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앞 서성이는 공무원 "보기만 해도 좋아서"

[광명동굴, 폐광의 기적을 만든 사람들 2] 정광해 공원녹지과장 ②

등록 2015.10.16 09:47수정 2015.10.1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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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7일, 양기대 시장이 폐광을 처음 방문했다. 후레시를 들고 있는 사람이 정광해 과장 ⓒ 윤한영


정광해 공원녹지과장 ①에서 이어집니다

2010년 8월 7일, 취임 한 달을 넘긴 양기대 시장은 정광해 과장의 안내로 폐광을 찾았다. 양 시장은 자신의 공약 '가학광산 개발'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양 시장은 노란색 비옷을 입고, 헬멧을 썼다. 무릎까지 오는 장화도 신었다.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는 폐광은 한여름인데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서늘했다. 바닥은 폐광에서 나온 흙과 지하암반수가 뒤섞여 질척거렸다. 동굴 천정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동굴 안은 습도가 엄청나게 높았다.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새우젓 비린내가 진동했다.

"역시 기자 출신은 다르더라고. 시장님이 거길 가보고 '이거 되겠다'고 하신 거야.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거지. 검토보고를 하라고 지시를 하셨지, 매입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말이야."

그때부터 정 과장은 바빠졌다. 폐광 실소유자인 김기원씨를 만나 매매 의사를 확인하고, 감정평가를 의뢰하면서 매매가격을 확인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해 가을, 광명시는 2011년 예산에 폐광 매입 예산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2011년 1월 26일에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폐광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폐광 매입부터 개발까지, 쉴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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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해 공원녹지과장 ⓒ 윤한영


폐광 매입 과정에서 매매를 망설이는 김기원씨를 설득한 사람도 정광해 과장이었다. 김씨는 평소에도 광명시에서 가학광산을 사들여 공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막상 계약 체결단계가 되자 망설였다. 김씨에게 있어 폐광은 그의 신산했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 재산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 시장은 폐광의 자산 가치와 개발 가치를 주목하고 사들였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개발계획은 없는 상태였다. 물론 하고 싶은 것은 있었다. 양 시장은 3가지를 꼽았다. 동굴 공연장(동굴 예술의 전당), 와인동굴 그리고 코끼리열차. 이후 이 세 가지는 폐광 개발 방향을 설정하는 기준이 됐다.

폐광을 사들이고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안전진단이었다. 폐광은 금속광산으로 내부가 단단한 바위(경암)으로 이뤄져 절대로 무너질 염려가 없었지만,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했다. 1912년, 채굴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103년 동안 광명동굴은 단 한 번도 내부가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내부가 단단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40여 년 동안 버려졌기 때문에 풍화작용으로 동굴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동굴 내부가 단단한 바위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이후 동굴확장 공사를 하면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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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에서 빼낸 새우젓 드럼통은 녹이 심하게 슬어 있었다. ⓒ 윤한영


폐광에 보관했던 새우젓 드럼통도 빼냈다. 그때만 해도 동굴 안에서 새우젓 비린내가 진동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관광용으로 새롭게 조성한 새우젓 저장고에만 추억처럼 새우젓 비린내가 옅게 감돌고 있을 뿐이다. 이 새우젓 저장고는 한때 동굴에서 새우젓을 저장했던 역사를 관광객들에게 알리기 위해 조성했다.

폐광 개발을 놓고 동굴이 있는 지역을 찾아다니는 '벤치마킹'이 이어졌다. 양기대 시장은 정 과장을 포함한 공무원들과 함께 자수정동굴과 삼척의 삼탄아트마인, 독일의 졸페라인, 미국의 캘리코 은광촌, 폴란드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등을 찾아다니면서 동굴개발 계획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2011년 3월부터 4월까지 광명시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폐광 견학을 실시했다. 폐광을 개발하려면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함께 다양한 아이디어 수렴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 과장이 이들을 안내하면서 현장을 설명했다. 이때만 해도 폐광 개발에 부정적인 공무원들이 많았다.

