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의 저작권 위탁관리, 이대로 괜찮을까?

법률구조공단에 법률자문 받았더니... "정부 인허가 없는 관리는 저작권법 위반"

등록 2017.12.27 15:53수정 2017.12.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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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가 문제가 없는지 보아 달라며 출판계약서를 보내왔다.

계약서 조항 가운데에는 '2차적 사용 처리'라는 이름으로 '본 계약기간 중에 번역, 개작, 다이제스트, 만화, 연극, 영화, 방송, 녹음, 녹화, CD형태 등 2차적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갑(작가를 말함)'이 그에 관한 처리를 '을(출판사를 말함)'에게 위임하여, 2차적 사용으로 발생된 수익은 '갑'과 '을'이 50%씩 분배한다'라는 것이 있었다. 익히 보아 오던 조항이다.


어떤 경우에는 '2차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판매권을 '을'이 독점하며 이때 발생된 수익은 '갑'과 '을'이 50%씩 분배한다'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판매량에 비례해서 저작료를 받는 인세계약일 때 주로 이런 조항을 넣는다. '2차적 사용에 대한 처리', '2차적 사용에 대한 판매권을 독점'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책을 내기로 계약한 출판사가 그 책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부수적 수익을 대신 징수하여 수수료로 50%를 받겠다는 것이다.

a  일반적인 출판계약서 양식

일반적인 출판계약서 양식 ⓒ 최은경


아직 우리 출판계에는 출판사가 기획사 역할까지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출판된 책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영화사와 협의하는 것도 출판사다. 작가들은 출판사가 이런 일을 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처리 과정을 잘 모르기도 하고 창작할 시간을 쪼개야 하니 귀찮기 때문이다.  

출판기획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작가가 쓴 글을 들고 출판사를 찾아서 책을 내도록 협상하고, 책이 나오면 판매현황을 챙기고 파생상품(2차적 저작물)으로 만들어낼 것이 없는지 연구 관리하는 기획사는 거의 없다. 기획사가 있다손 치더라도 출판사가 맡고 있던 일을 빼앗으려는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한다.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책으로 출판이 되어야 세상에 나올 수 있는 물건인데 그동안 작가와 직접 계약을 해오던 출판사들은 기획사를 통하는 것을 꺼린다.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상대가 전문가인 기획사라면 일단 골치가 아프다.


우리 저작권법에는 제7장을 '저작권위탁관리업'으로 하고 제105조에서 111조까지 정해 놓았다. 제105조 내용은 '저작권위탁관리업의 허가 등'인데 저작권을 위탁관리하려면 '신탁'이나 '대리중개' 방식으로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현재 2차적 사용관리를 하겠다는 출판사들은 저작권위탁관리업을 아무 인허가 없이 무단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은 저작권법에서 정한 조항 위반이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책에 대한 저작권침해가 발생하면 출판사가 나서서 침해한 사람과 손해배상협상을 한다는 것이다. 저작권침해는 범죄행위이고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자격 없는 제3자가 행사는 것이며, 침해한 사람으로부터 받는 배상금을 출판사가 50% 가지고 작가에게 50%만 준다면 엄연히 변호사법 위반이다.


변호사가 아니면서 타인의 법률행위를 대신하고 대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률행위를 대리하고 대가를 약속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받으므로 이 조항을 넣는 것 자체가 변호사법 위반이다. 단, 출판사가 작가에게 변호사를 소개해 작가가 직접 문제를 처리하는 경우는 변호사법 위반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출판사 입장을 들어보면, '우리가 그 작가 책을 내주었고, 책을 냈기 때문에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학습교재로도 쓰이게 된 것'이라면서 그렇게 해준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그리고 저작자로부터 처리위임을 받았으니 위법이 아니라고 한다.

오랜 관행으로 해왔다면 계약서를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도 아직 구시대 발상을 그대로 적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문제를 인식한 작가 몇 명이 몇 년 전부터 출판사에 꾸준히 알려왔다. 어떤 출판사는 모든 책에 대해서 출판권 이외에 모든 권리를 작가에게 돌려준 사례도 있다.

2014년 문화관광부가 정한 표준계약서에도 제15조에 (2차적저작물 및 재사용 이용허락)에 대한 조항을 넣었으나 저작자와 출판사가 수익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로 데뷔한 지 20년이 갓 넘은 어떤 작가는 '대부분은 표준계약서를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노예계약과 다름없는 계약서를 내미는 출판사도 있다'면서, '누군가가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서 법위반이라는 판결을 받아내면, 그동안 받은 부당이익을 모두 환수당해야 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해당 출판사가 망할 수 있으니 얼른 그 조항을 수정해서 문제점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기자가 법률구조공단에 문의한 결과, 판사가 2차적 저작물 및 재사용 이용 허락에 관한 도움을 주더라도 법률 위반일 수 있으므로 사용료 징수는 출판사 통장을 통하지 않고 저작자가 직접 받는 것이 좋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2차적 사용에 대한 처리 경험이 부족한 작가를 돕기 위한 출판계약서 조항이 저작권법이나 변호사법을 어기는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작가가 창작에 쏟을 시간을 방해받지 않게 하려는 출판사의 선의가 왜곡되는 것도 참으로 안타깝다. 출판계가 얼른 나서서 이 계약 조항을 바로 잡기 바란다.

이 기사에 대한 관련법률은 아래 저작권법 등이며, 표준계약서 조항도 참고하면 좋겠다.

저작권법 제7장 '저작권위탁관리업'
제105조(저작권위탁관리업의 허가 등)

①저작권신탁관리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저작권대리중개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
'독점출판허락계약서'에 명시한 조항

제15조에 (2차적저작물 및 재사용 이용허락)

①이 계약기간 중에 위 저작물이 번역, 각색, 변형 등에 의하여 2차적저작물로서 연극, 영화, 방송 등에 사용될 경우 그에 관한 이용허락 등 모든 권리는 갑에게 있다.

②이 계약의 목적물인 위 저작물의 내용 중 일부가 제3자에 의하여 재사용되는 경우, 갑이 그에 관한 이용을 허락하며, 이때 발생하는 저작권사용료의 징수 등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을에게 위임할 수 있다.

이 기사는 법률구조공단의 법률자문을 받고, 기자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썼다.
#출판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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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화도 쓰고, 시, 동시도 쓰고, 역사책도 씁니다. 낮고, 작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 곁에 서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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