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 역사학회 "학자들, 국정교과서 제작 불참해야"

[현장] 최대 학술대회인 전국 역사학대회서 공동 성명 발표, 보수단체 방해도

등록 2015.10.30 13:54수정 2015.10.3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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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 학회·역사학 관련 학회 '국정화 교과서 불참 촉구 선언' 양호환 한국역사학대회장이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문화관 앞에서 전국역사학대회 오전 세셕을 마친 뒤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 소속 학회 및 역사학 관련 학회를 대표해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및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 불참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가 1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역사학계가 30일 "국정화 행정 예고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며 공동 반대 성명을 냈다.

이날 오전 서울대학교 문화관에서는 역사학계 최대 행사로 꼽히는 전국역사학대회가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소통'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대회협의회 소속 학회 및 역사학 관련 28개 학회는 이날 오전 공동 발제가 끝난 뒤, 오전 11시 50분께 행사장 앞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엄중히 요구하며 국정 교과서 제작 불참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교과서 국정화는 해석과 교육을 독점하고 사유화하려는 정치권력의 의도"라며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역사학계의 공동 성명 발표는 이례적이다. 협의회 사무국은 "28개 학회가 공동 성명에 참여한 것은 역사학계로서는 대단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며 "이번 공동성명은 역사학계의 대다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국정화 반대 이유로 네 가지를 들었다. ▲ 국정제 강행 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육이 정쟁의 대상이 되며 ▲ 국정제는 교육의 자주·전문·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 정신과 충돌하는 비민주적 제도이고 ▲ 주체적·비판적 사고력을 지닌 창의적 민주시민 교육에 부적합하며 ▲ 세계적 추세에도 뒤떨어진 제도라는 게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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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회원들 "친북 반국가 교과서 집필진 퇴출하라" 박정섭 대한민국구국채널 대표를 비롯한 고엽제전우회,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유관순어머니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문화관 강당에서 역사교육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에 몰려와 행사를 방해하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교수들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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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회원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교수는 지적 장애인" 박정섭 대한민국구국채널 대표를 비롯한 고엽제전우회,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유관순어머니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문화관 강당에서 역사교육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에 몰려와 행사를 방해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반역자", "지적 장애인"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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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반국가 교과서 집필진 퇴출하라"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와 보수단체 회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찬성하며 친북 반국가 교과서 집필진 퇴출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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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반국가 교과서 집필진 퇴출하라"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와 보수단체 회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찬성하며 친북 반국가 교과서 집필진 퇴출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그러나 일부 보수성향 단체는 기자회견을 방해했다. 앞서 오전 10시 서울대 정문 앞에서 '친북 교과서 집필진을 퇴출하라'며 기자회견을 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소속 70~80대 남성 10여 명은 약 10분 거리인 행사장까지 이동해 들어왔다. 이 중 한 남성은 '국정 교과서 지지, 종북 교과서 반대, 북괴 교육 폐지하라'는 손자보를 들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들은 오전 행사가 끝나자 갑자기 "교육을 망쳐놓고 무슨 올바른 교과서를 반대해", "종북 교수들 북한으로 가버려라"라며 행사장 곳곳에서 고성을 질렀다. 박정섭 '대한민국 구국채널' 대표는 "국정화 반대한다는 2만여 명 교사들은 모조리 다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곳 회원이라는 한 여성은 교수들에게 "X자식들아, 꺼져라", "(박근혜 대통령 방문을 거부한) 이대생은 미친X들"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경자 대표 등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공학연) 회원들도 가세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중인 관계자들을 밀치며 "현재 역사학자·교사들은 출판업계 로비를 받아 좌편향 교과서를 선택한 것"이라고 소리쳤다. 지나가던 서울대생에게도 "전교조가 만든 괴물"이라고 막말을 했다. 이를 지켜본 김홍석(26세, 인류학과)씨는 "반대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논리 없이 고성만 지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여당, 국정화 관철 위해 파상적 이념 공세로 역사학계 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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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식 서울대 교수(왼쪽)가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문화관 강당에서 역사교육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에 참석해 '한국에서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사정과 소통'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송상헌 공주교대 교수가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문화관 강당에서 역사교육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에 참석해 '역사교육과 역사학의 거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오전 발제를 맡은 이경식 서울대 교수는 이날 '한국에서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사정과 소통' 제목의 강연에서 역사가 사회정치적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역사 교육을 체제 논쟁에서 따로 떼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체제 논쟁이 있을 때마다 역사 교육이 논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송상헌 공주교대 교수는 '역사교육과 역사학의 거리' 발제를 통해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비판했다. 송 교수는 "가장 안전한 역사 교육 방법은 이를 관련 학회에 맡기고, 다수 학자가 인정한 서술을 가르치는 것"이라며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념적, 정치적으로 역사 교육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사 교육은 기초 사실뿐 아니라 역사 인식, 즉 앎의 과정도 가르치는 건데 국정화는 이를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이는 다양한 연구가 질식되는 사태를 초래하기 때문에 제고돼야 할 조치다", "최근의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대단히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국정화가 모처럼 활성화된 역사학 흐름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전국역사학대회는 30일에 이어 31일에도 서울대학교 곳곳에서 열린다. 김동근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 대표 등 앞서 기자회견을 방해했던 보수 성향 단체 회원들은, 이날 점심  후 재개되는 오후 행사에서도 '국정화 지지', '친북 교과서 집필진 퇴출' 등 손자보를 들고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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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역사학대회 몰려온 보수단체 "교육망친 주범 좌편향 교수 용서 않겠다"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 소속 학회 및 역사학 관련 학회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및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 불참을 선언한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문화관 강당에서 역사교육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김대중과 노무현, 전교조가 학생들을 괴물로 만들었다"며 반국가 역사교과서 집필진 퇴출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다음은 경제사학회·도시사학회·만주학회·백제학회 등 총 28개 학회가 30일 발표한 공동성명 전문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엄중히 요구하며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 불참을 촉구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더욱 큰 메아리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대다수 역사학 전공 교수들과 교사들은 국정화가 강행될 경우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에 많은 국민이 공감하며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역사 연구자들과 교사들이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거리 행진을 펼치는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국정화를 관철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 파상적 이념 공세로 역사학계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려 하고 매카시즘 공세를 강화할수록 역사학계와 국민은 역사 해석과 교육을 독점하고 사유화하려는 정치권력의 의도를 더욱 분명히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갈등이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이 아니라 다양성 대 획일성, 역사적 진실 대 권력적 탐욕 간의 대결임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역사학계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역사교과서 국정제는 첫째, 수시로 바뀌는 정권에 의해 역사 해석과 역사교육이 독점돼 역사교육 자체가 끊임없이 정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 정신과 충돌하는 비민주적 제도로 민주화와 함께 극복됐던 구시대의 산물입니다. 셋째, 주체적·비판적 사고력과 종합적 판단력을 가진 창의적 민주시민의 교육에 부적합하고, 세계 보편적 기준이나 추세에도 뒤떨어진 제도입니다. 더욱이 민주주의적인 공론화 과정 없이 강행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대한민국의 역사교육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역사교육은 민주적 시민의식을 갖추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세계인으로서의 인류애를 지닌 시민을 키워냅니다. 다양한 역사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힘을 길러줍니다. 오직 하나의 역사, 하나의 역사 해석만을 가르치는 국정 교과서로는 민주적인 시민은 물론 세계화·다문화 시대를 짊어질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미래 세대를 키워내기 어렵습니다.   