새우젓 냄새 진동하던 폐광에 사람들이 몰려오던 날

이후 폐광을 찾는 외부 인사들이 늘었다. 한국광해관리공단 경인지사에서 폐광을 방문했고, 동굴학회장 등도 찾아왔다. 예전에 광산에서 일하던 광산 근로자들도 현장을 방문해 양기대 시장과 함께 폐광을 둘러보았다. 정 과장이 그들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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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정광해 공원녹지과장. ⓒ 윤한영


2011년 7월에는 황준기 경기관광공사 대표가 동굴을 방문했다. 관광지 개발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경기관광공사가 광명시와 폐광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은 2012년 3월 20일이다. 이날 김문수 경기지사는 동굴에서 경기도 실, 국장 회의를 열면서 동굴 개발에 힘을 실어주었다.

2011년 8월 22일, 폐광은 '가학광산 동굴'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오전 10시와 오후 2시, 2차례 공개된 가학광산 동굴은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뿐이 아니다. 10월 31일에는 전국 최초로 동굴음악회가 열려 동굴이 뛰어난 공연공간이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국내 최초로 동굴 공연장인 '동굴 예술의 전당'을 조성하는 계기가 됐다.

2011년 8월 22일부터 12월 31일까지 동굴을 방문한 사람은 1만7천여 명이었다. 동굴이 수도권에서 주목받는 관광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정 과장은 가학광산 동굴이 광명시가 아닌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지가 되려면 개발을 전담하는 부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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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8일, 양기대 광명시장이 광명동굴 전 소유자 김기원씨와 광명동굴에서 만났다. 정광해 과장도 함께 했다. ⓒ 윤한영


양 시장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양 시장과 광명시청 공무원들은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동굴 개발을 전담하는 '테마개발과'를 신설하기로 결정한다.

2012년 9월, 조직개편을 통해 테마개발과가 신설됐다. 1999년 광명시청에서 최초로 폐광 탐험에 나섰던 최봉섭 과장이 테마개발과장으로 발탁되면서 폐광 개발은 탄력을 받게 됐다. 테마개발과에는 광명시청에서 엘리트로 꼽히는 공무원들이 배치됐다.

그렇다고 정 과장이 광명동굴 개발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공원녹지과와 테마개발과는 직·간접적으로 업무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원관리가 그랬다.

"집사람에게 미안하지만, 보고만 있어도 뿌듯"

정 과장은 지금도 여전히 토요일에는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선다. 양기대 시장과 김선태 미래전략실장과 함께 광명시 일대의 산을 등산하고 광명동굴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양 시장은 2010년 7월, 취임한 뒤 지금까지 매주 토요일 새벽마다 이들과 등산을 하면서 광명시 현장과 현안을 체크하고 있다.

양 시장이 취임해 광명동굴 개발을 시작한 이후 그는 휴일에도 제대로 쉰 적이 없다. 공무원이라면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면 퇴근하고, 휴일에는 꼬박꼬박 쉬는 '철밥통'을 가진 '복지부동'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실제로 그런 공무원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정 과장의 주장이다. 이른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것은 당연하고, 휴일에도 출근하는 날들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생활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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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해 공원녹지과장 ⓒ 윤한영


"우리 집사람은 광명동굴에 한 번도 오지 않았어요. (광명동굴은) 얘기도 듣기 싫대요. 내가 너무 그 일에만 매달려서 고생을 하는 거 같으니까 싫었나봐. 집사람한테 미안하지.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하고 일만 했으니."

정 과장은 올해 광명동굴이 유료로 전환되면서 고작 6개월 만에 74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오는 것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느꼈단다. 새우젓 비린내가 진동하던 버려진 폐광이 관광지로 변화한 것도 놀라운데, 주말이면 광명동굴 진입로가 꽉꽉 막힐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진짜 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동굴 개발 초기에 업무를 담당했던 것에도 자부심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동굴 개발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만 하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만 있어도 좋았어요.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거야. 성공했구나 하는 생각을 한 거지. 고생한 보람이 있는 거지."

그래서 그는 주말에도, 휴일에도 자꾸 광명동굴을 찾게 된단다.
#광명동굴 #정광해 #양기대 #광명시장 #폐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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