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벗어난 질문 마라"는 MB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

[게릴라칼럼] 적폐청산이 정치적 보복으로 의심 들기 시작했다는 MB의 비상식과 구태

등록 2017.11.12 15:05수정 2017.11.1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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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동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적폐청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동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적폐청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남소연

MB가 웃었다. 활짝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소를 지었다. 12일 일요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기다리던 취재진과 생중계 카메라 앞에 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인터뷰 말미 미소를 짓는 여유를 보였다. "수고했습니다"라며 기자들을 챙기는 인사말도 전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길었던 준비된 답변은 알맹이가 없었다. 외교안보와 경제 운운하는 내용은 그의 단골 메뉴라 식상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마자 태도가 돌변했다. 기자의 질문을 단호히 잘랐고, 안정적이었던 톤도 한껏 높아졌다. 이 대답을 마치고선, 그는 기자들의 질문을 더 받지 않았다. MB의 대답은 이랬다.

"상식에 벗어나는 질문 하지 마세요. 상식에 안 맞아요."

귀를 의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과거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장했다. 이제 MB는 '비상식' 운운한다. 어쩜 그리 둘의 상식 수준이 똑같을까. 또 어쩜 그리 국민들의 상식 수준과 괴리돼 있을까. 사실, 이것조차 익숙한 풍경이다. 2008년 2월 집권부터 2013년 2월 퇴임까지, MB의 상식은 오롯이 MB와 그 측근들만의 상식이었음이 국정원 문건 등 적폐청산 작업에 의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헌데, 그 MB가 현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게다가 본인이 재임 시절 저질렀던 불법들, 그것도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안들을 향한 의혹을 두고 '비상식'이라 쏘아 붙였다. 하필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구속된 다음 날 바레인으로 초청강연을 떠난 MB와 그의 최측근인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비상식은 일요일 오전부터 국민들의 혈압을 상승시키기에 충분해 보였다.

상식 운운한 MB의 비상식

이명박 전 대통령, '적폐청산' 반박하고 출국 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일 오전 바레인 출국을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관련해서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 의심이 들기시작했다'며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관여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10일부터 시작된 ‘이명박 전 대통령 출국 금지 청원’에는 3일만에 7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적폐청산' 반박하고 출국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일 오전 바레인 출국을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관련해서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 의심이 들기시작했다'며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관여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10일부터 시작된 ‘이명박 전 대통령 출국 금지 청원’에는 3일만에 7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남소연

"저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면서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6개월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적 보복이냐,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적반하장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집권 시기는 물론이요, 박근혜 정부 내내 국민들이 품어왔던 MB 정부의 부패와 불법을 향한 '합리적 의심'의 퍼즐이 현 정부 들어 조금씩 맞춰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감정풀이"와 "정치적 보복"이라니. 그런 표현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MB 국정원의 '논두렁 시계' 공작에나 쓸 만한 수사 아니겠는가.

이어지는 내용들도 식상 그 자체였다. '국론분열'과 '외교안보'와 '경제' 위기 운운하는 꼴이 과거의 '구태'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딜 봐서 작금의 국민 정서가 '국론분열'인가. 실제로 수많은 인사들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고, 국민의 혈세로 극우 단체를 동원해 '국론분열'을 조장한 것이 MB 정부였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위기 운운하는 동시에 "그러나 (국가를) 파괴하고 쇠퇴시키는 것은 쉽습니다"라며 국민들을 겁박하는 태도 역시 여전했다. 하지만, MB가 진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인터뷰 후반에 걸쳐 있었다. 평소처럼 꼼꼼하진 않았지만, 그 메시지는 꽤나 구차하면서 명확해 보였다. 요약하자면, '내 죄를 더 이상 묻지 말라' 랄까. 

구차한 MB의 변명

"그러나 (우리나라가) 그 짧은 시간에 발전하는 동안에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이 부정적인 측면보다도 훨씬 크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정적인 것을 고치기 위해서 긍정적인 측면을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측면은 개혁해 나가되 긍정적인 측면은 이어나가야 합니다."

풀이하자면, 이 정도이지 않을까.

'내 집권 시기에 부정적인 측면(불법과 민주주의 파괴, 권력 남용 등등)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 그걸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부정이 있더라도 내 죄를 물으면 안 된다. 국정원 등 일정정도 개혁은 하더라도, 나를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거나 법정에 세우지 말아 달라.'

