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할수록 좋은 '연애'와 '인턴'의 공통점

[할많하않? 할많하! ③] 취준 2년 경험을 담은 책 <취준2년> 펴낸 탕수육씨

등록 2015.12.15 15:28수정 2015.12.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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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세대, 헬조선, 흙수저에 이르기까지... 청년세대의 절망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넘쳐납니다. 청년들이 참 할 말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어린 것이 뭘 아느냐', '사회문제에 신경 끄고 네 앞가림이나 해라'라는 '꼰대'의 말에 하고 싶은 말을 삼킬 때가 많습니다. '할많하않', 이 신조어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입니다. '할많하않'이 아닌, 할 말이 많으니 하겠다는 청년들을 만나봤습니다. [편집자말]
대학만 가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동아리 활동도 하고, 연애도 하고, 공부는 '가끔' 하고. 괴로움보단 즐거움이 넘칠 줄 알았다. 이게 다 MBC 시트콤 <논스톱> 때문이다. 막상 내가 대학생이 되어 마주하게 된 것은 외로운 자취 생활과 피 말리는 학점 전쟁 따위였다. 그런데 딱 한 가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이 있다. '취업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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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청년 실질 실업자는 약 165만 명 2003년 방송된 시트콤 <논스톱>에서 고지식한 고시생 역할을 맡았던 앤디. 당시 '청년실업자 40만 명'이라는 수치는 명목실업률로 따진 것이다. 명목실업률엔 구직 단념자나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를 포함해 계산한 것이 실질실업률이다. 지난 2014년 전국 청년 실질 실업자는 약 165만 명(33.1%, 추정치)에 이른다. ⓒ MBC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자가 40만 명에 육박한 가운데 어떻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지난 2003년 <논스톱>에서 고지식한 고시생 역할을 맡은 앤디가 자주 했던 대사다. 물론, 그땐 이 대사가 '지나치게' 심각했고, 그래서 웃겼다. 하지만 이제 취업난이 더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 따르면, 2014년 전국 청년 실질 실업자는 약 165만 명(33.1%, 추정치)에 이른다. 2003년 약 120만 명(21.9%, 추정치)에서 45만 명 증가했다. 이제 '장기화된 경기 침체'는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는 '취업 9종 세트' 따위로 구체화됐다.

'찌질한' 취준생의 처절한 '씨 뿌리기'

"취준생 입장에서는 취업이라는 건 지원서를 논에 씨 뿌리듯 막 뿌리고 기업들이 제발 그 씨들을 주워주길 기다리는 거다. 그 기업과 선택된 씨를 뿌린 자는 인연이었던 건가. 아니면 우선 많은 씨를 뿌리면 장땡인가. 더 크고 예쁘고 튀는 씨를 뿌리는 게 중요한 건가."(<취준2년>, 우리에게 인연이 있을까요?, 탕수육)

탕수육(필명, 26)씨도 대학을 채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 전선에 나섰다. 처음의 포부와 다르게 허우적거렸다. 다른 사람처럼 1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2년을 '취준생'으로 살았다. 그리고 지난 2일, 탕수육씨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취준2년>을 펴냈다. <취준2년>은 그가 직접 집필, 디자인, 편집을 도맡은 독립출판물이다. 지난 11월 30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한 카페에서 그와 만났다.


"사실 취준 2년은 쉽지 않거든요, 이게 고시도 아니고. 취준 1년은 많이 관심을 두는데, 2년은 '할 만큼 했다'는 분위기죠."

일반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지만 6개월 이상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을 '장기실업자'로 분류한다. 24개월 동안 취준생이었던 탕수육씨도 장기실업자였다. 일찍 취직에 성공한 친구는 벌써 입사 3년 차. 탕수육씨는 쌓여가는 '취준' 경험이 남들보다 많았다.

어느 날은 한 회사의 면접을 보고 온 경험을 SNS에 올렸다. 당시 반응이 좋았다. 지인들은 글을 계속 써보라고 했다. 탕수육씨는 대학에 다닐 때 교지 편집부를 했을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했다. 마침 탕수육씨가 즐겨 듣던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 '책 읽는 시간'에서 김 작가는 "누구나 1인 미디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음이 흔들리던 찰나, 독립출판서점에서 '별의별' 책이 다 있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 책들이 나오잖아요. 제 책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진짜 허접하고, 얇고, 전면 흑백에 갱지 같은 종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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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2년> 밀레의 <만종>을 표지 이미지로 넣었다. 탕수육씨는 '취준생이 기업에 지원서를 뿌리는 것이 농부가 수확을 기다리며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 김예지


한탄, 허세, 조언 없는 날것 100% 취준생 이야기

<취준2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우리의 취준'과 '나의 취준'. TV 뉴스와 신문에서 말하는 '청년실업률이 어쩌고' 같이 각 잡힌 내용은 아니다. '우리의 취준'에서는 취준생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수능 수리영역처럼 '소금물의 농도를 구하라'는 어느 기업의 인적성 검사 문제에 느낀 분노부터, 떨어진 회사에 메일을 보낸 '찌질한' 경험까지 풀어냈다.

