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 북천면에 있는 삼우당 문익점의 17세 손인 황남 문영빈(1891~1961) 선생의 생가 대문
김종신
직전마을은 삼우당 문익점 선생의 10세 손인 직하재 문헌상(1652~1722) 선생이 벼슬에 뜻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조선 숙종 5년(1679년)에 처음으로 이사와 정착한 이래 강성 문씨 집성촌이 되었다. 직하재 선생은 산 중턱에 서원에 버금가는 '직하정'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다. 처음 들어선 곳에서 5번이나 옮겨 현재와 같이 마을 가운데에 이른다.
생가는 사랑채와 안채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러나 한때 사랑채 주위에 객사만 6채에 이르는 등 500석 부자였다. 황남 선생이 독립운동에 헌신하면서 많은 자산을 독립운동에 쏟았기 때문이다. 선생은 1910년 경술국치 때 중국 상해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의 전신인 배달학회(주석 이시영, 외교부장 여운형)에서 활약했다. 귀국해서는 1919년 백산 안희제가 운영하는 백산상회 설립에 참여했다.
마침 찾아간 날에는 '옛 아름다움으로 초대 한옥에서 살다- 따뜻한 밥상, 전통 혼례보, 소목가구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열린 대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휴~'하고 누각에 높이 올라보니 쓸쓸한 기운이 가을을 재촉하고 천년에 걸쳐서 장사의 한 때문에 긴 강물도 '부르르'떨며 흐르지 못하는구나'라는 황남이 촉석루에 올라 읊은 시가 적혀 있다. 나즈막이 읊조리며 마당으로 들어서자 하동녹차를 권한다. 우전차로 몸 안 가득 초록을 채웠다. 옆에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내 맘처럼 녹차 빛으로 다가섰다. 찰진 밤떡을 덩달아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