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독재자'는 모든 학급에 있었다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2부 교단일기 (14)

등록 2016.12.21 21:25수정 2016.12.2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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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기본이 결여된 교육의 결과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지켜보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교육의 근원부터 잘못됐다는 자괴감이 든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와 먼 제도와 의식, 관습에서 살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그 첫째로 대통령의 권한이 옛날 전제 군주국 못지않게 매우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한 예로 우리 헌법에 삼권이 분립돼 있다고 하면서도,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행정·입법·사법 3부가 서로 견제는커녕 사법부의 장인 대법원장까지도 사찰의 대상이 되는 참담한 지경에까지 이른 현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돌아서자 한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이 있다고 표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돌아서자 한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이 있다고 표시하고 있다.연합뉴스

21세기 오늘 대통령은 아직도 17, 18세기 왕조시대 군왕처럼 제왕적 권한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도 그런 의식 속에 살고 있다. 그러자 내각을 비롯한 참모들은 지난날 환관과 같은 지당 인사들만 몰려 있다.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청와대에 불러 모아 놓고 기금 출연을 요구하였다는데, 어느 기업인이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 보복이 두려워 감히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어느 기업인이 회사 이익금으로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 돈을 쓰고, 일자리를 만들고자 투자하겠는가.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대통령과 그 측근을 위해서라면 별별 짓도 다하고 있다. 그 댓가로 기업인들은 탈세나 탈법을 하는 것은 불을 보는 듯 명명백백한 일이 아닌가.

그 둘째는 민주주의 교육을 기초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교과서를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만 배웠을 뿐이지, 실제 생활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실천교육을 익히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대통령은 백성들의 공복이 아니라, 왕조시대의 임금처럼 착각하고 백성 위에 군림하며, 또한 어리석은 백성들은 이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우리 백성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기본이 결여된 교육 속에 그것이 잘못인 줄도 모른 채 살아온 결과가 오늘의 이런 국정농단 사태를 가져왔다. 이에 대한 근본 시정, 일대 개혁 없이는 오늘의 모든 현안을 앞으로도 근원적으로 해결치 못할 것이다.

 졸업 후 30년을 넘긴 이대부고 21기 제자들이 내가 사는 곳으로 찾아오다(2011.6.횡성 자작나무숲 미술관에서).
졸업 후 30년을 넘긴 이대부고 21기 제자들이 내가 사는 곳으로 찾아오다(2011.6.횡성 자작나무숲 미술관에서).박도

민주화가 안 된 교실


나는 교단에 선 이래 이런 점을 일찍이 깨닫고 1980년대 초부터 최소한 내가 담임하는 반에서는 이런 민주주의 기본을 실천하도록 특히 내가 할 수 있는 교실 내 민주화 교육에 노력해 왔다.

그 한 예로 그 무렵 수업시간 각 교실을 드나들면 거의 대부분 학급에서는 '차렷 경례!'라는 구령을 학급 반장이 도맡아 하고 있다. 반장, 부반장이 대의원 총회라도 참석하여 늦게 들어오는 시간은 학생들은 어쩔 줄 모른다. 주번을 지명시키면 그 녀석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엉거주춤 일어나 '차렷 경례!'를 하고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얼른 앉아버린다.

그런 어색한 행동을 보고 학급 학생들은 까르르 웃는다. 모든 건 반장이 해야 한다. 모두들 그게 정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학급반장은 선생님 대신 숙제 검사도 하고, 청소 감독도 한다. 과제물도 걷고, 교실 환경미화도 하고, 어떤 심한 농땡이 교사인 경우 반장은 선생님이 준 교안을 보고 칠판에 나가 판서까지 한다.

그뿐 아니라 출석부 정리, 시험지 채점, 소풍날이면 담임선생님의 도시락까지 책임진다. 일부일 테지만 학생이 반장이면 엄마까지 반장 노릇을 해야 한다. 반장 엄마는 계주처럼 학급의 능력 있는 학부모에게 은밀히 연락하여 기부금을 걷어 학교 측에나 담임선생님에게 상납하는 일도 한다.

그 반대급부로 반장은 담임선생님이 위임한 막강한 권한과 특혜를 받는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만 저만 '독재 교실'이 아니다. 학교 교실은 어른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학교에서 보내면서 수많은 반장을 겪어 보았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반장이었던 이아무개는 우리들의 황제였다. 그는 우리들보다 나이가 두 살 위였는데 자연 우리보다 덩치도 컸고 정신연령도 앞섰다. 해방둥이인 우리 학년은 남학생이 한 학급밖에 되지 않아 그가 수년간 반장을 도맡다시피 했다. 담임선생님의 입장으로서는 그런 녀석이 반장을 하면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선생님의 지시사항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해줬기 때문에.

