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밥은 힘이 세다

[가족세계여행] 밥으로 살아남고 빵으로 세계 사람들과 친해지는 법

등록 2017.04.19 12:07수정 2017.04.1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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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돌아다니다 보면, 밥시간을 놓치거나 근처에 마땅한 음식점이 없어 배고팠던 적이 몇 번 있었다. 한 번은 알바니아에서 몬테네그로로 가는데, 버스에서 아침 8시 30부터 오후 4시까지 꼬박 이동하느라고 과자 두 봉지와 물 두병으로 버틴 적이 있었다. 또 한 번은 몬테네르고 올드시티 바르에서 성 주변과 유적품을 둘러보고 내려와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그냥 중심지(센터)까지 배고픔을 안고 왔다.

"여행 원칙, 있을 때 먹는다."


큰 소리로 외치는 나를 향해 웹툰을 많이 보는 민애는 "그거, 자취생 원칙 아니야?" 하다가 "언제 또 먹을지 모르는 건, 여행자들과 똑같아. 열심히 먹자"면서 양 손에 포크와 수저를 힘주어 잡는다.

"엄마, 여기 사람들은 밥 대신 빵 먹고 살아?"
"응, 우리가 김치에다 밥 먹듯이 여기는 빵하고 샐러드, 고기 위주로 먹어."

어디를 가나 빵이 바구니에 나오고 빵과 함께 먹는 것을 본 규호는 한국을 떠난 지 열흘 만에 다양한 식문화를 깨달았다.

"치즈를 왜 이렇게 좋아해? 종류가 엄청 많아. 꼭 두부같이 생겼네."

 채소를 닦으며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는 알리와 술탄

채소를 닦으며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는 알리와 술탄 ⓒ 김광선


우리집 냉장고에 김치 떨어지는 날이 없듯이 여기 사람들은 다양한 치즈를 냉장고에 채우고 있었다. 정성껏 차려서 우아하게 먹는 그들의 식사습관은 "빨리 먹고 치우자"에 익숙한 우리 가족을 당황하게 했다. 


한 번은 터키의 앙카라에 사는 알리와 술탄에게 초대 받아서 삼 일을 그 집에서 같이 보낸 적이 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장에 모셔놓은 접시를 있는 대로 다 꺼내서 한 상 가득 차려 내 놓았다.

삶은 계란도 개인 칼로 썰어서 빵 위에 올리는 걸 보고 "알리, 참 우아하게 먹는다." 농담 삼아 툭 건네고, "옛날 오스만 투르크 시대의 귀족 문화가 밥상에도 고스라니 남아있구나." 딴지를 걸면, 알리는 그 옛날 유럽을 휩쓸었던 영광스러운 오스만 제국 이야기를 맛깔나게 잘도 했다. 다 밥 덕분이다. 먹으면서 친해지고 역사와 문화도 빨리 배우게 된다.


된장, 고추장, 김, 라면스프, 고추 참치를 바리바리 싸올까 생각했지만 다 두고 오길 잘 했다. 가져왔으면 현지 적응이 더 더디었을지도 모른다. 가끔 한식당 찾아가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만나고 우리말로 수다 떨다가 오는 맛도 제법 재미있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Cups & Roll" 분식집 컵밥은 분명 불고기 컵밥이었는데, 맛이 꿀맛이었다.

또 집밥이 그리우면 숙소를 고를 때 부엌을 쓸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나 아파트를 선택하면 된다. 마트에서 파는 계란이랑 감자를 사서 국을 만들고, 가지로 간장, 설탕, 마늘, 양파로 조림장을 만들어 볶아 먹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계란말이도 하고 냉동식품 치킨너겟 같은 걸 사서 튀겨줄 때도 있다. 쌀은 어디를 가나 살 수 있으니까 감자, 당근, 양파를 잘게 썰어 볶음밥도 할 수 있다.

또 카우칭서핑으로 만난 현지인들에게 한국요리를 대접한다며 불고기나 닭볶음탕을 해 주면 그 집 조미료를 마음껏 쓸 수 있다. 열심히 받아 적고 사진을 찍는 이들을 보면서 말을 건넸다.

"한국에 놀러와. 더 맛있는 거 많이 해 줄게."
"갈 거야. 그때 맛있는 거 또 해줘."

 정성이 가득 담긴 알리와 술탄의 음식들

정성이 가득 담긴 알리와 술탄의 음식들 ⓒ 김광선


이들을 다시 한국에서 만나게 될지, 우리 집에서 그들과 저녁을 근사하게 또 차릴지 확실히 모르겠다. 터키,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코소보, 몬테네그로를 40일 넘게 돌아다니며 조각상, 건물, 풍경, 박물관이 다 비슷비슷하고 점점 헷갈려가지만 그 나라를 떠나도 선명하게 생각나는 게 있다.

"음식 제목, 너희 나라 말로 써 줘"
"이거 소금 두 스푼이야, 세 스푼이야?"
"샐러드 소스 뭐야? 너무 맛있어."

부엌에서 나누었던 대화들이다.

백리향이라고 알려줬는데 그걸 서로 영어로 몰라서 구글 사전을 뒤지고 이미지 확인했다. 그래도 머리를 갸우뚱하는 나를 보고 한 명이 찬장 저기 위에 말려놓은 허브를 다 가져와 냄새를 맡게 해 주고 손가락으로 부스러기를 만져보게 한다.

"아하, 이 향이 들어가서 샐러드가 훨씬 깊은 맛이 나는구나." 하면 "그래. 그래" 하며 서로 얼싸안고 하이파이브 박수를 치며 함께 했던 부엌을 절대 잊지 못하겠다. 역시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 냄새 나게 만드는 밥과 빵은 힘이 세다. 앞으로 남은 9개월도 부엌에서 많은 인연을 만들어 갈 것 같다.

 술탄, 알리, 알사르와 우리 가족들은 밥먹으면서 엄청 친해졌다. 떠나는 날 헤어지기 싫어 추억을 남기기로 한 두 가족 한 마음 사진.

술탄, 알리, 알사르와 우리 가족들은 밥먹으면서 엄청 친해졌다. 떠나는 날 헤어지기 싫어 추억을 남기기로 한 두 가족 한 마음 사진. ⓒ 김광선


#터키 #터키음식 #세계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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