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과 공포 속에 죽어간 개, 인간은 반성하지 않았다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연구 논란, 유구한 동물 실험의 역사... 동물은 인간의 대체품인 걸까

등록 2018.02.04 12:41수정 2018.02.0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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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업체 폴크스바겐의 원숭이 대상 배출가스 실험을 보도하는 <뉴욕타임스> 갈무리. ⓒ 뉴욕타임스


독일 폴크스바겐과 관련한 한 연구소에서 살아 있는 원숭이와 사람을 대상으로 디젤 배출가스 실험을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관련 기사). 한 달간 남성 19명과 여성 6명, 그리고 원숭이 10마리를 대상으로 배출가스를 흡입하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실험은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아우슈비츠를 떠올리게 하는 끔찍한 실험'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폴크스바겐 CEO 마티아싀 뮐러는 실험에 대한 책임자를 정직 처분했다고 전했다.

인간들의 위험부담을 동물이 떠안아야 하나 

최초로 우주로 떠난 생명체였던 라이카에 대한 진실이 지난 2002년에서야 밝혀져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서로 우주 개발 경쟁을 벌이던 중이었다. 이때 소련이 먼저 우주선을 쏘아 보내며 그 안에 포유동물인 개를 태웠다. 소련에서는 포유류를 최초로 우주로 보냈다는 자부심과 우월감으로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당시엔 그 우주선을 지구로 귀환시키는 기술은 없었다. 즉, 라이카는 우주에서 홀로 죽어갈 것이라는 뜻이었다.

소련에서는 "라이카가 일주일은 살아 있을 것이며, 일주일간 먹을 식량이 떨어지면 독약 주사로 안락사되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과학자였던 드미트리 말라센코프가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스푸트니크 2호에는 엄청난 고열과 소음이 발생했고, 그 안에서 라이카는 쇼크사했다"고 한다. 당시 소련에서는 라이카를 우주여행의 개척자처럼 자랑스레 칭송했지만 라이카는 뜨거운 열기와 공포에 발버둥치다가 죽어갔던 것이다. 결국 라이카는 인간의 욕심과 불완전한 기술의 희생양이었다.

물론 인간들의 기술 발전 과정에 동물을 실험체로 사용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인체를 탐구하기 위한 동물 해부가 이루어졌고, 오랫동안 인간들은 동물을 마치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대체품처럼 여겼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은 윤리적인 가책과 법적인 제제를 받았으나, '생명의 무게가 적은 동물'로 실험하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당연하다는 듯 이어져 왔다.

이는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며, 인간은 스스로보다 하등한 생명을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힘과 권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말 동물은 인간의 발전을 위해 소모되어도 되는 존재일까. 영화 <신과 함께>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저승에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진다. 그중 판관이 "목숨의 무게를 어떻게 잰단 말인가?"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이 동물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말일까. 인간 역사와 함께 이어져온 동물 실험은 과연 아직도 꼭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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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도 동물 실험은 최선의 방법일까 ⓒ pixabay


21세기에도 동물 실험은 최선의 방법일까 

실제로 수많은 동물 실험을 바탕으로 혜택을 누리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동물 실험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실험 기술이 발달하여 훨씬 안전하고 정확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면, 동물 실험은 멈추는 것이 맞다. 동물 실험의 3R 원칙이 있다. '다른 실험 방법을 연구하여 대체하고(Replace), 개체 수를 적게 하고(Reduce), 고통을 최소한으로 완화하는 것(Refine)'이다. 우리는 필요 이상의 동물 실험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사람의 안전을 위해 이루어지는 동물 실험이 정말 인간들이 떠안아야 하는 위험 부담을 완벽히 막아주긴 하는 것일까? 동물 복지에 대해 다루다 보면 '그래도 사람이랑 동물이랑 같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맞다. 사람과 동물은 엄연히 다른 유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1953년에 독일에서는 임산부의 입덧을 완화시킨다는 '탈리도마이드'가 개발되어 전 세계 50여 개국에 팔려 나갔다. 이 약은 개, 고양이, 햄스터, 닭 등을 대상으로 동물 실험을 한 결과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아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 약을 복용한 뒤 약 1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기형아로 태어났다. 동물에게 안전하다고 해서 인간에게도 안전하다는 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다행히 최근에는 여러 나라에서 법으로 화장품 동물실험이 금지되기도 했고, 방법이 있다면 동물 실험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실, 이번 폴크스바겐의 실험이 충격적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기도 하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동물 실험은 늘 이어져 왔지만 점차 전 세계가 동물 실험의 비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동물 실험을 줄여가려 노력하는 추세다. 그런 와중에 찬물을 끼얹듯 사람과 동물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진행했다는 것은 지금이 21세기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사건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실험 참여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동물들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 생명을 담보로 휘둘려지는 셈이다.

폴크스바겐은 신형 차량의 배출가스가 줄어들어 건강에 비교적 안전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해당 실험을 진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실험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으며, 일부는 "배기가스가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할 게 아니라 환경에 무해하도록 배기가스를 줄이는 방향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폭스바겐 #동물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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