 왼쪽은 1982학년도 1-3반 학급반장 신유철 군과 함께(2011. 8. 24. 횡성 자작나무숲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 오른쪽은 1984학년도 1-1학급반장이었던 김정인 양과 함께 수학여행 가는 길 휴게소에서(1985. 8.)
왼쪽은 1982학년도 1-3반 학급반장 신유철 군과 함께(2011. 8. 24. 횡성 자작나무숲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 오른쪽은 1984학년도 1-1학급반장이었던 김정인 양과 함께 수학여행 가는 길 휴게소에서(1985. 8.)박도

민주주의의 생활화와 실천

5학년 때 아무개 담임선생님은 때때로 반장에게 칠판에다 전과지도서를 판서하게 하고 학생들은 그걸 보고 필기하는 시간으로 보내게 했다. 그런 뒤 담임선생님은 자리를 비웠다. 자연 교실이 소란스러울 수밖에. 그러면 반장 녀석은 떠들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거나 떠든 녀석들의 이름을 적는다. 그 명단이 담임선생님께 전해지면 종아리나 손바닥을 맞지 않으면 벌 청소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는 한심한 교육현장이었다.

그 후로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반장의 횡포와 독재는 여태껏 상존했다. 교사도 학생도 반장의 이런 행위가 당연한 걸로 착각하고 있고, 아예 그런 관습에 젖어 반장은 으레 그래야 하는 줄로 알고 있다. 반장이 전권을 쥐고 흔든다. 그는 자기 권한 밖까지 행세한다. 그런 반장을 똑똑한 반장, 유능한 반장으로 친다. 독재자가 판치는 세상이었다.

어떤 사회, 또는 집단의 지도자는 그 구성원에 대한 봉사자라는 생각보다 그 위에 군림, 그들을 지도 감독하면서 많은 특혜와 특권을 갖는 게 당연케 여겼다. 사실 그런 논리는 왕조시대의 유물이요, 식민지 교육의 잔재요, 오랜 독재 정권의 악습이다.

민주주의가 이 땅에 들어온 지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교과서에서 이론으로만 배웠을 뿐, 그 민주주의의 생활화와 실천은 아직도 매우 미흡하다. 민주주의 교육이 효과적으로 학습되려면 이론과 실험실습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민주주의 교육은 이론 교육 뿐 실험실습 교육의 부재였다.

작금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의 함성이 드높다. 이런 현상은 그 동안 민주주의가 이 땅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결과다. 내 생각으로는 선진 민주공화국은 촛불이나 함성, 시위만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언제 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배운 적이 있었던가?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구의 여러 나라도 수백 년이 걸렸다. 그런데 남이 거저 가져다준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꽃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성급한 일이다.

우리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자라나는 2세들에게 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한다. 올바른 민주주의 이론 교육도 철저히 시켜야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실습교육도 뒤따라야 한다. 비록 그것이 힘들고 기성세대의 권익에 침해된다 하더라도.

 1983학년도 이대부고 1-1반 학생들과 생활훈련관 앞에서(1983. 5.)
1983학년도 이대부고 1-1반 학생들과 생활훈련관 앞에서(1983. 5.)박도

교실의 민주화

학교의 교실은 어린 세대가 처음으로 접하는 공적인 사회집단이다. 어린 세대는 학교 교실에서 민주주의 이론을 배우고, 실습교육으로 이를 익히고 생활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자들은 먼저 자신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식 개혁과 함께 투철한 실천자가 돼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민주화된 교실에서 자란 어린 세대가 어른이 될 때 우리 사회 전 분야는 저절로 민주화가 될 것이다.

사소한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릴지 몰라도 학급 반장이 임기 내내 매 시간마다 구령을 부치는 일은 없애야 한다. 그런 일은 주번에게 시키면 저절로 전학생에게 골고루 기회가 돌아간다. 그 밖의 학급의 모든 일도 학급 학생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배분해야지 반장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하는 일의 집중, 권력의 집중은 막아야 교실의 민주화가 이뤄진다.

나 자신도 학창시절 반장을 한 번도 못했기에 구령을 부쳐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후일 군에 가서 구령을 처음 부칠 때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학급 학생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를 줘서 그들 모두 장차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소양을 학교에서 길러줘야 한다.

그들에게 그런 기회를 줌으로써 주인의식과 주체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학급 반장은 학급회를 주재하는 일, 그밖에 학급을 대표하는 일(학생회에서 대의원으로 참석하는 일)만을 보게 하고 나머지는 학급 학생 자치기구에 일임한다면 그들은 처음에는 서툴지라도 곧 협동심을 발휘하여 창의적이며 자율적으로 일을 해결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인류가 발명한 제도 중 가장 이상적인 제도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제도 아래 살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이 민주화된 의식을, 그리고 나의 가정, 나의 교실, 나의 학교, 우리나라가 민주화될 수 있도록 함께 힘써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교실의 민주화, 이것은 민주 사회의 주춧돌이다. 교실의 민주화 없이 민주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

이번 대통령 탄핵 열풍의 기회를 다행히 전화위복으로 삼아 잘못된 비민주적인 제도와 인습을 바꿔야 한다. 아울러 더욱 살기 좋은 선진 대한민국을 위하여 아울러 그 뿌리가 되는 가정의 민주화, 교실의 민주화, 사회의 민주화 등 그 밑바닥부터 다져가는 민주주의 교육을 다시 시작할 때가 아닐까? 

"이게 나라냐"고 21세기 오늘에 전제 군주시대와 같은  이 어처구니없는 참담한 현실에 우리는 그에 대한 분노에 앞서 우선 내 주변부터 진정한 민주 국가를 위한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실천이 필요하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박도 지음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 시중 서점 판매 중(눈빛출판사 / 1만3000원).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교실의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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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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