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소식에 환호하는 지지자들.
연합뉴스·EPA
20대는 꼰대를 싫어한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꼰대질은 참을 수 없다. 낮은 취업률,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오력'하라며 모든 문제는 우리의 노력 부족이라고 말하는 그들을, 우리는 싫어한다. 꼰대를 거부하며, 싫어하기에 스스로가 꼰대가 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한다. 꼰대들에게 예의를 갖추라 주장한다.
나 또한 그러하다고 믿었다. 학교에서 선배가 되거나, 군대에서 선임이 되면서 항상 '꼰대가 되지 말자'를 되뇌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당선을 보며 깨달았다. 온몸으로 꼰대를 거부했던 내가 바로 꼰대였다는 것을. 꼰대는 꼭 나이가 많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들은 적이 있지만, 그게 내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
물론 트럼프와 박근혜를 뽑은 행위는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며, '정치적 올바름'과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는 위기에 빠진 시민들을 구해주지 못한다. 그가 추진할 정책들은 일명 줄푸세로, 규제를 풀고 신자유주의를 더 강화시킬 것이다. 자본가가 아닌 일반시민들의 삶은 더욱 황폐해질 것이다. 정말 경제가 바뀌길 바라며, 금융 기득권들에게 2008년 경제위기의 책임을 물게 하고 싶었으면 버니 샌더스를 찍었어야 했다.
또한 그가 당선을 위해 이용한 인종, 성차별주의는 미국 시민들을 분열시킬 것이며, 미국의 문화적인 힘을 약화시킬 것이다. 심지어 박근혜는 아예 색깔조차 없었다. 오로지 아버지 후광으로 표를 얻었다. 대선 과정에서 주창한 공약을 지키지 않으며, 공약을 이행하라는 시민들에게는 물대포를 쐈다. 박근혜 정권 이후 시민들의 삶은 더욱 암담해졌다. 가계부채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70년대식 통제로 문화적 상상력도 소멸되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 분명히 트럼프와 박근혜를 뽑는 과정은 올바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언론, 정치인, 일부 시민들 그리고 나의 꼰대질이 트럼프, 박근혜 지지자들의 분노를 불러오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으리라.
꼰대질이 시작되면 옳고 그름의 문제는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말하는 내용은 산화되고 오직 가르침을 당한 기억만 남게 된다. 분한 감정만 머무른다. 자연히 대화는 소멸된다. 그 사라진 대화는 트럼프, 박근혜의 당선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꼰대질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득의 기술이라며,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격언도 많이 봐왔고 공감도 했다. 현실은 트럼프와 박근혜 지지자들을 가르치려던 '우리'가 꼰대였다.
내 친구는 집회에 나갔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