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동아시아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관계 속에서 겪는 사회적 폭력 역시 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회역학의 관점으로 각종 질병을 진단한 책이다.
성폭력 문제를 다루진 않았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아픔을 말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내 의문에 답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저자인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사회적 폭력에 노출된 약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가지지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렇기에 차별을 경험해도 과연 자신의 경험이 차별이었는지 판단하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차별에 익숙해져버린 사람일수록 차별을 인지하기가 더욱 어렵다"라고 지적하면서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실험 연구를 소개했다.
"미국 사회에서 약자인 흑인, 여성, 아시아인들이 차별을 경험했을 때, 그 경험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별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불편함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연구는 설명합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가해자에게 어떤 말로 맞서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예방하는' 방법만을 몸에 익혀왔다. 어른들은 늘 내게 '혈기왕성한' 남학생을 피해 다니고, 대중교통에서 '변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가리고,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하지 않기 위해 처신을 잘하라고 충고했다.
그래서였을까.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하면 '내가 예방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여기며 나 자신에게 잘못을 돌리곤 했다. 부끄럽지만 남성이 내 치마 속을 엿보거나 "마누라"라고 부르며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게 성폭력인지 헷갈렸다. 내게 수치심을 주는 짓은 분명했지만, 상대가 '짓궂은 장난'이라고 하니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망설였다. 피해자임에도 나도 모르는 새 가해자의 언어를 체화해 간 것 같다.
왜 어른들은 내게만 '언제 어디서나 조심하라'로 가르쳤던 걸까. 한창 놀고 싶던 시절에는 부모님의 그런 양육 태도가 불만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밤에 나가서 못 놀았고, 외박도 일절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통금과 외박금지를 강요하던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 건 나 역시 어른이 되고 나서다. 사회에 나와 보니 성폭력 사건 가해자 10명 중 1명이 구속될까 말까 했고, 피해자가 도리어 '꽃뱀'으로 몰리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그런 일에 대응했을 때 내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 시절 부모님도 맞서기보다 조심하도록 가르치는 게 더 빠르고 확실하다고 판단했을 테다. 그래서 나도 현실을 깨달은 뒤로는 부모님이 잔소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가방에 호루라기를 넣고 다니고, 밤늦게 택시 탈 때는 언제든 바로 전화 걸 수 있도록 112를 눌러두는 습관을 들였다.
어느덧 딸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운동을 지켜보면서 상상해본다. 과연 아이에게 '조심하라'는 말보다 '맞서라'는 말을 더 많이 해줄 수 있을까. 내 아이가 서지현 검사처럼 정면대응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울 수 있을까. 미래마저 내가 살아온 현실과 다르지 않다면, 솔직히 아이가 홀로 싸우도록 두지 못할 것 같다.
성폭력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