이어진 답변은 더욱 구차했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의 댓글 사건과 정치 개입 의혹을 두고 MB는 "그런데 이런 가운데 군의 조직이나 정보기관의 조직이 무차별적이고 불공정하게 다뤄지는 것은 우리 안보를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고 했다. 그에 앞서 "우리가 외교, 안보에 위기를 맞고 있다"고 재차, 삼차 강조하기도 했다. 

구차하고 또 구차하다. 국정원의 개혁과 MB 청와대의 지시 아래 군이 자행한 불법적인 사안들은 '외교'나 '안보'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를 "감정풀이"와 "정치적 보복"으로 연결 짓는 것이야말로 '도둑이 제 발 저린' 설레발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감정풀이"와 "정치적 보복"이야말로 MB 본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 그리고 이른바 '진보'와 '좌파' 인사들에게 자행했던 일임이 현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과 함께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우선은 저희가 눈곱만큼도 이른바 군과 정보기관의 정치 댓글을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잘못된 건 밝혀져야 되고 처벌받는 게 맞습니다."

MB에 이어 카메라 앞에선 이동관 전 수석의 말이다. 그렇다. 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본인이 잘못한 것 명명백백 밝혀져야 하고 처벌받는 게 이 전 수석 본인이 언급한 "대한민국의 국격과 품격"을 위한 일이란 얘기다. 그런데, 무슨 말이 그리 구차한가. 이 전 수석의 인터뷰 내용 역시 MB와 다를 바 없었다.

귀국 후 상식 지키시길

 "다스는 누구겁니까" MB 출국 인천공항 시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중동으로 출국하기 위해 12일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뒤로 "다스는 누구겁니까" "MB구속 적폐청산"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이 보인다
"다스는 누구겁니까" MB 출국 인천공항 시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중동으로 출국하기 위해 12일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뒤로 "다스는 누구겁니까" "MB구속 적폐청산"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이 보인다남소연

"그러나 여러분들이 지금 검찰에서 발표하는 것만 쫓아다니다 보니까 잘 모르고 계신 부분, 잊고 계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이미 국정원 심리전단장 이태하씨 공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거기서 이미 밝혀진 일이지만 지금 문제가 된 댓글은 전체의 0.9%라는 것이 검찰이 제기한 자료에 나오는 일이고 그중의 절반만 법원이 받아들였어요. 그러니까 0.45%의 진실입니다."

MB 정부 인사들이 들먹이는 것이 저런 수치나 과거 검찰 조사 결과다. "도곡동 땅이나 BBK,  DAS 문제는 이미 특검과 검찰 조사가 끝난 사안"이라거나 "댓글 공작은 일부"라는 주장들 말이다.

그렇다면 왜 군 사이버사 댓글 공작과 관련 MB의 지시를 인정한 김관진 전 국방장관의 증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가. 언제까지 "공판에서 나온 수치" 운운하며 소위 물타기를 하고 여론을 호도할 셈인가. 이런 호도는 또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지난번에 트럼프 대통령도 와서 저희 기적의 성장사를 극찬했지만 지금 외국 정부에서 정식으로 초청을 받아서 우리 한국의 성장 비결을 와서 한 마디 가르쳐달라고 나가는 건데 출국을 금지시켜라, 그다음에 저기 와서 지금 시위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참 안타깝네요.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격과 품격을 지키자, 그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미안하지만,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언급한 한국의 '기적의 성장사'에서 MB 정부는 빼야 마땅하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를 유행어로 만든 MB 개인 비리는 차치 하더라도, 자원외교로 혈세를 낭비하고, 4대강 사업으로 국토를 훼손했으며, '종북' 프레임과 블랙리스트, 언론 장악 등 이 나라 민주주의를 훼손한 MB와 MB 정권 인사들은 그 '기적의 성장사'를 퇴행시킨 주범들 아닌가.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시된 '이명박 전 대통령 출국 금지 청원' 글에 동의한 인원이 단 3일 만에 7만 5천 명을(12일 오후 2시 현재) 넘겼다. 이 청원 '운동'은 MB가 2박 4일 일정을 마치고 귀국할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이미 "다스는 누구 겁니까?"란 해시태그 놀이는 말 그대로 '대세'다. MB(의 검찰 조사 여부)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뜨겁다.

출국 직전 온 국민들에게 특유의 여유를 자랑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많지 않다. 부디, 2박 4일 동안 바레인에서 자신의 '자원 외교'도 알리시고, 과거 MB 정부의 치적도 널리 알려 주시라. 그러고 나서 귀국 이후, 부디 상식에 맞게만 행동해 주시라. 국민적 관심에 부응해 댓글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나 수사가 이뤄진다면 성실히 받으시라.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상식을 보여주실 때다.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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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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