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행사 열리던 학교에 '철퇴'가 가해졌다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2부 교단일기 (13)

등록 2016.12.19 17:34수정 2016.12.1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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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을 아우의 안부문자


원주 형님!
청안하시느냐고 묻기 참담한 시절
병신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크게 잃어버렸으니 아주 귀한 것을 찾은
촛불의 시간이 아니었나 헤아려 봅니다.

소란한 세월 속에 미증유의 조류독감으로
농부들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조류독감 최고의 백신은
가축에게 자유와 생명의 존엄을 부여하는 것이겠지요.

나는 칠백여 수의 닭들에게
감히 '닭님'이라 부르며
공생공락을 하기에 AI 걱정은 안합니다.
그래도 근심이 많지요. 
3km 반경 가금농장에서 병이 발생하면
인근 가금류 생명체들을
모조리 살 처분하는 광기의 농정이 두려 웁지요.

오늘 하루도
강가에 나가서 모진 역병이 지나가기를
두 손 모아 빌었지요.

강 건너 여주 점동면 여강 도리마을에 사는 홍일선 농부시인이 나에게 안부 겸 문자를 보내왔다. 그는 착한 아내와 여강 강마을에서 700여 수의 닭, 그리고 당나귀 '다정'이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관련 기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닭님들의 이야기 / 사람과 동물들이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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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숲명상농원의 닭님들, 이렇게 방사한 닭들은 면역성이 강하다. AI 조류독감에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다. ⓒ 박도


교과서와 참고서만 매달린 학습

홍일선 시인 부부가 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몇 해 전 경기도 용인에 사는 이상권 작가(소설)가 집에서 기르던 토종닭 일부를 AI 조류독감 여파로 시청 직원에게 빼앗겨 모두 살처분 당했다. 이 작가는 자기가 애지중지 기르던 닭이 더 이상 살처분 당하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암탉 네 마리와 수탉 한 마리를 몰래 차에 싣고 와서 여강 도리마을에 사는 홍 시인에게 맡겼다. 그래서 홍 시인 부부는 닭과 더불어 살게 됐다.

이즈음도 홍 시인 부부는 닭님을 하늘처럼 섬기며 그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그는 닭님에게 사료가 아닌 밥을 주며, 낮 시간에는 우리에 가두어 기르지 않고 온통 풀어놓고 있다. 그래서 홍 시인 닭님들은 밭에서 배추잎도 뜯어먹고, 도랑에서 미꾸라지도 잡아먹으며, 산과 들판을 마냥 쏘다니며 매우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사실 지난날 우리네 조상들은 이렇게 닭과 소와 돼지를 기르며 그들과 더불어 살았다.

그런데 그 언제부턴가 닭과 돼지, 소들은 공장의 공산품처럼 대량으로 마구 쏟아지고 있다. 몇 해 전 서울 근교의 양계장과 양돈장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100평 남짓한 양계장에서는 수천 마리의 닭들이 사육되고 있었는데, 철망으로 엮은 닭장은 연립주택 마냥 2~3층으로 촘촘히 이어져 있었다. 그 크기는 쥐덫보다 조금 더 컸다. 철망 속의 닭은 180도 회전조차 할 수 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주인은 닭장의 공간이 넓으면 운동량이 많아져 산란율이 감소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닭의 부리는 죄다 끝부분을 펜치로 잘라 뭉텅했다. 원형대로 두면 닭이 사료를 먹을 때 밖으로 튀겨 낭비가 심하기 때문이란다.

계사 천장에는 전등들이 촘촘히 켜 있었다. 닭들이 밤에도 자지 않고 사료를 먹어야 산란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라 그런다고 했다. 닭들은 매일매일 산란이 체크되고, 산란율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폐계 처리된다고 한다.

양돈장의 경우도 양계장과 오십보백보였다. 돼지우리 역시 공간이 좁았다. 운동량이 많아지면 살이 붙지 않기 때문이란다. 100근이 넘는 어미돼지는 제 몸뚱이를 주체할 수 없어 누워 먹고 누운 채 지내고 있었다. 그 돼지는 먹는 사료값에 견줘 더 이상 체중이 늘어나지 않으면 그 역시 가차 없이 도살장 행이었다.

나는 그 양계장과 양돈장을 둘러보면서 오늘의 우리 교육현장이 겹쳐졌다. 학생들은 이른 꼭두새벽부터 푸석푸석한 얼굴로 등교하여 빡빡한 학습 일과 속에 보낸다. 그들은 방과 후에도 밤늦도록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의 타율학습으로, 좁은 교실에 앉아 오직 교과서와 참고서만 달달 외고 있다. 그들의 파리한 모습은 어쩌면 양계장의 닭, 양돈장의 돼지 같고, 떡만 잔뜩 먹은 미운 자식 모습 같기만 하다.