역사학계는 사관(史官) 위에는 하늘이 있다고 하면서 권력의 부당한 간섭에 대항해 직필(直筆)을 실천하고자 했던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계승하고 후대에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학자적 양심과 소신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조치를 반대해왔습니다.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는 2014년에 이미 정부의 국정화 시도의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올해는 제58회 역사학대회를 맞아 역사학 관련 학회들과 함께 그간 역사학계가 곳곳에서 줄기차게 표명했던 단호한 의지를 모아 다시 한 번 학계 전체의 확고한 의사를 밝히고자 합니다. 

1.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 예고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
1. 정부, 여당은 역사학계를 모독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
1. 모든 역사학자들에게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에 불참할 것을 촉구한다.    

2015년 10월 30일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 협의회 소속 학회 및 역사학 관련 학회 일동

성명서 참여 학회(가나다순)
경제사학회 도시사학회 만주학회 백제학회 부산경남사학회 역사교육연구회 역사교육학회 역사와교육학회 역사학회 웅진사학회 조선시대사학회 중부고고학회 한국교육사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과학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냉전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목간학회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학사학회 한국서양사학회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중세사학회 호남사학회(총 28개)  

○ 편집ㅣ홍현진 기자

#역사학회 공동성명 #국정화 반대 #국정화 반대 성명 #역사학계 국정화 #전국역사학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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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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