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집 문단속
강은경
그러니까 '거짓말'로 잔머리 굴린 나는, '남성의 폭력을 불가피한 본능으로 인정한' 꼴인가? 물론 '폭력'만 피하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이웃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는 시골마을이었다. 대부분 대문도 없어서 아무 때나 이웃집을 내 집처럼 들랑거릴 수 있는 곳.
어르신들은 이웃에 두루두루 관심도 많고 애정도 많다. 앞뒷집 옆집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랑은 분위기가 아주 딴 판이다. 그런 개방적인 환경 속에서 혼자 사는 여자가 엮일 수 있는 구설수, 추파, 업신여김 등 성가신 일들을 지레 막기 위해서였다. 실제 그런 이유 때문에 나처럼 '유부녀'인 척하며 근방에서 혼자 사는 여자들이 꽤 된다고 들었다. 또 이런 말도 들었다.
"처음부터 나도 남편이 외국에 나가 일하고 있다고 할 걸... 요즘은 후회 된다니까요. 동네 할머니들이 혼자 살면 안 된다고 어찌나 걱정들 하시는지... 여자가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야 한다며 중매를 드시겠다는데... 그 남자 심성도 바르고 성실하고 좋은 남자라고, 도박만 끊으면 정말 좋은 남자라며 자꾸 만나라고 성화시니... 동네 아저씨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더니 꼬리친다고 하질 않나, 다리 드러난 옷 좀 입으면 누구 꼬시려고 그러냐고 하질 않나..."그 말이 떠올라 피식피식 웃으며, 나는 계속 '자기방어' 훈련을 구경했다. 무릎을 꿇고, 돌아가며, 일어서... 동작을 따라 해 봤다. 다리가 꼬여 몸이 굼떴다. 이래서야 원! 지리산 산내의 <문화기획달>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취지는 이랬다.
특히 농촌에서는 일상에서 낫, 망치, 기계톱 등의 기계와 장비를 다루고, 마초적인 남성성이 강조되기 때문에 거친 말과 욕설, 위협적인 행동이 용인되는 분위기다.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마주했을 때 쉽게 주눅 들고 위축되는 상황 앞에서, 감정에 휩싸이지 않으면서 분명히 말하는 연습과 위험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몸의 훈련이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엉거주춤 몇 번 동작을 따라 하는데 한편, 그런 의문도 들었다. 실재 힘센 공격자를 만났을 때, 이런 훈련이 효과가 있을까? 몸도 머릿속도 패닉 상태가 되어 하얗게 얼어붙는데.
50 평생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겪었던 위험한 상황이 포천 시골마을에서의 그 일 뿐이었겠나.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닌 나로서는 그 훈련에 대해 좀 회의적이었다(혐오감, 수치심, 역겨움, 무서움... 그래서 차라리 죽고 싶은 일들... 그 강도가 심하든 약하든 평생 한 번도 안 당하며 사는 한국여자가 있을까? '없다'에 500원 건다).
그런데 성폭력의 위험 속에서 여성들이(희생자가 대부분 여성이기에) 평생 얼마나 두려워하며 일상을 살아가는지 '남자'들은 알까? 보통의 여성들보다 담력이 강하기로 자타가 인정하는 나 같은 사람도, 세상엔 선행이 악행보다 천배 만배 더 많다고 믿으며, 쓸데없는 걱정은 사서 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문득문득 긴장하고 경계하며 두려움에 떠는데 말이다.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그 끔찍한 고통을 정말 이해한다면, 여성이 여성대상범죄의 심각성을 호소할 때 양성평등을 요구할 때, 남자를 통틀어 '잠정적성범죄자'로 취급한다느니 역차별이라느니, 하며 거품 물고 화부터 낼 수 있을까? 설마?
나는 다음날 캠프의 마지막 자리에도 슬쩍 찾아갔다.