오늘의 중고, 특히 고교의 획일적·미시적 입시 중심의 능률 위주 교육은 축산농가의 가축 사육을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런 고도의 능률 위주 교육은 점차 인간성을 상실케 하고, 창의적인 인물을 키우지 못하기 마련이다. 결국은 조류독감에 속수무책인 양계장의 닭처럼 면역성이 부족한 나약한 인간만 양산하는 잘못된 교육현장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떡만 잔뜩 먹여주는 오직 입시 위주의 교육, 그것도 한꺼번에 대량으로 먹여주는 기형적인 교육은 AI 조류독감에 속수무책인 가축과 같아 몹시 안타깝다. 이렇게 자란 학생들은 조그만 고난과 시련에도 쉽게 포기해 버리는 나약한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오늘의 능률 위주 입시 교육은 나약한 인간만 양산하는 것 같아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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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모의올림픽대회 나라소개 위 미국, 아래 잠비아 ⓒ 박도


남녀공학 학생의 입학소감

1976년 내가 새로 부임한 이대부속중고등학교는 1980년까지는 작은 학교이면서도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들의 창의력을 길러주고자 다양한 교내외 활동이 매우 활발한 학교였다. 먼저 그때 학생들의 입학소감부터 들어본다.

"503 이대부고!, 그 순간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심장이 마구 뜀박질했다. 너무 기뻐 하늘에 붕 뜬 기분이었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눈에다 침을 발라가며 우는 척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을 주장하시는 부모님이 질겁하시면서 다른 학교로 전학시킬 것 같아서…."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아! 괴롭다. 내 얼굴이 잘 생겨서…."

학생들의 교내 행사만 봐도 신입생 구기대회, 학급별 학창대회, 등산소풍, 생활훈련, 수학여행, 모의올림픽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1년 내내 꼬리를 물었다.

신입생 구기대회가 열리는 체육관으로 가보자. 남학생들의 학급별 농구시합에 여학생들의 응원전은 열광적이다. 코트에서 뛰는 선수보다 응원석이 더 열기가 높다. 따라서 선수들은 파이팅 넘치는 경기를 하기 마련이다. 체육선생님은 지나친 승부욕으로 부상자가 생길까 노심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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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부고 학생들의 등산소풍 때 조별모임 촬영 ⓒ 박도


2층 밥 3층 밥

이 학교의 등산소풍은 예사학교의 소풍과는 다르다. 남녀학생 7~8명이 한 조가 된다. 그들은 각자 코펠, 버너, 그리고 쌀과 찬, 찌개거리를 준비해 와서 도봉산 우이암 아래서 찌개를 끓이고 밥을 짓는다. 2층 밥 3층 밥이지만 마냥 즐겁다. 우이암을 오른다. 위험한 등산길 중간 중간에는 학생들이 서로서로 등산과 하산을 돕는다.

2박 3일의 생활훈련은 각 조별로 촌극제가 단골 메뉴다. 신식 결혼식도 있고, 구식 결혼식도 있다. 무당들의 푸닥거리도 있고, '베니스의 상인'도 무대 위에 올려진다. 각국 민속제 때는 남학생들이 여장을 해 자기 나라 고유의 복장을 한다. 분장은 각 조의 여학생들이 도맡아 했다.

이벤트가 열리면 학생들은 재치 있는 입담으로 좌중을 폭소로,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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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모의올림픽 피날레 장면 ⓒ 박도


교내모의올림픽대회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교내모의올림픽대회는 종합예술제다. 학생들은 이 대회 준비부터 신이 난다. 그들은 각자의 창의력과 자기네의 소질을 마음껏 쏟아낸다.

중고 전교생을 4~6개의 나라로 나눠 대회를 치르는데, 하이라이트는 점심시간 직후에 벌어지는 나라소개 때다. 인도의 코끼리, 미국의 자유여신상, 이집트의 피라미드, 영국의 대관식, 이스라엘의 여리고성 등 각 나라는 응원단장의 제스처와 치어걸의 율동에 맞춰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선수들은 사력을 다해 메달 경쟁을 벌인다.

이대 대운동장의 성화가 꺼지면 재학생, 졸업생, 선생님들이 한데 어울려 포크댄스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렇게 다양하고 즐거웠던 학교행사도 1980년 제6대 정식영 교장 선생님이 부임하자 일제히 철퇴가 내려졌다. "이대부중고는 '노는 학교'라는 항간의 소문을 불식시킨다"는 교장 선생님의 취임 일성은 10월 유신처럼 그해부터 학교의 전 행사를 단축 및 폐지케 했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박도 지음 실록소설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이 시중 서점에서 절찬리 판매되고 있습니다(눈빛출판사 / 1만3000원).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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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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