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 그 내면에 '광주'가 있다

<채식주의자>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듣고

등록 2016.05.17 09:35수정 2016.05.1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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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강, 맨부커 상 수상 쾌거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맨부커상선정위원회는 16일(현지시간) 밤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만찬 겸 시상식에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사진은 채식주의자 책을 들고 서 있는 한강.

한강, 맨부커 상 수상 쾌거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맨부커상선정위원회는 16일(현지시간) 밤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만찬 겸 시상식에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사진은 채식주의자 책을 들고 서 있는 한강. ⓒ 연합뉴스


작가 한강이 세계 3대 문학상(노벨문학상, 콩쿠르상, 맨부커) 중 하나인 맨부커 상을 수상했다는 낭보가 도착했다.

수상작인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는 200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발표된 동명의 소설과 그해 가을 '문학과 사회'에 발표된 '몽고반점'과 다음해 겨울에 발표된 '나무 불꽃'까지 세편의 중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이다.


니체는 "역경을 걷는 것이 선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을 마음과 몸으로 실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작가 한강은 이것을 묵묵히 지켜간 드문 작가다. 작가의 역경은 한가지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고향 광주에 대한 짙은 회한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깊은 고통이 양존하기 때문이다. 2014년 5월 19일에 출간되어 큰 관심을 끈 <소년이 온다>(창비 간)가 시대에 대한 고통을 잘 보여준다면, <채식주의자>는 여성의 예민한 의식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한 평범한 여자(영혜)가 갑자기 채식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주변의 삶들이 하나하나씩 바뀌기 시작한다. 소설은 이 변화의 여정을 여자의 남편과 여자의 형부, 언니의 시각에서 각각 들어간 연작소설이다.

고기에 대한 일체를 거부한 여자는 고기를 끊는 것 뿐만 아니라 그녀를 옥죄는 브래지어 등 외피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평범한 가족들은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그녀에게 화가인 형부의 예민한 예술적 관심이 시작된다.

특히 처제에 엉덩이 근처에 짙은 몽고반점이 있다는 아내의 말로 인해 처제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되고 결국은 그녀를 불러 육체를 바탕으로 한 비디오아트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좋은 몸의 후배 작가에게 부탁하지만 화가의 예술적 의욕은 육체의 욕망으로 전이된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모든 것은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여자가 채식을 시작한 이유에 대한 명확한 해설도 없다. 권위적인 아버지의 폭력이 원인일 수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대신에 작가가 가장 친절하게 한 설명은 "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빠른 속력으로 통과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그러던 어느 찰나 일상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린 걸까" 정도가 언니를 통해 묘사되는 원인이다. 사실 그 이유 없음이 이번 수상에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할 정도로 소설은 자연스럽게 여자의 고통 속으로 들어간다.

그럼 작가는 왜 그런 세계에 빠져들었을까. 지금은 기록을 찾을 수 없지만 나는 98년 즈음 문학웹진 '문예평론'의 편집장으로 그녀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69년생에 영광 태생인 내가 70년생 광주 태생인 그녀를 인터뷰 하고 난 뒤 묘한 샤머니즘의 기운을 느꼈다.


인터뷰에서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작가에게 느껴지는 기운의 상당 부분은 80년 광주에서 연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비슷한 세대인 우리는 십대의 시작점에서 광주를 겪었고, 광주 청문회가 있었던 때 대학생이 된 나이였다.

어떻든 그런 심연을 뚫고 한강은 <소년이 온다>라는 걸출한 소설을 통해 80년 광주를 그녀의 방식으로 재현했다. <소년이 온다>를 만나기 전에는 임철우의 <봄날>이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다면 <소년이 온다> 속 '동호'는 또 다른 이미지로 광주를 각인시켰다.

반면 <채식주의자>는 사람의 본연적 의식을 바탕으로 삶을 관조하는 소설로, 수많은 한강 마니아를 만들어냈다.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부터 이어지는 그녀 소설에 빠져든 이들은 그녀가 묘사하는 세계에 공감하는 이들일 것이다.

작가 한강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읽으며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요즘은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짙은 회한의 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들린 그녀의 수상 소식은 우리 세대에게 뭔가 이뤄진 게 있다는 동질감을 주는 것 같아서 반갑다.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창비, 2007


#한강 #맨부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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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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