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자율적이고 평등한 개개인이 만나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관계 아닐까?
박지연
이 책을 읽으며, 엄마와 아내 역할을 하며 불편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엄마의 역할을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 나는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없어졌다. 가족에게 항상 따뜻한 밥을 해주고, 지극정성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항상 집안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집안일 잘하는 사람들 말이다.
아주 더럽지도 않지만, 적당히(?) 지저분한 우리 집. 끼니마다 새 밥에 새 반찬을 해주지 못하는 나. 있는 밥 먹고, 있는 반찬 먹어도 가족이 건강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나. 아이의 일정과 내 일정이 엇갈릴 때,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니면 나는 내 시간을 지킨다. 내가 지치지 않는 수준에서 돌봄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수준을 따라가려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보다는, 가능한 수준을 하고 그 여분의 에너지는 '나'에게 들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선순위를 아이에게 두고, 항상 아이 곁에 있어주는 엄마들을 보면 왜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사람은 조금씩 다르니까, 처한 상황도 다르니까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나는 왜 괜한 열등감을 갖는 걸까?
'여성성=모성'으로 이해되는 사회 속에서, 나도 모르게 '좋은 엄마'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것 같다. 엄마가 된 것은, 자연인 ○○○으로서 나의 여러 가지 정체성에 엄마 정체성 하나가 추가된 것인데, 엄마 정체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살아야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그동안 공부하고 일하는 자로서 나의 삶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나의 역할을 해나가기 위한 것이었다. 송수진 교수는 엄마 자아와 사회인 자아라는 두 가지 소명을 다하고자 하는 것을 '듀얼 콜링(dual calling)'으로 설명한다.
엄마의 역할 만큼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사회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사람으로서, 'dual calling'은 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언어로 다가왔다. '좋은 엄마'는 한 가지 모양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과 성격에 따라 100개, 1,000개, 혹은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엄마, 아내의 정체성과도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때로 집이 지저분할 수 있고, 묵은 밥을 먹을 수도 있다. 깨끗한 집과 맛있는 밥도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필요하지만, 인생 선배로서 엄마의 행복한 삶이 아이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만나는 첫 번째 어른의 모습이 엄마, 아빠이기 때문이다.
2. 서로 다른 개체들이 가정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