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방송 MBC, 국민 방송으로 돌릴 수 있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370 ] 정영하 전 MBC 노조 위원장

등록 2017.01.16 13:10수정 2017.01.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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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공기에 비유할 수 있다. 공기가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듯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없다면 그건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민주주의 사회뿐만 아니라 그 어떤 사회라도 언론이 없으면 그 사회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 한국의 언론은 정권에 의해 장악되었다. 공정언론의 중요성을 아는 언론사내의 구성원들이 공정언론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지만 돌아온 건 해고, 정직, 감봉 등의 징계와 비제작 부서로의 발령이었다. 그러는 사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기자들은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어느덧 9년이 흘렀다. 최근 이 시기 언론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그로 인해 해직 당한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이 개봉돼 화제다.

이 영화에는 언론인들의 공정방송을 위한 투쟁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당사자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하여 2012년 MBC 노조의 170일 파업을 지휘했던 정영하 전 MBC 노조 위원장을 지난 10일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 내의 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정 전 위원장과 나눈 일문 일답이다.

정영하 전 MBC 노조 위원장 ⓒ 이영광


- 새해잖아요. 먼저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 부탁드려요.
"공영방송이 제대로 역할을 못 하고 그 빈자리를 <오마이뉴스>가 상당 기간 대신해 암울한 시절이 드디어 그 끝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새해가 밝았습니다. 청와대 방송 지켜보느라 정말 큰 욕 보셨잖아요. 대한민국 언론사에 비극을 종결짓는 한 해가 될 겁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 12일 해직 언론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이 개봉하잖아요. 2008년 구본홍씨의 YTN 사장 취임부터 2015년 MBC 해직자 무효 소송 2심 판결까지 다루고 있잖아요.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세요?
"솔직히 영화를 안 보려고 버텼어요. 전주영화제 때 일정 때문에 못 간 것도 있지만, 그 후에 잡힌 시사회들도 와달라고 했을 때 안 가고 버텼거든요. 이유는 공정방송을 염원하는 MBC 구성원들의 투쟁과 저항은 계속되고 있는데 뒤를 돌아보는 게 도움이 안 될 거 같아서요. 배급사 고영재 대표님이 시사회를 계속 잡고 연락하는데 버티다 결국 봤죠.

청와대의 언론장악을 막아내진 못했지만 참 징하고 치열하게 싸우고 버텼다고 생각했습니다. 해결된 게 없으니 잘 싸웠다고 자부할 순 없는데, 더할 나위 없이 버텼다는 생각은 드네요. 해직자 위주로 스토리를 구성했지만 제 눈엔 화면에 담지 않은 우리 구성원들의 저항이 눈에 선했습니다. '저땐 상황이 그랬지. 발단은 이거였는데. 참 질기고 독했네. 등등' 화면에 담기진 않았지만 그때 상황을 해설이라도 하듯 줄줄 떠오르더라고요."


- 눈물도 흘리셨을 것 같아요.
"마음이 짠했죠. 화면 속에 투쟁과 저항은 5~6년 전인데 MBC는 아직도 최악의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버티기가 계속되고 있는 거잖아요. 해직자 복직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YTN은 보도기능이 MBC만큼 망가진 상태는 아니거든요. MBC 구성원들은 사방으로 쫓겨나며 죽어라 버티고 있지만, 시청자들의 눈엔 청와대 방송에 남아있는 월급쟁이일 뿐이고. 청와대 MBC를 공영방송으로 되돌리기 위해 내부에서 버티고 있는 구성원들의 심경과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짠했습니다."

- 얼마 전 MBC 막내 기자 3명이 반성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화제였어요.
"무지 안타까웠죠. 그 기자들은 MBC가 공영방송의 시스템에서 제대로 역할 하고 동작할 때 근무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막내 기자들이에요. '보도는 이렇게 하는 거야'를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못 가진 기자들이죠.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전쟁 통에 태어난 아이들(?)이라 얼마나 어린 시절의 기억이 혼란스럽고 당혹스럽겠어요. 하지만 동시에 희망을 느꼈습니다. 저 막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준 건 없지만, 공영방송 MBC는 어떠해야 하는지,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짚어내고 저항하잖아요."

