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예수 보러 가는 길" 세상에서 가장 슬픈 미사

가족과 함께 진도 팽목항에서 성탄 전야를 보내다

등록 2015.12.25 16:27수정 2015.12.2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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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퇴근하자마자 내달렸는데도 역시나 목포 시내를 통과하는 건 쉽지 않았다. 퇴근 시간에 맞물린 탓이다. 비록 어수선한 세밑이지만 적어도 도시의 밤거리, 꽉 막힌 도로 위에서는 성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보니 자꾸만 시계에 눈이 가고, 내 맘을 몰라주는 신호등조차 야속하다.

진도 팽목항으로 성탄 전야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다. 예년 같으면 집 앞 성당을 찾았을 테지만, 지난주 미사 주보에 적힌 한 줄짜리 공지사항이 며칠 동안 눈에 밟혔다. 12월 24일 저녁에 팽목항 임시 성당에서 성탄 전야 미사가 봉헌된다는 소식은, 우리 가족이 성탄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성탄 전야 미사 드리러 팽목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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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임시 성당 내부 정면의 십자가 옆에 적힌 618일째라는 숫자와 제대 앞 교황 프란치스코의 일갈이 가슴을 친다. ⓒ 서부원


산타의 선물을 나누고 즐거이 캐럴을 불러야 할 시간에, 저녁식사도 거른 채 서둘러 팽목항을 향해 가는 아빠, 엄마의 모습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아내는 연신 아이들에게 배가 고픈지를 물으며 챙겨온 비스킷을 권했다. 아빠,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다행히도 아이들은 휴게소 한 번 들르지 않고 차 속에서만 보낸 몇 시간 동안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굳이 팽목항에 가서 성탄 전야 미사를 드리려는 이유를 두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그저 여느 해와는 다른 색다른 미사 경험이 될 거라는 중학생 아이의 말에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하긴 초등학생인 딸에겐 성탄이 산타로부터 선물을 받는 날 정도로만 이해할 뿐이니, 어떻든 미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큰 아이가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예수님이 지금 우리나라에 오신다면 어디를 맨 먼저 찾으실까? 신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큰 성당이나 교회? 아니면 나를 믿으라며 서울의 광화문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려 하실까? 아빠는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 세상에서 가장 천한 모습으로 말구유에서 나신 분일진대, 만사 제쳐두고 맨 먼저 이곳 팽목항에 오셔서 슬픔을 나누시려 할 게 틀림없어. 그러니까 우린 지금 진짜 예수님을 뵈러가는 길이야."

깊은 어둠 속 팽목항에도 성탄은 와 있었다. 임시 분향소 바깥에 부채꼴 모양으로 늘어뜨린 울긋불긋한 전구들이 여전히 웃고 있는 단원고 아이들과 어울렸다. 아이들에게 성탄 전야임을 알리는 캐럴이라는 듯 선착장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고개 들어 밤하늘을 보니 분향소와 임시 성당의 불빛을 빼면 온통 어둠뿐인 팽목항에 공교롭게 둥근 보름달이 떴다. 아기 예수가 환한 달빛이 되어 나타나신 것일까.


임시 성당이라 해봐야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전부다. 그 안에 있는 거라곤 아이들 공부방에 놓인 책상 크기의 소박한 제대가 유일하지만, 비좁은 공간 탓에 꽉 차 보인다. 제대에는 신부님 다섯 분이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섰고, 그 흔한 방석조차 없는 바닥에는 수녀님들과 각지에서 모인 신자들이 서로 체온을 느끼며 앉았다.

십자가 곁에는 '세월호 상황판'이 걸려 있다.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618일째라는 글자가 선연하다. 무심한 세월은 그렇게 흘렀고, 그 숫자에 적이 놀랄 만큼 우리의 기억은 무뎌졌다. 제대 앞에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짧은 한 마디가 미사 중에 기억하라는 듯 적혀있다. 지난 봄 바티칸을 찾은 우리나라 주교단을 만난 자리에서 교황이 맨 먼저 물었다는 그 말.

