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 진보주의자의 160일간의 인도 여행

[리뷰] 송성영의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인도>

등록 2016.04.05 16:53수정 2016.04.0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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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여행기는 보통 이렇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 임의대로 이름을 정해보면 이렇습니다. 정보 여행기, 장소 여행기, 사람 여행기. 세 여행기를 자로 잰 듯 딱 나눌 순 없겠지만 그래도 분류는 가능할 겁니다.

정보 여행기는 말 그대로 여행에 관한 정보가 총망라 된 여행기입니다. 가는 방법에서부터, 숙소 구하는 법, 차 타는 법, 환전하는 법, 꼭 먹어야 할 음식, 피해야 할 장소 등등의 정보가 가득하지요.


장소 여행기는 여행자가 특정 장소에서 본 모든 것들에 대한 감상이 주를 이룹니다. 미술관, 박물관, 건축물, 풍경, 현지 사람들의 모습 등등이 여행자의 눈을 통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오지요.

사람 여행기에서는 무엇보다 여행자 본인이 가장 부각됩니다. 정보도 담겨 있고, 장소에 대한 관찰 또한 이루어지지만 역시나 독자들이 가장 잘 알게 되는 건 바로 그 사람, 여행자입니다.

위의 세 여행기는 각기 다 매력적입니다. 기분에 따라, 때에 따라 독자들은 본인이 읽고 싶은 여행기를 읽게 될 테지요. 그런데 전 이중 사람 여행기에 가장 마음이 갑니다. 아무래도 여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여행자가 그곳에 갔다는 사실 아닐까요.

여행자가 여행을 할 땐 몸만 여행하는 건 아닙니다. 일상에서 품고 있던 생각들, 고민들, 또 고통스런 기억들도 함께 여행을 하지요. 여행자는 여행지의 생경한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이러한 생각과 고통들을 끄집어내 펼쳐 놉니다. 그리고 바라보죠. 그리고 여행자의 이 바라봄을 통해 우리는 여행자와 가까워지게 됩니다.

얼치기 진보주의자의 인도 여행기


a  책 표지

책 표지 ⓒ 작은숲

<오마이뉴스>에서 연재된 송성영 시민기자의 인도 여행기를 저는 좋아했습니다. 바로 이 바라봄이 두드러지는 여행기였거든요. 그리고 사람 여행기이기도 했구요. 송성영 기자는 남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들까지 여행기에 털어놓았습니다. 가끔은 너무 솔직한 모습에 흠칫 놀랄 정도였어요.

기자는 본인을 '얼치기' 진보주의자라 소개합니다. "최소한의 것으로 생활하는 소박한 삶,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소박한 삶"을 추구해 왔다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본인이 추구하는 이러한 삶의 형태가 아내에겐 상처가 되어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내가 이혼 요구를 해옵니다. 기자는 아내를 이해하는 마음과 그런 아내에게 분노하는 마음 사이에서 큰 고통을 느낍니다. 여행기엔 기자의 이러한 고통스런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했던 여행기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고 해서 다시 한번 읽어봤습니다. 책 제목이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인도>입니다. 제목이 참 강렬하지요? 제목이 이렇게 달린 이유는 프롤로그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자 본인이 이렇게 말하네요.

'끈 풀린 개처럼 떠돌아다니며 힌두교, 시크교, 이슬람교, 그리고 티베트 불교인들과 순례자, 수행자, 농부, 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과 언어 소통이 순탄치 않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언어 대신 그들과 가슴으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본문>중에서

인도를 생애 첫 해외 여행지로 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들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보통 인도는 여행 좀 해봤다는 사람들이 뭔가 이제는 진짜 여행을 하고 싶을 때 가는 곳으로 전 알고 있는데 말이죠.

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첫 여행지로 인도를 덜컥 정해버리는 사람. 힌디어는 말할 것도 없고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저자는 무려 160여 일 동안 인도, 네팔, 티베트 등지를 정말이지 '끈 풀린 개처럼' 혼자 여행합니다. 네팔, 티베트를 여행한 내용은 다음 책에 묶여나올 모양이에요. 이 책에는 인도를 여행한 내용만 실려 있습니다.

첫 해외여행을, 그것도 인도에서의 여행을, 처음부터 혼자 힘으로 치러내긴 어려웠을 테지요. 저자는 인천 공항에서 만난 어린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며칠 인도 물정을 파악한 후에야 비로소 혼자만의 여행길에 나서게 됩니다. 이후 때때로 인연을 만나기도 하구요.

순박한 인도 사람들

a  영어를 잘하는 네팔 사내와 짜이를 사주겠다고 나선 인도 사내. 배낭을 실은 택시가 사라지자 조바심을 냈던 나에게 걱정마라, 여유를 가지라 일렀다.