-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YTN이나 MBC나 구성원들이 저항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분신, 점거 같은 극한투쟁은 못 했지만. 170일 파업을 했는데도 MBC가 청와대 방송이 되는 걸 못 막은 거고 여전히 그런 MBC에 소속돼 국민의 비난과 채찍을 맞아가면서 그래도 MBC를 버릴 순 없다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 우리 자화상이 안타까웠어요.

정말 안타까운 건 스크린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는 이용마 기자입니다. 작년 8월에 복막암 판정을 받고 현재 모처에서 요양 중이에요. 이 기자는 170일 파업 때 홍보국장으로 투쟁의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소중한 인연인데 그런 그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삶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그가 선택한 방법과 길이 병을 이겨낼 거라 믿지만 제가 아픈 것보다 힘들어요. 작년 8월 발병 직후 병원에 찾아가 얼굴 보고, 자꾸 찾아가는 게 치료에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아 통화만 하다가 며칠 전 요양하는 숙소로 찾아가 얼굴 봤는데 영화 속 건강한 모습이 자꾸 떠올라 힘들었어요."

- 영화 주요 출연자로서 기분이 어떠세요?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제가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다른 해직자들도 마찬가지고요. MBC, YTN 구성원들이 주연으로 보였어요. 해직자들의 증언 그리고 그때 당시 구성원들이 했던 투쟁과 저항의 큰 줄거리로 연결되면서 화면에 나오지 않은 부분까지 지나가더라고요. 저항만으론 안 돼서 파업으로 투쟁하고, 마냥 할 순 없으니 170일 진탕하고 끝냈는데 해결되는 거 없어 다시 또 저항하다 부당전보 당하고 쫓겨나 몇년의 굴욕적인 시간을 버텼죠. 영화는 5년 전 투쟁을 담고 있지만, 현재 진행형인 MBC 양심들의 수난사가 눈에 선하더라고요. 한편으론, 관객들이 '저들은 청와대의 MBC 장악을 막아내지도 못하고 이제 와서 면피하려고 해직자 몇 명 내세워 핑계 대나'고 생각할까 봐 걱정도 됐고요."

- 구성원이 주인공이라는 말에 공감할 수 있는 게, MBC의 경우 해직자는 아니지만 대부분 비제작 부서로 발령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내용상 해직된 사람은 200명이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공채에 지원해 뽑혔는데 본연의 일을 못 하는 상황에 놓인 것 자체가 해직이에요. 어쩌면 물리적으로 잘린 해직보다 원하지 않는 상황을 버티는 게 더 잔인한 거예요."

- 2012년 파업을 한 지 어느덧 5년이 흘렸어요. 그 사이 MBC는 더 무너져서 촛불집회에서 마이크에 달린 택을 떼거나 숨어서 리포트를 할 정도잖아요. 현재 상황 어떻게 보세요?
"암울하죠. 되게 힘든 상황인데 그냥 보기엔 5년 전 파업의 도화선이 된 한미FTA 반대 집회에서 쫓겨나는 상황과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내용상으로는 완전히 달라요. 훨씬 심각하죠. 왜냐면 그때만 해도 국민이 보내는 비난과 채찍엔 '너희 정말 이럴 거냐? 정신 차려라'하며 때리는 사랑의 매였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너희는 필요 없다. 사라져라. 너희는 국정농단의 주역과 함께 공조한 공범이다'라는 식의 비아냥과 비난인 거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MBC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서 남아 있는 구성원들이 다시 일어날 거라고 믿어요. 청와대를 없앨 수 없듯이 공영방송을 없앨 수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거든요. 그래서 떠나지 않고 버틴 거죠. 때문에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지금 촛불 집회에 나가면 JTBC는 환영을 받고 MBC, KBS는 비난을 받죠. 하지만 불과 9년 전인 2008년 광우병 촛불 때 MBC는 환영을 받았어요. 그렇게 보면 시간이 흘러서 다른 집회가 열렸을 땐 또 달라질 수도 있을 듯해요.
"저도 그렇게 봐요. 국민은 과거에 무슨 보도를 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들은 대로 가감 없이 전하는 언론사가 어디인지를 보는 거예요. 맨날 촛불시위를 할 수 없으니 표출을 그때그때 안 한다 뿐이지 어디 보도가 정확하고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보도를 해야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느끼며 환영할 겁니다."