"세월호 사건은 어떻게 되었나요?"

성탄 전야 미사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봉헌되었다. 기도 속에서 그들 모두를 기억하자고 서로 다짐하는 자리였다. 두 손 모은 기도와 성가의 노랫소리는 그런 다짐의 표현이었다. 미사가 끝나면 곧장 아이들의 영정을 안치한 분향소를 다함께 찾을 테지만, 아이들이 지금 미사에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 감으면 영정 속 그들의 웃는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사에는 아직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고 조은화 양의 어머니도 함께 했다. 집전하는 신부님 대신 그분이 강론을 진행했다. 기쁜 성탄 전야이지만, 자신에겐 618번째 4월 16일일 뿐이라며 눈물을 떨구셨다. 아직도 어둡고 춥고 더러운 배 안에 당신의 딸이 수습되길 기다리고 있다며, 연신 도와달라고 기억해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눈은 어느새 퉁퉁 불어 있었다.

그도 울고, 신부님과 수녀님도 울고, 강론을 듣던 신자들도 함께 울었다. 미사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강론 뒤에 바로 이어진 신앙 고백은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울먹임 속에 진행됐다. 죽어도 잊지 않겠다는 그 절규를 들었을까. 어둠 속 파도 소리는 겨울바람을 타고 더욱 거세졌다.

이날 "진짜 팽목항은 처음 와본 셈"이라는 중학생 아들

미사가 끝날 즈음 신부님은 함께 한 분들끼리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하셨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었지만, 비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다 보니 가족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가까이는 해남과 목포에서 멀게는 순천과 광주 등지에서 부러 찾아온 이웃들이다. 사는 곳과 나이, 성별, 직업은 각기 달라도 찾아온 이유는 같았다. 평생 죄 한 번 짓지 않고 살아온 분들 같은데, 하나같이 '아이들에게 미안해서'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 중에는 참사 당시 이곳에서 몇날 며칠 자원봉사를 한 분도 있고, 전직 고등학교 교사로 만약 자신이 인솔자였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에 잠 못 든다는 분도 있었다. 차마 자신이 누군지 소개하지 못하고, 고 조은화 양의 어머니를 향해 연신 미안하다며 울기만 하는 분까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시간은 서로를 위로하며 토닥이는 자리가 됐다.

미사를 마친 후 분향소를 찾았다. 사람들은 영정 속 아이들과 하나하나 눈을 교환할 때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이었다. 고 조은화 양 등 아홉 명의 미수습자들은 '아직 세월호에 사람이 있다'는 글귀가 영정 사진을 대신하고 있다. 사람들마다 그 이름들 앞에서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다들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순간인 셈이다.

그 와중에 사람들과 나누려고 떡과 과일 등을 애써 준비해온 분이 계셨다.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손에 일일이 들려주는 그 따스한 마음이 눈물을 닦아주고 가슴을 덥혀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성탄 전야 미사는 그렇듯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선물 받으며 마무리됐다. 그분이 곧 환한 달빛을 타고 팽목항을 찾아오신 아기 예수가 아니었을지.

"아빠를 따라 팽목항엔 여러 번 왔었지만, 오늘 같은 느낌은 처음이야.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교훈과 숙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것 같아. 지금까지는 팽목항의 껍데기만 봐온 거고, 내게 '진짜' 팽목항은 처음 와본 셈이야. 저녁식사를 못해 배가 고프긴 했지만, 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고마워, 아빠."

밤참 같은 저녁을 먹고 새벽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 피곤에 지쳐 연신 하품을 쏟아내던 중학생 아이가 건넨 말이다. 나중에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 자녀를 잃은 유가족의 고통을 이해하게 될 거라는 백 마디 말도 귓등으로 흘려 듣던 아이였다. 해마다 챙겨주던 성탄 선물을 이걸로 퉁쳐도 될 듯하다. 성탄 선물이라면 이게 '진짜' 아닐까 싶어서다.
#성탄 전야 #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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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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