"사회적으로 이런 것들이 문제다, 정신 차려야 한다, 알려야 합니다... 모든 인간의 권리는 평등합니다. 양성평등 지수가 올라갈수록 그런 행동들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의식도 높아집니다. 그런데 개인의 변화보다 사회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리죠. 여러분은 이틀 만에 변화 하셨잖아요... 개인의 변화와 함께 사회변화 운동에도 참여 하며..." 끝나가는 캠프 마당의 분위기가 활기찼다. 자신감에 찬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참석자들의 얼굴이 생기로 반짝반짝했다. 2박 3일 동안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지? 마지막으로 '설문지'를 진지하게 쓰는 사람들.
'내 안전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다. 필요하면 육체적으로 저항하고 맞서 싸울 것이다. 위험에 빠진 여성을 도울 것이다... 일상에서도 계속 훈련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정신적으로 강해진 것 같다. 자신감이 생겼다. 용기를 얻었다. 실재로 내게 범죄가 일어난다면 두렵겠지만 저항방법을 배웠다는 것이 대처능력을 키운 것 같고...' 나는 '자기방어캠프'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집을 향해 동네 길을 걸어 올라갔다. 김 할머니가 준 상추봉지를 꼭 안고. 돌담 위에 삶은 고사리를 널고 있던 손 할머니와 마주쳤다. 전 같으면 할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 곰살갑게 굴 텐데. '안녕하세요!' 인사만 던지고 제 발 저린 도둑마냥 잰걸음을 놨다.
손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나 또 웃음이 나는 걸 참으며. 지난겨울 3개월 동안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였다. 길에서 만난 손 할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그러셨다.
"돌아온겨? 바람나서 도망갔다고 들었는디? 그 집에 남자 손님들이 무시로 들랑거리더니... 남자랑 눈 맞아 도망갔다며?" 나는 손 할머니의 마른 손을 잡으며 큰소리로 웃었다.
"호호호! 할머니, 아니야. 바람은 무슨... 여행 갔다 왔어요. 우리 집에 남자친구들은 많이 놀러오지만... 그런 거 아니에요. 호호호! 할머니, 참 귀여우셔! 호호호!"집 앞에서 아랫집 아저씨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또 인사만 던지고 후딱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휴우~~! 며칠 집을 비웠더니 툇마루에 송홧가루가 노랗게 덮였다. 상추봉지를 내려놓는데 송홧가루가 풀썩 피어올랐다. 아랫집 아저씨가 양철문을 삐익 열었다 닫는 소리가 들려오고. 아저씨가 언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집 아저씨는 왔다 갔어? 언제? 부자네. 서울에도 집이 있을 테고... 그런데 부부가 이렇게 떨어져 살면 안 돼. 남자는 혼자 오래 두면 십중팔구 한눈 팔어. 돈 버는 것도 좋지만 부부가 같이 살아야지. 무슨 일 나면 어쩌려고..."그때도 나는 입술에 침 한 방울 안 바르고 "괜찮아요. 우리 아저씨는 그럴 사람 아니에요. 걱정 안 해도 돼요"라며 밝게 받아쳤는데.
다 '거짓말'이었다는 게 들통 나는 건 이제 시간문제다. 지난 4월에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도서출판 어떤책)이 출판됐기 때문이다. '죽을 만큼 힘들고, 눈물 나게 외롭고, 아찔하도록 위험한 여정'이었던,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동안의 히치하이킹 여행기. 그 책에 내 사생활을 낱낱이 까발렸으니. 설마, 동네 어르신들이 그 책을 읽으시겠나. 아들이나 딸들이 읽게 되면, 그편에 듣게 되겠지.
송홧가루가 바람에 날리듯 노랗게 소문이 돌기 전, 내가 먼저 고백할까? 이만저만해서 이만저만 했다고. 인심 좋은 마을이고 어르신들도 다 좋은 분들인데 (정말 다행이다), 나를 많이 예뻐해 주시는데, 죄송하다고. 그래도 이젠 참 못 믿을 사람이라며 언짢아하실까? 상처받으실까? 그동안 할머니들과 쌓은 친밀감이 깨질까?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겠다. 바람이 분다. 지리산 골짜기에 송홧가루가 노랗게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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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숨어든 남자, 여성의 시골살이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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