"예능국 PD 사표제출, 상당부분 조직적 상황과 맞물려"

- 아직도 MBC에 희망이 있다고 보시는 거네요?
"공정방송을 염원했던 다수의 구성원이 숱한 부당전보와 부당인사에도 불구하고 MBC를 떠나지 않고 남아 있어요. 본연의 업무에서 쫓겨나 있기는 하지만 MBC 맨으로 버티고 있는 거죠. 이런 구성원들이 본연의 업무로 복귀하면 청와대 방송을 국민의 방송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어서 가능한 거고 그래서 이렇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지켜봐달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 MBC 예능국 PD 등이 계속 사표를 제출하고 이적하잖아요, 현재 MBC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보세요. 아니면 개인적 사정 때문이라고 보세요?
"저는 상당 부분 조직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최근 몇 년 새 이탈한 예능PD는 20여 명이나 되요. 상명하복 조직문화, 살인적인 업무로드, 돈 등 의견 분분해 보여도 이탈의 근원엔 예능국을 끌어온 본부장과 국장들이 그 책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예능 PD들에게 제작 자율을 보장하고 수장으로서 울타리 역할을 잘했으면 이런 최악의 인력유출 사태까지 오진 않았을 거예요. 동시에 신상필벌 엄하게 남발한 경영진도 문제의 중심에 있고요. '사내민주화, 제작 자율'이 무너진 조직문화를 만들어 놨으니 다른 이유는 곁가지일 뿐입니다."

- 안광한 사장이 취임할 때 '김재철 없는 김재철 체제'란 말이 있었죠. 3년이 되어 오는 2월이면 임기가 끝나는데요. 평가좀 해주시죠.
"평가할 게 없어요(웃음). 이전 사장들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받은 것 같은데 여러 얘기를 한 것 같아요. 그러나 이 분은 정말 무자격, 무능력자이기 때문에 평가가 안 됩니다. 안광한 사장은 MBC 창사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을 징계하고 해고하고 부당전보한 장본인이에요. 인사위원장으로 사장으로서 직접 책임자죠. MBC 창사 이래 징계자를 다 합쳐도 안 사장이 혼자 내린 징계자 수만큼 안 될 거예요."

- 2012년 170일 파업을 복기해보지만, 결론은 파업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였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럼에도 파업을 다른 방식으로 전개했다면 어땠을까란 아쉬움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당시 파업 방식이 문제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있잖아요.
"공영방송 MBC를 지킬 수 있는 건강한 구성원들이 주가 되어 투쟁한 파업이라 미련도, 후회도, 아쉬움도 없어요. 사람이 남아 있어야 재건도 제자리로 돌림도 가능한 건데, 170일 파업은 그런 MBC의 양심들이 원 없이 저항한 거예요. 그게 원동력이 돼 지금껏 MBC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거라 더 그런 거 같아요."

-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가결되었어요. 정 위원장께서 박 대통령 언론 정책을 즐감하다 독박 쓰는 케이스라고 진단하셨잖아요. 그럼 이런 언론 정책이 탄핵 소추안 가결에 영향을 준 것일까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썩게 되어 있으니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죠. 근데 저도 깜짝 놀란 건 불과 3개월 만에 이런 식으로 어처구니없이 작살날 줄은 몰랐어요. 지난 몇 개월간 쏟아져 나온 뉴스는 하루 치가 평소 한 달 치였어요. 이건 독박 정도가 아니라 판이 끝나는 폭망이에요."

- 탄핵 소추안 가결은 어떻게 보셨어요?
"아직도 생각나는 게 의장이 가결됐다고 의사봉 두드리는 데 세월호 가족이 방청석에서 오열 하시더라고요. 저도 눈물 많이 났어요.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 터지고 한이 맺혔겠어요. 진상은커녕 3년이 다 되도록 뭉개기만 하고 배는 아직도 바닷속에 잠겨있고. 공영방송 종사자로 저희가 역할을 못 해서 이렇게 된 거라 마음이 참 아팠어요."

- 이번 탄핵 소추안 가결로 해직자 문제가 빨리 풀릴 것이란 전망도 있던데.
"대법 선고가 빨라지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공정방송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집권하고 있잖아요. 블랙리스트만 봐도 저 사람들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이 사회를 통제해 왔는지 잘 알 수 있죠. 언론 자유를 억압한 정권이 탄핵 심판을 받는 거고, 사회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언론도 공범이라는 정서가 조성됐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이 빨리 나올 거라고 봐요. 1, 2심처럼 언론 자유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이어지길 기대하고요."
#정영하 #7년-그들이 없는 세상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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