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은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이천쌀볏짚유'로 도자기 명작 만드는 이규탁 이천시 도자기 명장

등록 2017.11.23 08:15수정 2017.11.2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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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 20호 이천시 도자기 명장 이규탁(고산요.高山窯) 명장

제 20호 이천시 도자기 명장 이규탁(고산요.高山窯) 명장 ⓒ 김희정


"당시, 그곳이 400년 이어져 오는 조선 도공의 요장이 아니었으면, 제가 고된 인내를 하며 도자기를 했겠나 싶어요. 휴일조차 없는, 마치 수행의 길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그렇게 못 배우죠. 다카토리요(高取窯)는 산속에 있었는데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고 참선하고 그날 사용할 흙, 유약 등을 만든 후 아침밥을 먹었어요.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작업했고요."

지난 8월 제 20호 이천시 도자기 명장에 선정된 이규탁(56. 고산요高山窯)명장은 40년 전을 회고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미술과 도자기를 좋아한 소년은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도자기 전시회를 관람했다. 다카토리 팔산(고취정산.高取靜山)의 11대 후손인 다카토리 세이잔 도예가의 귀향(歸鄕)전이었다.


이 전시회를 관람한 얼마 뒤 이규탁은 신문에서 한 기사를 봤다. 세이잔 선생이 한국인 젊은이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에서 조선 도공 팔산의 도자 기술과 선조의 영혼을 전수시켜 한국에 돌려보내기 위한 취지였다. 고등학교 3학년 이규탁은 전국에서 지원한 2500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됐다. 그리고 1978년, 도자장학생으로 세이잔 선생과 사제의 연을 맺었다. 한일문화교류의 포문을 연 것이다.

이국에서 어린 이규탁에게 스승, 세이잔 선생의 사랑은 큰 힘이 됐다. 세이잔 선생은 이름에 '고려에서 가져온'의 뜻이 담긴 고취(高取)'를 사용하고, 선조의 무덤을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식 분묘(墳墓)로 할 만큼 한국의 뿌리를 그리워했다. 이규탁을 손주처럼 아꼈다.

"제가 '선생님'하고 부르면 '할머니'라 부르라고 했어요. '한국에서는 할머니와 손주가 가장 친한 사이다'고 하시면서요. 스승님은 도자기 기술을 가르치는 것에는 엄격했습니다. '기술을 한시라도 빨리, 하나라도 더, 완벽하게 습득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어요."

이규탁은 그렇게 5년 동안  세이잔 선생에게 도자기술, 즉 회령유도자기법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하지만 이규탁 명장이 귀국한 1983년, 한국에서는 회령유도자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생소하게 여겼다. 회령유는' 다카토리요에서 볏짚재를 사용한 천연 유약의 기원이고 함경북도 회령(會寧)지방명을 딴 우리 전통도자기법' 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청자와 백자의 전성시대였다. 이때 이규탁 명장은 이천으로 내려와 다양한 우리 도자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수하고 소박한 분청사기 연구에 집중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88년에도 이천은 한국 도자기의 메카였어요. '중국은 경덕진, 일본은 아리타 하듯이요. 이천에서 역량 있는 작가들과 어깨를 겨루고 싶었습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몇 년 후 이규탁 명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의뢰로 분청사기연당초문 큰 항아리의 영인본을 제작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은 멕시코 박물관, 러시아 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다.


이 명장이 이천의 원적산 기슭에 터를 잡게 된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회령유도자기는 발색에 독특한 멋과 예술성이 있어요. 한데 만드는 공정이 까다로워요. 토질, 벼의 종류, 농약 유무 등에 따라 발색의 깊이가 달라지거든요. 이천은 양질의 볏짚 재를 구할 수 있는 지역이에요. 쌀농사를 많이 짓잖아요. 이천쌀 볏짚재로 만든 유약이 단연 최고죠."

이규탁 명장은 회령유도자기법에 '이천쌀볏짚유','이천쌀볏짚유탁유'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으려고 한다. 이천쌀 볏짚을 태워 재를 만들고 유약을 만들어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이규탁 명장에게 도자기 작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었다. 사십대 초반 분청사기에 전념해오던 즈음이었다. 그 무렵 이 명장은 소년 시절 다기를 제작하던 다카토리요를 떠올렸다. 다카토리요는 다카도리 팔산(고취정산.高取靜山)가(家)가 세운 관요(官窯)다. 팔산가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 도자 문화를 꽃 피운 대표적 조선 도공 가문 중 한 가문으로 일본에서 400여 년 동안 집안 대대로 대를 이어 차(茶)도구를 만들어 온 다도명가다.

a  이규탁 이천시 도자기 명장이 운영하는 고산요 입구에 세워진 기념비. 다카토리 세이잔 선생은 한국 소년 이규탁이 조선도공 팔산의 도자기술을 습득하자 약속대로 뉴욕에서 이규탁 도예 작가 데뷔전을 열어줬다. 한국에 요장을 차릴 땅을 마련해주고 기념비를 세워줬다.

이규탁 이천시 도자기 명장이 운영하는 고산요 입구에 세워진 기념비. 다카토리 세이잔 선생은 한국 소년 이규탁이 조선도공 팔산의 도자기술을 습득하자 약속대로 뉴욕에서 이규탁 도예 작가 데뷔전을 열어줬다. 한국에 요장을 차릴 땅을 마련해주고 기념비를 세워줬다. ⓒ 김희정


이규탁 명장은 다기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일본 다도(茶道)의 대표인 코보리엔슈(小堀遠州)가(家)의 문을 두드렸다. 십년 동안 일본을 오가며 차와 다기 수업을 받았다.

"하루는 제 다완을 이렇게 저렇게 보더니 '다 좋은데 요번에는 한 둘레 크게 만들어 와' 하더군요. 또 만들어 가면 또 '한 둘레' 하고요. 그때는 정말 죽겠더라고요. 정확한 치수를 알려주면 좋을텐데... 그래도 또 만들어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규탁 명장은 보였다고 한다. 깨달았다고 한다.

"한 둘레가 준 느낌은 자로 정확하게 잰 치수가 아니었어요. 좋은 다완 한 점은 똑같은 다완을 수천 점 만드는 시행착오를 통해 저절로 나오는 거더라고요. 내가 굽을 깎고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도자기가 태어났다는 순간이 있어요. 명작은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끊임없이 몸으로 익히고 터득한 손끝에서 탄생해요."

나중, 당대 13세 이에모토(家元)는 일본의 인간문화재만이 전시할 수 있는 곳에 이규탁 명장 작품 전시회를 열게 해줬다.

이규탁 명장은 도자기를 만드는 전 과정, 흙 만들기, 성형, 조각, 유약 만들기 등을 손수 한다. 소박하고 고졸(古拙)한 분청사기, 까만 푸른빛에 회령유 도자기, 품위 있고 은근한 매력의 달 항아리 등 또 다른 명작을 빚기 위해 전통 유약을 연구하고 흙을 찾아 나선다.
덧붙이는 글 유네스코 창의도시 이천시는 2002년부터 시행한 이천시 도자기명장 제도를 통해 장인 정신이 투철하고 도자기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기능을 가진 도예가를 이천시 도자기 명장으로 선정하고 있다. 전통도자예술을 계승• 발전시키고 한국 도자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한편 이규탁 명장은 2002년부터 한국 전통문화대, 명지대산업대학원, 서울대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차 도구의 심사위원을 맡으며 후진에게 우리전통 도자기 기능을 전승하고 있다
#이천시 도자기 명장 #회령유 #볏짚재 #조선도공 #분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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