"갑질이 참 많아요. 예를 들어 합격 조회를 했는데, 어떤 문구도 없이 백색 화면이면 그냥 탈락인 거예요. 얼마 전엔 모 기업 면접에서 '국정교과서 찬반' 같은 사상검증 질문을 했잖아요. 취준생에게 정신적 복종을 강요하는 거죠. 면접 과정에서 존중 받는다는 느낌이 들거나, 취준생의 어려움을 헤아려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대화 상대의 이름과 직책조차 알려주지 않는 면접 과정,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직업 귀천 의식을 고찰한 글도 있다. 일찍, 많이 해볼수록 좋은 '연애'와 '인턴'의 공통점을 분석하기도 하고, 제품의 가격을 사람의 스펙에 빗대기도 했다.

"제 글은 취준생이 읽었을 때 가장 즐거울 거예요. 아니면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좀 읽었으면 좋겠네요(웃음)."

'나의 취준'은 일기 같은 느낌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마포 '생명의 다리'를 건너본 기억부터, 면접 후 배 터지게 혼밥(혼자 밥을 먹는 것, 기자주)하는 방법까지. 취준 2년 동안 쌓인 소소한 기억들이 모여 100페이지가 넘는 책 한 권이 나왔다.

"나는 졸업식장에 같이 앉을 친구나 내 사진을 엄마 대신 찍어줄 친구가 없었다. 내가 취업이 늦어진 만큼 다른 동기들은 이미 학교를 떠났고 친구들은 지금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거다. 그래도 혼자지만, 취직도 못했지만, 나도 뭔가 당당한 '척' 졸업식을 즐기고자 방긋방긋 웃었다. 학교 교가도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불러보았다."(<취준2년>, 취업에 실패했는데 졸업식에 참석해도 괜찮을까?, 탕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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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에 실패했는데 졸업식 가도 될까? '나의 취준'은 일기 같은 느낌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마포 '생명의 다리'를 건너본 기억부터 면접 후 배 터지게 혼밥(혼자 밥을 먹는 것 - 기자주)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글을 엮었다. ⓒ 김예지


"막 쓰고 막 엮었어요. 하지만 '야, 취준은 이렇게 해야 해'라는 식의 글은 절대 아니에요. 담담하게, 그때그때 써놨던 글들이에요. 좌절할 때의 글들. '취업에 실패해도 졸업식에 참석해도 될까?'처럼, 사소하지만 일상적인 고민을 담았어요."

서울 4년제 대학을 나와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한 자신의 경험이 모든 취준생을 대변할 수 없을 거란 딜레마도 있었다. 한 지인은 "네가 스펙이 좋은데, 다른 사람들이 네 글을 공감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탄과 허세, 조언은 최대한 지양하려고 노력했다. '취준생은 이렇다'거나 '취준생은 이래야 한다'는 이야기는 뺐다. 대신, '어떤 취준생은 이랬다'는 기록을 남겼다.

"진짜 씩씩하게 쓰고 싶었어요. 일말의 도움이라도 주려고요. '우리 같이 씩씩해집시다, 청춘은 튼튼하다, 우리 아프지 마요, 우리는 아프면 안 되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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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우린 아프면 안 되죠! 탕수육씨는 "한탄, 허세, 조언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 김예지


아프니까 청춘이다? "우리는 아프면 안 되죠!"

탕수육씨는 얼마 전 한 기업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아직 입사를 완전히 결정하진 않았다. 다만, 이전보다 더 열심히 글을 썼다. <취준2년>을 출판하기 위한 소셜 펀딩이 목표 금액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자비를 털어 출판했다. 취업에 성공하면 해외여행을 가려고 모아둔 돈이다.

"저는 이 책으로 뭘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제 글을 읽고 '이 정도쯤이야, 나도 한번?' 이런 생각이 드셨으면 좋겠어요. 글이 아니더라도 음악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사진을 좋아하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고. 제가 취준생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하나 던져놓은 것뿐이에요."

탕수육씨는 <취준2년> 100부를 모교에 무료로 배포할 생각이라고 했다. 독립출판서점 입점도 알아보고 있다. 그렇게 취업준비생으로서의 2년을 털어버린 뒤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회사에 가면 직장인의 노동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취준2년 #취업준비생 #취준 #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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