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그림
한림출판사
미처 몰랐어. 우리만큼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남편에게 이 말을 전하며 "좋은 잔소리(잠자기 전에 물 많이 먹지 마라, 자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엄마아빠를 깨워라, 하다 못해 아침까지 참아라 등등)도 이쯤이면 그만 하라는 거겠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겠다"고 한 건 그 때문이야.
물론 너희들이 해준 말도 들려줬어.
네 요가 말했다고.네 배 속에서 오줌이 찰랑찰랑 몸부림치면 내가 이렇게 달래 줄게. "기다려 기다려 아침까지 기다려", 라고.네 이불이 말했다고.팔이랑 다리랑 낮에 넘어져 피가 난 무릎도호호 불어 주고, 문질러 주고, 따뜻하게 감싸서 싸악 낫게 해줄게, 라고.네 베개가 말했다고.머릿속에서 무서운 꿈이 살금살금 기어 나오면내가 콧김으로 씽씽 날려버릴게, 라고.그런데 내 말에 아이 얼굴은 더 심각해졌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지. 그리고 말했어.
"내 이불에는 눈코입이 없는 걸...""아... 아냐, 그렇지 않아. 산타 할아버지도 눈에 보이진 않지만 계시잖아. 네 이불도 눈에 안 보이는 거 뿐이야. 그러니까 걱정마."아, 이 놀라운 임기응변. 이 말이 효과가 있던 걸까? 그 다음날 새벽 아이는 더이상 "미안하다"고도 "용서해 달라"고도 하지 않았어. 대신 웃음을 주었지. 힘들겠지만 당분간 이 웃음으로 버텨야 할까봐.
"아빠~""(잠결에) 으응? 왜?""문제가 생겼어.""무슨?""내가 오줌을 쌌거든. 엉덩이 좀 씻겨줘.""핫핫. 그러게 문제는 문제네. 씻으러 가자. 그나저나 이제 6살인데, 너 진짜 어쩌냐. 하하하."오늘 새벽에는 어떤 말을 하며 우릴 깨울지 궁금해지는 밤. 그래도 요야, 이불아, 베개야 고마워. 오줌 싸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무서운 꿈을 꾸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으니까. 오줌싸개 우리 막내,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이 그림책은요]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른 게 그림책의 매력이라더니, '혼자 자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한 이부자리 짝꿍 책'이라는 출판사의 소개 글이 눈에 띕니다. 읽고보니 이렇게 다정한 요와 이불, 베개를 친구 삼아 삼을 청하면 혼자 자는 마음이 한결 편해지겠네요.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든 타카노 후미코는 원래 만화가였습니다. 단순한 그림이지만 따뜻한 마음과 유머가 담긴 이 책은 그의 첫 그림책으로 지난 2010년 한림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요 이불 베개에게
타카노 후미코 글.그림, 고향옥 옮김,
한림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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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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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오줌싸는 아이 "내가 싫어질라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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