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에 돈 내고 오겠어? 해보니 달랐다

[광명동굴, 폐광의 기적을 만든 사람들 3] 최봉섭 테마개발과장 ②

등록 2015.10.20 15:53수정 2015.10.2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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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섭 테마개발과장 ①에서 이어집니다

최 과장은 정책개발팀에서만 10년 이상 일한 정책통이다. 그런 그가 테마개발과장이 된 것은 책상 앞을 떠나 동굴 개발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말이 발탁이지 실제로는 고생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이때만 해도 광명시청 공무원들 사이에서 폐광 개발은 예산만 쏟아 붓는 무모한 짓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폐광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만 해도 우호적이던 광명시의회 역시 반대 입장으로 돌아서서 관련 예산을 삭감하기 일쑤였다.

폐광 개발은 쉽지 않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양 시장은 시의회의 반대나 일부 공무원들의 반대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폐광 개발은 이미 시작되었고, 성공해야 했다. 그 몫을 담당한 사람이 최 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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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섭 과장 ⓒ 윤한영


그가 테마개발과장이 된 뒤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은 동굴 공연장인 '동굴 예술의 전당' 공사였다. 예술의 전당이 들어서는 자리가 바로 1999년에 그가 동굴 탐험을 나서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다. 예술의 전당 조성공사는 김원곤 동굴시설팀장이 담당했다.

최 과장은 예술의 전당 공사현장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계를 탔다. 그것을 타고 30미터 높이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다리가 저절로 후들거려 주저앉을 것만 같더란다.

"비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해도 다리가 떨리는데 그 높은 곳에서 착암기를 들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대단하다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옛날에 이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 생각이 나더군요."


거대한 동공 내부를 확장하고, 공연 무대를 조성하고, 관람석을 배치하는 공사는 더디게 진행됐다. 폐광이 단단한 바위로 구성돼 있어 공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것은 갱도가 좁아서 포클레인과 같은 대형 중기차가 들어올 수 없다는 점. 공사를 사람 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밀폐된 공간이라는 한계도 있었다. 돌가루와 먼지가 날리고, 엄청난 소음이 폐광 안을 가득 채웠다.

양 시장은 공사현장을 수시로 찾아 공사 진척 상황을 확인했다. 최 과장 역시 공사현장을 지켰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점점 동굴 모습이 달라지는 거예요. 어라, 이것 봐라, 이거 진짜 그림이 되네.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죠. 테마개발과는 시장님이 그린 (동굴 개발)밑그림을 실현시키면서 현실화한 부서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최 과장은 광명동굴 성공 비결을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리지 않고 몇 가지 테마를 특화시켜 개발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양 시장은 폐광 개발을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콘덴츠를 채워 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게 주효했다는 것이 최 과장의 설명이다.

광명동굴 개발 본격화 한 동굴 예술의 전당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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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9일, 동굴 예술의 전당이 문을 열었다. ⓒ 윤한영


"동굴 예술의 전당은 개관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어요. 동굴에서 처음으로 팝페라 공연을 듣는데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것이 감동 그 자체였어요. 여기에서 뮤지컬 공연을 하고 패션쇼를 하니 다들 놀랐던 겁니다. 그것 하나만 갖고도 우리 동굴이 확실하게 떴던 거 같아요."

동굴 예술의 전당 개관은 광명동굴 개발을 본격화하는 기폭제가 됐다. 최 과장을 포함한 테마개발과 직원들의 일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날이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좁은 수평갱도를 넓혀 관광객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게 만드는 공사가 이어졌다. 자연동굴이 아닌 광산이라는 장점을 이용해서 새로운 콘덴츠를 넣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는 국내외 벤치마킹도 많이 다녔다. 가는 곳마다 광명동굴과 비교하면서 저걸 어떤 형태로 우리 동굴에 접목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또 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광명동굴' 밖에 없었다.

해외로 벤치마킹을 다니면서 최 과장은 광명동굴의 장점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천연동굴은 자연자원이라 손을 댈 수 없어 보존에 방점을 찍어야하지만 폐광인 광명동굴은 다양한 콘덴츠를 넣고 싶은 대로 마음껏 넣을 수 있다. 게다가 금속광산이라 내부가 단단해 절대로 무너질 염려가 없다. 최 과장은 그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다양한 콘덴츠를 동굴에 넣었고, 그게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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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동굴을 찾는 관광객들. 4월 4일, 유료전환 이후 6개월 만에 74만 명이 광명동굴을 찾았다. ⓒ 윤한영


광명동굴을 찾는 관광객은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여름이면 광명동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내부 온도가 1년 내내 12도이니, 최고의 여름 피서지가 된 것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광명동굴을 찾은 누적 방문객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2014년에만 광명동굴을 찾은 방문자는 48만 명이었다.

폐광 개발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이 확인됐다. 양 시장은 최초 계획대로 광명동굴 입장을 유료로 전환할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물론 혼자 내린 결론은 아니다. 양 시장은 광명시청 공무원들과 오랜 시간에 걸쳐 토론했다. 토론을 하고 또 하면서 의견 차이를 좁혀 결론을 내는 것이 양 시장의 정책 결정 방식이다.

최 과장은 유료 전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처음 유료화를 생각한 것은 50만 명 정도가 동굴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이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입장료를 받아도 성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거죠. 그렇다고 그 상태로 유료로 전환할 수 없어서 시장님께 건의를 했어요. 우리가 매년 겨울에는 문을 닫고 내부를 정비하고 3월말이나 4월초에 재개방을 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재개장 시기를 4월초로 잡고 겨울 동안 유료 전환 준비를 해야 된다고 말이죠."

유료 전환 역시 쉽지 않았다. 내부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누가 폐광을 돈을 내고 보러 오겠느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지금까지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폐광을 찾은 것은 무료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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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동굴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 ⓒ 윤한영


과연 광명동굴이 입장료를 받는다면 그만한 값어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최 과장은 관광객들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최 과장은 테마개발과 직원들과 함께 유료 전환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시행주체가 지방자치단체니 입장료를 받는 근거가 되는 조례 제정이 필요했다. 2014년 9월, 광명시는 광명시의회에 광명동굴 관람 유료 전환을 위해 '광명동굴 관리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상정했다. 조례는 9월 18일에 열린 광명시의회 복지위원회에서 부결된다. 이 조례안은 10월 31일에야 겨우 통과됐다.

최 과장은 조례안 심사 때 유료화에 성공할 수 없다며 보류하자는 시의원들을 설득했다.

"광명동굴이 수도권에 있는 유일한 동굴 관광지이기 때문에 유료화를 하면 승산이 있다고 의원님들께 말씀드렸습니다. 여름에 관광객이 최고로 많이 온 날 입장객은 1만4천 명입니다. 봄이나 가을은 계산에 넣지 않더라도 여름에만 관광객이 온다고 가정해도 30만 명은 분명히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죠. 입장료 수입은 8억~9억 원 정도로 예상한다고 의원님들을 설득했어요."

최봉섭 테마개발과장 ③으로 이어집니다.
#광명동굴 #최봉섭 #양기대 #광명시 #폐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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