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바리스타가 전합니다 "쓰지 않아, 인생도 커피도"

난민의 일자리·배움터 카페 대학로 '내일의 커피'... "재능있고 매력적인 친구들"

등록 2015.09.30 11:40수정 2015.09.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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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 대학로에 있는 카페 '내일의 커피'. 아프리카 난민들을 지원하는 이 카페의 모토는 '쓰지 않을거야 인생도 커피도'.

서울 대학로에 있는 카페 '내일의 커피'. 아프리카 난민들을 지원하는 이 카페의 모토는 '쓰지 않을거야 인생도 커피도'. ⓒ 안홍기


"쓰지 않을거야 인생도 커피도."

머그잔에 쓰인 대로였다. 커피는 쓰지 않고 아프리카 커피 특유의 과일향에 단맛의 여운이 느껴졌다. '달큰한 커피'라지만 서울 무교동 다동커피의 한국식 손흘림보단 진하면서 향이 강하다.

메뉴에 강볶음 커피는 없었다. 드립커피는 '달큰한 드립', '향이 풍부한 드립', '쌉쌀한 드립'으로 분류했고, 아메리카노나 카페라떼 같은 에스프레소 메뉴들도 여느 프랜차이즈 커피들과는 달리 쓴맛이 적고 커피의 향을 살리는 데에 주안점을 뒀다. 

왜 이렇게 쓴 맛을 '배척'할까.

"난민들, 특히 아프리카 난민 친구들은 고향에서 또 지금 있는 한국에서도 인생의 쓴맛만 너무 많이 봐 왔어요. 난민 친구들의 내일이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고 할까요. 맛있는 커피 한 잔으로 난민친구들에게도 좋은 내일이 온다면 우리 사회의 내일도 좋은 내일이 될 거라고 믿어요."

a  아프리카 난민들을 지원하는 '내일의 커피'에서 사장 문준석씨와 바리스타 C씨가  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프리카 난민들을 지원하는 '내일의 커피'에서 사장 문준석씨와 바리스타 C씨가 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안홍기


"아프리카 난민들의 재능·매력, 여기서도 '팔린다'"

서울 동숭동, 대학로 쇳대박물관 옆 골목 안 '내일의 커피'는 생명의 위협을 받아 한국에 몸을 의탁한 아프리카 난민, 난민 신청자들의 일터다. 커피 만드는 법, 손님 대하는 법, 한국어 등을 익히는 배움터이기도 하다. 난민 친구들의 향기로운 내일을 위해 함께 일해온 지 1년이 다 돼 간다.


대기업 사원 6년차에 사표를 쓰고 대학로에서 카페를 시작한 문준석 대표가 '난민을 돕는 비즈니스'를 시작한 건 '아프리카 난민의 재발견'이 계기다. 교회와 난민지원단체에서 난민들의 정착을 돕는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그들과 친구가 됐다. 그때까지도 '고향을 떠난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재밌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프리카 난민들이 재능있고 매력적인 친구들이란 걸 알게 됐다. 

"한번은 교회에서 바자회 비슷한 걸 열었는데 우리가 돕는 난민들이 아프리카의 음식도 만들고 그림을 그린 머그컵도 팔고 노래도 불렀어요. 음식이랑 머그컵이 다 팔렸고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이 사람들의 재능이 한국에서도 팔리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죠. 비즈니스로도 이건 되겠다고 생각했고, 잘 되면 난민들에게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프리카 난민들과 함께 하고 싶은 건 많았다. 아프리카 음식점도 잘 될 거라 생각한 것 중 하나였다. 하지만 비즈니스보다 더 중요한 것, 아프리카 사람들과 함께 일하려는 이유, 즉 '일의 목적'을 곱씹다 카페로 방향을 잡았다.

"아프리카 음식 맛있죠. 서울에 잘 되고 있는 곳도 있고요. 하지만 음식점을 하면 아프리카 난민들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데에 과연 도움이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하는 목적은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에 있거든요. 커피가 그 목적에 가장 맞다고 봤어요. 커피를 내리고 마시다보면 자연스레 얘기하게 되고 생각을 나누게 되잖아요."