영어를 잘하는 네팔 사내와 짜이를 사주겠다고 나선 인도 사내. 배낭을 실은 택시가 사라지자 조바심을 냈던 나에게 걱정마라, 여유를 가지라 일렀다. ⓒ 송성영


전 저자가 만난 인도인들이 참 좋았습니다. 하나같이 순박하고 정이 넘쳐 보였습니다.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인도 전통차인 짜이를 내주는데 전혀 망설임이 없는 사람들. 심지어 본인의 집으로 찾아온 이방인인 저자가 옆집 아낙네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 살짝 삐치기까지 합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또 은근슬쩍 무언가를 팔길 좋아하는 사람들. 그런데 너무 가난한 사람들. 그런데 그럼에도 웃을 줄 아는 인도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도통한 사람들이 참 많아 보였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언가를 파는 것 같기도 하고 명상을 하는 것 같기도 한 사람들이 저자의 눈에 자꾸 포착됩니다. 때로는 그들이 먼저 저자를 부르기도 하고 저자가 먼저 슬쩍 말을 붙이기도 합니다.

바라나시에서도 한 중년 남자가 저자를 부릅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러저러한 질문을 늘어놓아요. 상가에서 포목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팬티 하나만 달랑 남겨놓고 옷을 다 벗더니 갠지스 강으로 들어가 비누로 몸을 씻고 나옵니다. 그렇게 몸을 정갈하게 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힌두 경전을 읊조리구요.

바라나시는 이방인의 눈엔 그저 화장터일 뿐입니다. 물도 오물투성이에 시체의 한 부위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볼 수도 있지요. 그런데 위의 남자는 이곳에서 목욕을 했지요. 어떤 이는 입까지 헹군다고 합니다.

바라나시에서 바라본 고통

인도의 바라나시는 갠지스강 중하류에 위치해 있는 도시입니다. 힌두교도들이 성지로 여기는 7개 도시 중 한 곳이지요. 이곳 갠지스 강에 몸을 씻으면 죄가 씻겨나간다고 힌두교도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다고 합니다. 시신을 태워 그 재를 뿌리면 열반에 든다고도 해요.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죽음이 다가올 것 같으면 바라나시로 와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립니다. 어느 책에서 전 바라나시로 왔지만 막상 죽지를 않아 몇 년을 이곳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어떤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기도 했습니다.

인도 여행기를 몇 권 읽어봤던 터라, 전 인도, 하면 바라나시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삶과 죽음이 이곳보다 더 격렬하게 공존하는 공간이 또 있을까요. 눈 앞에선 시체가 타 들어가고, 그 재는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강에 뿌려집니다. 그런데 그런 강가 주위엔 상점이 늘어서 있고, 누군가의 일상도 지속되고 있지요.

저자는 이곳 바라나시에 머무는 일주일 내내 화장터에 앉아 삶과 죽음의 모습들을 바라봅니다. 이내 본인의 고통도 바라봅니다. 델리에서 다람살라, 암리차르를 거쳐 바라나시까지 오는 매 순간, 고통은 어김없이 저자를 계속 따라붙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날카롭게 바라본 저자의 고통은 분노에서 비롯되고 있었습니다.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 고통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자비 없는 분노에서 비롯된다. 자비심 가득한 분노는 잘 삭힌 효소처럼 향기가 난다. 하지만 자비심 없는 분노심은 구더기들이 들끓는 썩은 젓갈처럼 구린내가 나기 마련이다.' - <본문> 중에서

며칠 강가에 앉아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고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분노와 증오심도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러다 어느 병든 강아지를 발견한 저자는 강아지를 보듬다가 왈칵 울음을 터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너 자신의 일상조차 보듬지 못하고 어떻게 너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이웃을 보듬을 수 있겠는가.' - <본문> 중에서

여행의 목적은 저마다 다를 겁니다. 저자는 아내와의 관계에 대한 답을 얻으러 인도에 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행은 저자에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너 자신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먼저 치유하라는 것이지요.

바라나시를 떠나 북인도 리쉬케시와 내니딸, 알모라 그리고 코사니로 향해가는 동안 저자는 고통을 온전히 마주 보려 애를 씁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끝이 납니다. 그럼 이제 치유의 과정이 남아 있는 거겠죠. 지금 연재되고 있는 네팔 여행기에선 저자가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덧붙이는 글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인도>(송성영/작은숲/2016년 03월 21일/1만6천원)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인도 - 50에 무작정 떠나는 여행

송성영 글.사진,
작은숲, 2016


#인도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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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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