바닷물을 사용했는데, 바닷가에 가서 바닷물을 퍼 오는 일은 늘 내 몫이었다. 부둣가까지 걸어가 바가지로 바닷물을 퍼서 항아리에 담아 집까지 출렁이며 나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고향 바다를 다 퍼다 나르면 몇 항아리나 될까" 하는 철없던 생각이 기억난다.

평생을 걸고 무언가 거대한 일을 한다고 하지만, 그 일생의 대업조차도 거대한 바닷물 중의 한 항아리를 길어오는 정도에 불과한 일일 것이다. 이를 표주박으로 바다를 헤아린다는 의미로 '여측(蠡測)'이라고 하는데, 논문 제목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거대한 학문의 세계, 그 일단을 헤아렸을 뿐이라는 겸손이 묻어나는 말이다.

원래 이 말은 동박삭(東方朔)에 관한 이야기가 실린 <한서(漢書)>에 나온다. 삼천 년 만에 한번 열매를 맺는다는 서왕모의 반도(蟠桃) 복숭아를 세 개나 훔쳐 먹은 동박삭은 삼천갑자(三千甲子), 1만 8천 년을 살았다고 한다.

동방삭이 뛰어난 능력과 지혜를 지녔음에도 시랑(侍郞)이라는 낮은 벼슬에 머물러 있자, 한 손님이 찾아와 전국시대 소진과 장의의 벼슬과 비교하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리자, 동박삭은 "대롱으로 하늘을 보고,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재려하며, 풀줄기로 종을 치려 하니, 어찌 하늘의 뜻을 꿰뚫고, 바다의 이치를 알고, 종소리의 깊이를 알겠느냐(以管窥天,以蠡測海,以莛撞鐘, 岂能通其條貫,考其文理,發其音聲哉)!"고 대답했다.

시대와 상황이 달라진 것을 모르고 편협하게 벼슬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는 의미이자, 손님의 식견이 부족함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여기에서 표주박으로 바다를 잰다는 이여측해, 여측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고, 이 여측이란 말은 늘 어릴 적 두부 만들던 날을 떠올리게 한다. 

써 이(以, yǐ)는 사람이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뭔가를 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갑골문이나 소전의 형태를 두고 그 도구의 모양이 입, 탯줄, 쟁기라는 각기 다른 견해가 있지만, 중국은 대체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로써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서 '~로써'의 의미가 생겨난 걸로 해석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구슬과 구슬 사이를 꿰는 것은 가느다란 실이다. 그 실이 없으면 구슬은 흩어질 테니 결코 보배가 될 수 없다. 중국 고전에 자주 등장하는 써 이(以)는 구슬을 꿰는 실이자 도구인 셈이다. 비록 주연은 아니지만 중요한 개념들 사이에서 소중한 조연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인간은 도구적 존재이다. 도구는 단순히 수단으로서의 공구나 사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 윤리, 법, 국가 등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사람마다 즐겨 사용하는 도구는 저마다 다르다. 중국 고전에서는 저마다 다른 도구라도, 모두 이(以)라는 손잡이를 달아야 제대로 쓸 수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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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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