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가? 너희 아버지 운동선수셔?"

아들이 쓰는 아버지 책의 서평 <고상만의 수사반장>

등록 2017.06.06 12:50수정 2017.06.0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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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아주 특별한 서평을 쓰게 됐다. 다름 아닌 아버지가 쓰신 책의 서평이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많은 책을 써오셨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동안 아버지가 쓰신 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아주 특별한 책을 하나 쓰셨다. 책을 설명하기 전, 잠시만 저자인 아버지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아버지의 직업은 '인권운동가'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학교에서 부모님의 직업을 적어오라고 했다. 살림을 하시던 어머니의 직업은 전업주부라고 적었다. 아버지의 직업을 적을 차례다. 어머니는 그냥 평범하게 회사원으로 적으라고 하셨다. 그때 아버지는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회사원이 아닌 '인권운동가'라고 적으라고. 억울한 사람을 돕는 직업이라는 부연설명도 덧붙이면서.

인권운동가. 성인들이 듣기에도 매우 생소한 직업이다. 하물며 초등학생에게는 어떨까. 적으면서도 나는 의아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학교에 제출했다. 친구들은 부모님 직업에 대한 칸이 '회사원'이나 '자영업'으로 대부분 적혀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이 '인권운동가'인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어느 친구는 아버지의 직업을 보고 이렇게 되묻기도 했다.

"인권운동가? 너희 아버지 운동선수셔?"

지금 생각해보면 '인권운동'을 운동선수인 것으로 착각한 것 같다. 초등학생에게 인권운동이란 생소하기 그지없는 단어니까. 나는 '억울한 사람을 돕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몇몇 친구들은 '운동으로 억울한 사람을 돕는 사람이냐?'고 묻기까지 했다. 웃지 못 할 장면이다. 이때 담임 선생님이 그 광경을 목격하셨다. 자초지종 상황을 들은 선생님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충열이 아버지, 엄청 멋진 분이시네!"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언가 대단히 대견하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나는 아버지의 직업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책을 내셨지만 집중해서 읽은 적은 없다. 나중에 들은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들이 내가 하는 일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속상하시다고.

내가 아버지의 일에 관심을 가진 것은 군에 다녀온 후의 일이다.

귀한 자식 고문관으로 낙인찍고, 죽은 병사의 장례비까지 빼돌리는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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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만의 수사반장 ⓒ 삼인

1년 9개월의 군 복무를 통해서 여러 가지를 봤다. 그것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온갖 부조리와 욕설, 가혹행위. 특히 간부가 주도하는 부조리와 따돌림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통칭 '윤 일병 사건' 이후부터는 오로지 선임병들을 '잠재적 가해자'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참으로 아연실색했다.

전역 후에 나는 아버지의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버지는 참 오랜 기간 동안에, 억울한 이들을 위해서 싸워왔음을 깨달았다. 참 부끄러웠다. 아버지의 이런 일을 알아주지 못했음을. 그러던 중에 아버지께서 이번에 새로 책을 쓰셨다. 바로 <고상만의 수사반장>이다.

이 책은 여러 억울한 죽음, 피해에 대한 폭로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된 '춘천파출소장 딸 강간살인사건', 경찰의 심기를 건드린 괘씸죄로 피해를 입은 '충주 귀농 부부의 공권력 횡포 피해사건' 등등 정말 많은 사건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내 시선을 끈 것은 '3부 되돌아올 수 없는 우리 군인들의 목소리' 편이다. 군대를 다녀온 나였기에 더욱 감정이입이 됐다. 거기에서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중략)…손형주는 몸무게 103킬로그램이 넘는 과체중에 시력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안경을 벗은 시력은 0.1도 되지 않았고 안경을 쓴 교정 시력 역시 0.3에 이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정도 시력이면 사격 시 200미터 표적지를 뚜렷하게 보지 못하며 250미터 표적지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 p.245

손형주 이병은 시력이 매우 나쁘다. 게다가 수전증까지 있다는 증언도 있다. 이는 총을 쏴야 하는 군인에게는 치명적인 결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형주는 징병됐다. 병무청이 현역병 판정 기준을 지속적으로 완화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63만에 이르는 비대한 규모의 군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본래라면' 군에 가지 않았을 손형주는 징병됐다. 그 후는 어땠을까. 군대를 다녀오신 당신이라면 모두 예상할 수가 있으리라.

