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밀집도 세계 1위 한국의 미래는?

[서평]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

등록 2015.11.02 16:40수정 2015.11.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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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문학상 작품 <체르노빌의 목소리> 체르노빌의 목소리 ⓒ 조은미


최근 나는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고 있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던 지난 10월 29일, 책이 주는 감동에 먹먹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던 순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인 김혜정 선생님의 페북을 통해 신고리원전 3호기 운영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신고리원전3호기 운영이 결정되었습니다. 새벽부터 원안위에 올라오셔서 눈물바람을 하신 밀양주민들께 너무 죄송합니다. 송전탑 아래에서 살아갈 주민들께 너무 송구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세대들에게 너무너무 미안합니다. 원안위원이라는 자리가 제겐 너무 가혹하네요.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체르노빌에 이은 후쿠시마 핵사고를 보고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질문이 주어졌다. 이 비극은 일본만의 것인가. 아니면 인류 전체의 것인가? 문명의 힘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우리 가치관이 참이라는 확신을 재난이 흔들고 있지 않은가?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체르노빌을 전체주의로 해석했다. 소련의 핵 원자로가 불완전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기술적으로 낙후했기 때문이라고. 러시아인의 안일함과 도둑질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다. 핵의 신화 자체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 충격은 빨리 사라졌다. 방사선은 바로 죽지 않는다. 5년이 지난 후에는 암에 걸려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러시아 환경단체가 수집한 통계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건 후 150만명이 사망했다. 이에 대해서는 모두 침묵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두 번째 핵 수업을 받고 있다.

체르노빌에 이어 그보다 더 심각하고 더 많은 죽음을 불러온 (앞으로도 계속 불러올) 후쿠시마 핵 사고를 이웃나라 일본에서 겪는 것을 우리는 보았지만, 한국의 핵 발전은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한국의 원전은 25기로 이미 밀집도는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작가는 인류가 두 번의 핵 수업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떤가? 공부 잘하는 한국 사람들이, 핵 수업에서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일까?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1986년 체르노빌 핵 폭발로 재난을 당한,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던 이웃 나라 벨라루스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한 육성으로 담은 책이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과 사랑, 절망과 고통, 죽음에 대해 담아냈으며 작가가 10년 넘게 집필하여 써낸 책이다. 역사적 사실을 보면, 벨라루스 국민의 5분의 1이 현재 오염된 지역에 살고 있으며, 오염지역 거주민 210만 명 중 어린이가 70만 명이다. 그리고 벨라루스 국민의 주요 사망원인은 방사선 피폭이다.


작가 스베틀라나는 이 벨라루스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듣고 기록한다. 죽음과 속임, 상실과 가난, 병고를 겪는 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작가는 묵묵히 몸을 낮추고 귀를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은, 때로 흥분하고 때로 화를 내고 노래도 부르고 비명도 지른다.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 있으니 그런 것이다. 작가는 그들이 '증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왜곡하지 않고 전달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몹시 아프다.

신혼의 기쁨에,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한시도 남편에게서 떨어지기 싫었던 젊은 아내 류드밀라. 소방관인 남편은 체르노빌 사고가 터지자마자 '불을 끄러' 맨 몸으로 현장에 투입된다. 어마어마한 양의 방사능에 피폭된 남편, 격리되고 순식간에 환자가 된 남편. 첫 아기를 임신한 아내는 임신 사실도 의사들에게 속이고, 남편 곁을 지킨다. 그렇게 잘생기고 멋지던 남편이 괴물처럼 변해가며, 피로 침대 시트를 적셔가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보며 그녀는 옆을 지키며 여전히 그만을 사랑하며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결국 14일만에 남편이 죽었고, 이후에 태어난 아기는 간 경화증에 걸린 아기였고 간이 28뢴트겐에 노출된 상태여서 태어난 후 4시간 만에 죽는다.


류드밀라는 남편이 어떻게 죽었는지, 갓 태어난 딸은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병들어가는지 말했지만, 그녀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거라고 말한다. 그녀가 한 사랑에 대해…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참 많다. 원전 해체 작업자의 아내도, 기저귀를 차고 아장아장 걷던 외손녀를 방사능에 노출시켰던 공산당 고위 간부도, 남편이나 자녀들이 왜 갑자기 죽어야 하는지, 이유도 알지 못하고 이런 비극을 당하는 여자들도, 모두 사랑을 기억하고 사랑을 말한다.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농부들은 도저히 자기 땅을 떠날 수가 없다. 감자 씨를 심고 뒤뜰에 채소도 거둬야 하는데, 곡식도 잘 익어가는데, 농부들이 어떻게 작물을 두고 고향을 떠나야 하나… 방사능은 냄새도 없고 맛도 없으니 농부들에겐 뭐가 달라졌다는 것인지, 왜 내 땅, 내 작물들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지 받아들이기 힘들다. 어떤 할머니는 심어놓은 감자를 거두러 몰래 밤중에 숲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영덕 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 영덕 군민들의 영덕 핵발전소 찬반 투표 독려하는 대회 ⓒ 조은미


내가 책을 읽으며 가장 분노하게 되는 것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한 짓이었다. 국가를 대표하는 고위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국민들이 뻔히 방사능 피폭되면 죽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보를 감추고, 전화를 도청하고, 국민들을 사지로 내몬다. 해체 작업에 목숨이 몇 개가 필요하며, 쓰레기 치우는 작업에 몇 개의 목숨이 필요한지 국가는 계산했고, 사람들에게 목숨의 대가라는 것은 속이고, 몇 배의 수당을 준다고 꼬드겨서 공급했다.

'그들이 습득한 삶의 원칙은 튀지 말 것, 잘 보일 것과 같이 기계적이었다.'

이런 국가의 행태는 세월호의 비극에서 국가가 한 행태와 너무 닮아 있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흘리고, 공무원들은 책임지지 않으려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에 순종한 아이들은 차가운 바다에서 죽음의 이유도 모르고 죽어갔다. 체르노빌 피해 주민들도 똑같다. 마을에 가만히 있으라 하니, 이미 방사능 구름이 하늘을 덮었는데, 가만히 일상을 살고 있었고, 아이들은 방사능 모래에서 뒹굴며 놀았다. 진실을 아는 이가 전화와 같은 통신 수단으로 전달하려고 하면, KGB가 도청을 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결과 무수한 국민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고, 순진무구한 아이들은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제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살 날이 며칠 안 남았다고… 시한부 인생이라 생각했지만 무서울 정도로 죽기 싫었습니다. 갑자기 나뭇잎 하나하나, 선명한 꽃, 선명한 하늘, 더 선명한 회색의 아스파트, 그 위의 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잠자는 개미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중략) 살아있는 시간만이 의미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살아 있는 시간만이…' (전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 핵에너지 연구소 실장)

작가 서문에 이런 글도 있다.

'오늘날 거의 30개국에서 44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중이다. 미국 104기, 프랑스 58기, 일본 55기, 러시아 31기, 그리고 한국에 21기가 있다. 종말을 앞당기기에 충분한 개수다.'

이제 21기보다 더 많은 수의 핵발전소를 늘려가는 한국, 밀양 이치우 할아버지의 죽음도, 할머니들의 눈물도 본 체 만 체하고 신고리3호기를 허가한 한국, 영덕에서 주민들의 의사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새로운 핵 발전소를 건립하려 서두르는 한국. 우리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핵 수업에서 배운 것이 아무 것도 없는가.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신규 핵발전소 건립 반대! 영덕 신규 핵발전소 건립 반대에 참가 중인 나. ⓒ 조은미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새잎, 2011


#체르노빌의 목소리 #탈핵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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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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