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작은 동물이 나를 신뢰하고 좋아한다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우리가 만난 인연에 감사하고, 또 놀랍다. 반려견 가을.
박혜림
어린 동물을 키우는 것은 귀엽고, 또 귀엽다. 네 다리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엉뚱한 몸짓을 하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오고, 휴대폰 갤러리는 어느새 아기 동물의 깜찍한 사진들로 가득 찬다.
그러나 아픈 동물, 늙은 동물을 키우는 것은 조금 다르다. 내 눈에는 여전히 아기 같고 사랑스럽지만, 같이 고통을 참거나 함께 울음을 터트릴 날들이 많다. 내가 뭘 해주어야 좋을지 몰라 답답하고, 그 답답함을 견디고 있을 반려동물에게 때로는 한없이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정말 놀랍고 생경한 경험이다. 유기동물이라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말도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종족이다. 그런데도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습관을 알아가고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된다. 내 작은 동물이 나를 신뢰하고 좋아한다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우리가 만난 인연에 감사하고, 또 놀랍다.
가을이는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기어코 실외 배변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산책을 하면서 엉뚱한 걸 집어 삼켜 가슴을 철렁하게 하기도 한다. 뽀뽀는 하루에 한 번만, 타고난 밀당으로 애간장을 녹일 때도 있다. 박 작가는 가을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몇 번이고 궁금해하고, 답을 찾아내고, 귀를 기울인다. 갇혀 지낸 10년 동안 딱딱하게 얼어붙은 가을이의 세상에 엄마의 사려 깊은 마음이 스며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리라.
내게도 그렇게 가족이 되는 과정이 있었다. 아팠던 내 고양이 제이가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견뎌낼 수 있을지, 나를 원망하지는 않는지, 어쩌면 그냥 보내주는 게 제이를 위한 일은 아닐지, 어쩌면 길고양이로 살았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지 고민스러운 날들도 있었다.
제이는 병원을 너무 자주 가다보니 수의사 선생님이 손을 못 댈 정도로 하악질을 하다가도 내가 다가가면 도대체 어디 있었냐는 듯 가만히 내 품에 안겼다. 집에 오면 비로소 홈그라운드라는 듯 당당하게 내게 방석 역할을 요구했다. 때로는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때로는 뭐가 불편한지 말을 못 하니 답답해도 우리는 서로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지금은 분명하게 생각한다.
<내일도 가을이야>는 2013년 <오마이뉴스>에서 '유기견 입양기 시리즈'로 연재된 바 있다고 한다. 한 페이지씩 기록해간 그들의 시간이 앞으로도 충분히 남아 있기를 바란다. 가을이도 자신의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엄마가 생겨서 분명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다. 내일의 산책은 아마 하늘이 더 새파랗고 단풍이 더 아름다운 가을날일 것이다.
내일도 가을이야 - 유기견 가을이.방랑묘 스밀라.비지구인 그녀의 애정행각 반려생활기
박혜림 지음,
헤르츠나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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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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