"(중략)… 손 이병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 표적지를 향해 총을 쐈던 것입니다. 그렇게 쏜 총이니 당연히 맞을 리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수전 증세 때문에 손 이병의 좌절감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그러자 중대장은 많은 사병들이 있는 사격장에서 손 이병을 향해 "넌 앞으로 사격 하지 마"라는 조롱 발언을 수차례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수재로 살던 사람이 군대 고문관 취급을 받는 뚱뚱한 바보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손 이병이 겪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였습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3시 46분께, 손 이병은 서른 번째 사격을 마친 후 다시 장전한 서른한 번째 총구를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댔습니다. 그리고 당겨진 방아쇠. 큰 폭발음과 함께 손 이병의 생명은 무참하게 꺾였습니다." -p.246~247

군에서 지휘관의 괴롭힘으로 한 병사가 죽었다. 그러나 이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심지어 죽은 병사의 장례비를 빼돌리는 천인공노할 일도 태연히 벌어진다. 2011년부터 '자살을 인정하는 유족에 한해' 국방부장관 위로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있다. 여기에는 별도로 유가족 접대비 1,674,000원을 포함하여 도합 2,674,000원으로 구성된 '군 영현비'라는 항목이 있다.

이 중에 유가족 접대비는 군이 그냥 사용해서는 안 되는 항목이다. 원칙적으로 유족에게 지급해야 하는 '유족의 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대 관계자 중 누구도 이런 사실을 유족에게 알려준 적이 없다고 한다. 대부분 이러한 설명 없이 군부대 측에서 일방적으로 돈을 썼다.

"유족의 돈으로 군부대가 생색을 내고 있음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들 멋대로 돈을 쓴 후, 군부대 측에서 유족 동의도 없이 제멋대로 돈을 쓰더니 마지막 날 추가로 돈이 들어갔다며 유족에게 보전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군부대 측에서 술과 밥, 고기와 떡 등을 사가지고 와서, 매일같이 조문한다며 군인들이 찾아와 먹어치웠다고 합니다. …(중략) 그런데 장례가 끝난 후 군부대 측에서 종이 한 장 가져와, 알지도 못했던 영현비 2,674,000원으로 먼저 썼는데 장례 기간 중 음식 준비 등으로 돈이 초과되었다며 그 초과분을 유족에게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유족은 아들이 자살했다는 마당에 누구를 조문 오라고 말할 수도 없어 고작 형제 등 가까운 친인척 20여 명 정도 오는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전부 군인이었는데 그들이 매일 술과 고기, 밥과 떡과 국, 과일, 음료수 등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용을 왜 유족에게 청구하나요? 이게 말이 되나요?" - p.260

멀쩡한 사람을 징병하여 죽여 놓고, 그 죽은 병사를 등쳐먹고 있다. 그 후 군과 국방부의 태도는 어떨까. 본인들 스스로는 개선하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다. 국방부는 어느 유가족에게 소송을 걸었다. 9년 전 사망한 목숨을 잃은 최 일병의 부모님이다. 최 일병은 지난 2008년에 선임병들의 구타, 가혹행위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들의 가슴은 찢어질 것이다. 부모에게 자식이 죽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다. 그것도 괴롭힘을 당한 끝에 자살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국방부는 그런 유가족에게 소송을 걸었다. 지난 4월3일, 초과 지급된 월급 33만 5천원과 독촉절차 비용 6만 6천원 등 총 40만 1천원에 대한 지급명령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귀한 남의 자식을 데려가 죽게 만들어놓고 위로와 예우는 못할망정, 그 유가족의 가슴을 난도질하고 있다. 뻔뻔하기 그지없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이에 대해 격노하며 "꼭 받아야겠다면 내가 대신 낼 테니 자식 잃은 부모님 그만 괴롭히고 국회로 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국방부는 곧바로 반환소송을 취하하며 사과했다. 정말로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것인지, '생각보다 비난 여론이 커져서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하는 것인지는 여러분 스스로가 판단해야 한다. 이 책 <고상만의 수사반장>을 읽는다면 판단하기 쉬울 것이다.

더 이상 '억울한 죽음' 없는 세상이었으면

아버지는 이런 국방부와 평생을 싸워오셨다. 그것도 사익이 아닌, 억울한 유가족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공익 때문이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아버지다. 어린 시절에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 너무나도 부끄럽다. 끝으로 저자의 호소와 함께 마치고자 한다.

"지난 66년간 38,000여 명의 군인이 자살로 처리되어 죽어갔습니다. 그들에게 이 나라와 국방부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대신 '네가 못나서 죽은 패배자'로 낙인찍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부끄러운 자식을 둔 실패자로 낙인찍고, 그래서 억울하다는 말도 당당하게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게 정말 옳습니까? 부끄러운 것은 그 부모가 아니라 바로 국방부입니다. 진짜 자살한 것은 우리의 아들들이 아니고 바로 국방부의 양심입니다."

더 이상은 억울한 죽음이 없는 세상을 바란다. 고상만의 수사반장, 인간적인 그대에게 꼭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고상만의 수사반장(320쪽), 고상만 지음, 삼인 출판, 14,000원

고상만의 수사반장

고상만 지음,
삼인, 2017


#고충열 #고상만의수사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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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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