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들어와" 난 여자화장실에 간다

[주장] 소수자들이 편견없이 이용할 수 있는 성 중립 화장실, 필요하다

등록 2016.06.16 21:36수정 2016.06.1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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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구분이 확실한 공중화장실 ⓒ 이훈희


"아빠! 들어와도 돼! 여기 아무도 없어!"

먼저 화장실에 들어간 큰딸이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 외치는 소리다. 필자는 남자다. 그런데 여자화장실에 종종 들어간다. 오해 마시라. 여자화장실을 엿보려고 들어가는 변태가 아니다. 남자화장실에 줄이 길어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혼자 있을 땐 남자화장실을 이용하는 평범한 시민이다.

주말에 딸들과 놀러 다니다 화장실을 가야 할 땐 여자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저렇게 망을 봐주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같이 들어가 아이 일 보는 걸 도와준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때는 남자화장실엘 데려가도 괜찮았는데 큰 아이가 대여섯 살이 되면서 남자화장실을 가지 않으려고 한다.

여자화장실에 출입하게 된 것이 벌써 3년은 된 것 같다. 화장실 앞에 남자가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보시는 여성분들도 있었다. 또 아이를 화장실에 먼저 들여보내 놓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괜찮으시다며 들어와서 아이가 일 볼 수 있게 해 주라는 여성분들도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다른 여성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들을 땐 들킬까 봐 마음을 졸인 적도 있다. 남녀 구분이 확실하게 된 화장실이 이렇게 날 불편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혼자인 남자로서 살아갈 땐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미국의 성 중립 화장실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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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과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성 중립 화장실' 표식 ⓒ flickr


얼마 전 성소수자들이 화장실을 이용할 때 불편하지 않도록 성 중립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는 TED 강연을 본 적이 있다. 강연자인 이반 코요테(Ivan Coyote)씨는 트랜스젠더다. 이반은 공기, 물, 음식, 보금자리, 사랑 등과 같이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요소 중의 하나로 안전하게 소변을 볼 수 있는 공중화장실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연사는 성전환자로서 공중화장실이나 탈의실을 이용하는 것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의 일부 주와 도시에서 추진되고 있는 태어날 때 성별에 맞게 화장실을 사용하게 하려는 법안과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반은 "대체 누가, 어떻게 이 법률을 시행할까요? 아랫도리를 확인할까요? 공용수영장 탈의실 앞에서 성기를 확인할까요?"라고 말하며 이런 법안의 실효성과 비인격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성전환자들은 공중화장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연사는 이분법적 성 구분에 깔끔하게 들어맞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는 공중화장실을 1인용 칸막이가 있는,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로 바꾸자는 의견을 피력한다.

미국에서도 성 중립 화장실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몇 개 주에선 성별에 맞는 화장실 이용을 강제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기도 했고, 또 다른 주나 도시에선 성 중립 화장실을 갖추자는 운동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엔 미 동부 예일대학교에도 각 건물에 성 중립 화장실을 도입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소수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국에도 성 중립 화장실을 도입해야 할까?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향후 몇 년 동안은 딸아이들과 함께 화장실을 다녀야 하는 내겐 반가운 일이다.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불편하고 혹은 무서울 수 있는 여성들에게도 반가운 일이라 생각한다. 혼자서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운 장애인이나 성별이 다른 돌봄 도우미의 경우에도 성 중립 화장실은 편안한 선택지가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지난주 퀴어문화축제로 한국 사회에서 다시금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성소수자들에게 이와 같은 성 중립 화장실은 꼭 필요한 장소라 생각한다. 성 중립 화장실 설치가 성소수자들을 '혐오'하기까지 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겠다는 의지 표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소수자 #LGBT #공중화장실 #성중립화장실 #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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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지치지 말기를. 제발 그러하기를. 모든 것이 유한하다면 무의미 또한 끝이 있을 터이니. -마르틴 발저, 호수와 바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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