피부가 검은 아프리카 난민들에 대한 편견. 즉, 지독하게 불쌍하다든지, 문명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든지, 할 수 있는 건 육체노동밖에 없을 거라는 등의 편견을 깨는 게 이 '내일의 커피'가 문을 연 목적이란 얘기다. 아프리카 난민 바리스타가 아프리카에서 온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는, '불쌍한 난민'이 아니라 재능 있고 현대적인 난민들의 본 모습을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a  서울 대학로 '내일의 커피'에서 아프리카 출신 난민 신청자 C씨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서울 대학로 '내일의 커피'에서 아프리카 출신 난민 신청자 C씨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 안홍기


a  아프리카 난민들을 지원하는 '내일의 커피'에서 난민신청자 C씨가 일하고 있다.

아프리카 난민들을 지원하는 '내일의 커피'에서 난민신청자 C씨가 일하고 있다. ⓒ 안홍기


"독일·프랑스 시리아 난민수용 부러워"

현재 매장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C씨는 이같은 구상에 딱 맞는 인재다. 상쾌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고 커피를 내리는 모습도 능숙하다. 하지만 난민인정 신청자 상태라서 카메라를 든 기자 앞에선 다소 조심하는 분위기다. 두 달 전까지 같이 일했던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난민 프란신씨는 사정이 있어 가족과 함께 다른 나라로 떠났다. 

아직 카페로서의 내일의 커피가 단단히 자리잡지는 못했다는 생각에 사업확장 계획은 없다. 하지만 난민친구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만은 분명했다. 문 대표는 "바리스타뿐 아니라 빵굽기 같은, 내일의 커피가 할 수 있는 직업군을 좀 넓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한답시고 시작한 사업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고 외부의 지원으로 명맥을 이어가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카페 사장의 퇴직금과 크라우드 펀딩 자금으로 시작한 내일의 커피는 어떨까.

a  아프리카 난민들을 지원하는 '내일의 커피'에서 사장 문준석씨.

아프리카 난민들을 지원하는 '내일의 커피'에서 사장 문준석씨. ⓒ 안홍기

"매출은 계속 늘고 있어요. 더뎌서 그렇지, 올라가고 있어요."

일단 다행이다. 하지만 '더디다'는 말에서 지금까지의 경영이 녹록지 않았다는 넋두리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 33세 카페 사장은 어떻게 하면 더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최근 시리아 난민 사태와 이들을 받아들이는 유럽 각국의 서로 다른 정책, 터키 해변에 죽은 채 떠 밀려온 세 살 아이의 사진으로 한국에서도 난민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시리아 난민들을 받아들인다는 소식에 참 부러웠어요. 난민인정률(최근 5년간 3.6%)이 너무 낮은 게 문제죠. 하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아도 한국사회에 정착하기가 너무 어려운 게 더 문제인 것 같아요.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요, 정부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것도 너무 적어요. 가끔씩은 난민친구들이 한국이 아니라 난민정착제도가 잘 된 나라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사실 우리는 같은 민족인 탈북자들도 사회 구성원으로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잖아요."

내일의 커피에 있는 책들도 난민이나 아프리카 관련 내용이다. 그중에 한 권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내 이름은 욤비>(출판사 이후)를 꼽는다. 콩고민주공화국 정보국 직원으로 조셉 카비라 정권의 비리를 야당에 유출했다 체포, 탈출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온 욤비 토나씨의 이야기다. 난민 인정을 받기까지 6년간, 난민이 처한 상황을 간접경험할 수 있고 한국 정부의 난민 관련 제도까지도 알 수 있는, 재밌고도 유익한 책이다.

a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카페 서울 대학로 '내일의 커피'.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카페 서울 대학로 '내일의 커피'. ⓒ 안홍기



○ 편집ㅣ박혜경 기자

#내일의커피 #아프리카난민 #대학로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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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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