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김용주(김무성 대표 부친)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의심의 여지 없다" 김용주(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부친)씨의 친일행적과 근거자료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이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열렸다.
권우성
박한용 민문연 교육홍보실장은 "김 전 회장은 친일단체 간부로서 일제 식민통치 및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을 요청했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1941년 '국민총력경상북도연맹'의 평의원에 임명돼 활동했는데, 이 연맹은 조선 민중을 통제하고 전시 동원하기 위해 조직된 최대 관변 통제기구로 알려져있다.
민문연 측은 이어 김 전 회장의 회고록과 평전에도 오류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준식 연구위원은 "회고록과 평전을 사료 비판 측면에서 검토한 결과 지어내거나 과장된 얘기 등 오류가 많았다"며 "여기에는 김용주씨를 항일 지사인 것처럼 묘사하는 등 근거 없는 내용을 넣었지만, 그에게 불리한 친일 행적은 대부분 감춰졌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특히 "회고록과 평전에서 김 전 회장이 1933년 영흥 학교를 인수해 경영한 것처럼 썼으나, 이는 연도부터 틀린 명백한 사실관계 오류"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1936년 2월 28일 자, <조선일보> 1936년 3월 25일 자 등 기사를 비교해 볼 때, 학교를 인수한 것은 1936년이 정확하다는 것.
민문연 측은 이어 회고록 중 '해방 전년인 1944년 말 조선인 8명 총살 계획 1호에 포항 김용주가 있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사실"이라며 "김용주를 애국자로 만들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일제가 미군의 한반도 진주를 앞두고 수립했다는 '조선인 유력자 살해 계획'의 실재는 객관적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민문연 측은 그러나 "우리는 친일파 후손을 추적하거나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며 연좌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무성 대표가 선대의 친일행위를 부인하며, 선친을 애국자로 만드는 조직적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라는 게 검증 작업의 직접적 계기다. 박한용 홍보실장은 이날 "김용주씨는 막강한 재력에 기반을 둔 경북 지역의 특급 친일파"라고 정의했다.
"김용주, 친일인명사전에 없어" vs. "잠시 보류했을 뿐, 친일사전 수록 대상" 이날 자료를 공개·발표한 역사단체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정신을 이어받아 1991년 설립된 단체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펴냈고, 2012년에는 역사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제작 배포하기도 했다.
앞서 김무성 대표는 부친의 이런 친일 행적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김 대표는 지난 2013년 부친의 친일 의혹이 일자 "경북도회 의원들은 당시 조선인 농민 편에 서서 조선총독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했다", "부친은 개인 재산을 털어 조선인 한글교육 야학을 개설하는 등 애국적 삶을 살았으며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현재 김 전 회장은 민문연이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돼 있지 않다. 같은 이름 '김용주'가 사전에 수록돼 있지만, 민문연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한국이 아닌 만주에서 활동한 친일파로서 김 전 회장과는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민문연 측은 김 대표 주장을 재반박했다. 박수현 연구실장은 "김 전 회장이 친일인명사전에서 빠졌던 이유는 사전 편집 당시 추가조사가 필요해 잠시 보류했던 것뿐"이라며 "김 전 회장은 당연히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동명이인이 많지만, 활동지가 포항·영일이고 창씨명이 '가네다 류슈'인 사람은 김 대표 부친뿐"이라며 "향후 개정판이 나올 때는 수록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민문연 측은 이날 "김무성 대표는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할 국회의원으로서, 또 여당 대표이자 잠재적인 대선 주자로서 선친의 친일 행적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부친의 친일 행적을 은폐·세탁하고 애국자로 포장한 기만행위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아래는 민문연 측이 밝힌 김 전 회장의 신상 정보와 연도별 주요 친일 행적이다. 더 자세한 자료는
민문연 홈페이지(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김용주 연도별 친일 행적 |
※ 김용주 (한자: 金龍周, 창씨명: 金田龍周)
- 원적지 및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면 신관리 - 활동지 : 경상북도 영일군 포항읍(1923년 이후 정착) - 생몰년 : 1905.7.29.∼1985.1.27. - 창씨명 : 金田龍周(가네다 류슈)
※ '해촌 김용주' 연도별 주요 친일 행적
▲ 1937년 5월 10일 경상북도 도회의원(영일군, 민선) - 매일신보 1937.5.12. 석간 1면, 조선총독부관보 1937.7.6
▲ 1940년 2월 24일 제12회 경상북도 도회 회의 "충량한 황국신민으로서 내선일체의 이상에 향하고 있음으로 옛날과 같이 불온사상을 가진 자는 한명도 있지 않으므로 반도교육에 일대 전환할 시기인 줄 생각한다" 발언 – 매일신보 1940.2.26. 석간 3면
▲ 1941년 5월 17일 국민총력경상북도수산연맹 이사 선임 - 매일신보 1941.5.20. 석간 3면
▲ 1941년 7월 16일 국민총력경상북도연맹 평의원 임명 - 매일신보 1941.7.18. 慶尙每新, 조간 3면
▲ 1941년 12월 7일 조선임전보국단 경상북도지부 결성식에서 상임이사 선임,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 제안 - 매일신보 1941.11.24. 조간 3면 ; 1941.12.9. 석간 3면
▲ 1943년 9월 8일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라는 제목으로 징병제실시 감사 결의 선양 광고 게재 – 아사히신문(남선판) 1943.9.8. 4면 중선판 1943.9.8. 4면
▲ 1944년 7월 9일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이라는 비행기 헌납 독려 기명 광고 게재 – 아사히신문(남선판) 1944.7.9. 4면
▲ 1944년 10월 2일 징병제 시행 감사, 적국(敵國) 미영 격멸 결의선양 전선공직자대회 참가해 발언 "먼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內鮮一體:조선과 일본이 하나라는 뜻)화를 꾀해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로 생각" - 와세다 대학 소장 기록(사무국, 1944.1.28.), 대회기록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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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부친, 조선인 강제징병 독려·군용기 헌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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