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광장에서 꿈꾸는 최후의 혁명

'혁명'과 '깨달음'

등록 2016.12.13 09:47수정 2016.12.1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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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을 처음에는 '촛불주권 선언문 또는'이라고 했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쾌거를 이뤄 낸 촛불이 매듭 하나를 구획 짓는 의미로 17세기 영국 명예혁명의 권리장전 같은 선언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시민의 주권이 철저히 보장되는 사회, 정치적 결정의 주체가 어떤 경우에도 시민대중인 그런 현실을 담는 선언 말이다.

그러나 촛불혁명이나 시민권력, 시민의회, 시민주권회의 등은 차고 넘치는 담론인지라 방향을 바꿨다. 촛불집회마다 죄다 참가하면서 들었던 생각 하나가 떠올라서다. 혁명과 깨달음.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두 단어의 조합이 별로 익숙하지는 않다. 이것은 혁명과 깨달음이 양 날개가 되는 '최후의 혁명'을 그리는 것이다.

영국의 권리장전. 곧, '신민(臣民)의 권리와 자유를 선언하고 왕위계승을 정하는 법률'이라는 이름의 의회제정법이 공포되었고 영국의 절대왕정이 무너진 자리에 입헌군주제가 확립되었지만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회적 모순과 인민의 피 흘림이 계속되었다.

더 이상 혁명이 필요 없는 마지막 혁명은 안 될까.

섣부른 예단이지만, 어쩌면 12월 9일을 촛불혁명 기념일로 선포하는 날이 올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대통령 탄핵 인용결정이 나오는 것은 명확해 보이지만 그 결과와 무관하게 촛불혁명 기념일은 현실성이 있다고 본다.

박근혜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 된 날이라서만은 아니다. 단순히 대통령이 탄핵되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최순실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들의 공식·비공식 또는 법적·탈법적 전횡과 비리가 촛불의 철퇴를 맞은 날이고 억눌려 살던 민중들이 촛불 하나로 승리를 거둔 날이다. 대통령의 거취와 정치일정을 놓고 두 달여 계속된 어지러운 논란을 잠재우며 대통령 퇴진과 구속, 패당들의 처벌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촛불시민의 1차 승리의 날. 이런 의미가 더 크다.


이번 촛불혁명은 다양한 형태로 중국과 일본, 동남아를 넘어 세계로 번져 갈 것이다. 동학농민혁명과 3.1만세운동. 광주민주화운동과 6,7,8월 항쟁이 그랬듯이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혁명을 꿈꿔보는 것이다.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인 혁명. 온전한 혁명. 행복한 혁명을.

이제는 마지막 혁명을 기획해도 되는 때가 아닐까. 비록 긴 여정이 될지언정 최후의 혁명 시나리오를 짤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세상만물까지 사랑과 어우러짐과 격려와 호혜헌신의 혁명. 다름으로써 하나 되고 조화를 이루는 사회. 물질적 검소함과 정신적 개벽이라 일컫는 최후의 혁명. 깨달음이 대중화 되는.


마지막 혁명에 대한 설명이 꽤 장황하다. 장황한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고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쉽지도 않고 명료하지도 않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 그런 말 하면 김샌다고 할지 모른다. 누구 말마따나 촛불을 횃불로 지펴 올리는 때에는 자기성찰이니 깨달음이니 그런 말은 나중에 하자고 할 수도 있다. 혁명 혼자서는 결코 완수 할 수 없는 과제가 있다. 혁명이 퇴색해 질 때 까지 혁명은 한가한 날을 갖지 못한다.

혁명의 원동력이 분노와 편 가르기와 집단의 위력임은 어떤 혁명에서나 같다. 광화문의 촛불도 그렇다. 손가락질 하며 최순실-박근혜의 공범들과 부역자들을 호출한다. 계속해서 믿지 못할 놈들과 그들의 죄상을 들춘다. 촛불 내부에서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도 생길 수 있다. 큰 사랑의 호통은 증오의 저주와 다르다. 착한 부자가 없듯이 선한 권력은 없다.

수백만 명이 모였으나 유리창 하나 깨지지 않았고 쓰레기 하나 뒹굴지 않았던 촛불광장의 기적은 이제 마지막 혁명을 꿈 꿔도 되지 않을까. 내 친구의 귀띔으로 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 12월 13일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촛불 #혁명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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