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밤바 마을 축제, 물론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박초롱
남미를 여행하며 나는 성희롱을 숱하게 당했다. 길을 걸을 때 뒤에서 휘파람을 불거나 윙크를 날리는 것은 애교였다. 나랑 사귈래? 너 몸 좋다. 숙소에 혼자 있어?라는 질문도 받았다. 사진을 같이 찍자며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오거나 은근슬쩍 어깨나 허리에 손을 대는 현지인도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때론 주먹으로 욕을 날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나는 달리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부당한 일에 침묵하는 것을 무임승차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당한 성희롱에는 큰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했다. 왜였을까?
무서웠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작은 동양인 여자라는 신분은 그들에게 섣불리 욕을 하게 하지도, 경찰서에 가자고 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상대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 수도 없었고 괜히 강하게 대응했다가 보복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총이라도 꺼내면 어떡하지? 동네 사람들이 다 한 패거리면 어쩌나? 그런 상황에서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단 하나, '무시'였다. 나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 스페인어를 못 하는 척, 가끔은 그들의 말이 아예 들리지 않는 척 걸음을 옮겼다. 조금씩 빨라지는 나의 잰걸음을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남미에서 동양인 여자라는 신분은 묘하다. 일단 남미에는 동양인 여행자가 많이 없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산티아고, 라파즈, 리마, 보고타와 같은 대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정도는 더 심하다.
동양인은 신기하면서 만만한 상대다. 남미를 여행하며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Chino(치노)'였다. 중국인이라는 뜻이지만 실은 이 말에 경멸과 조소의 뜻이 숨어있다. 자신에게 페루리안이라고 말하면 욱하고 화를 내면서 아시아인들에게는 치노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