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후 결혼하기 전까지 9년간, 서울에서 이사만 8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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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병'이 호전되기 시작한 건 우연히 본 어느 인터넷 기사 때문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며 힘겹게 학업을 병행하는 대학원생 이야기. 그걸 보며 취업 전까지 한시도 아르바이트를 쉴 수 없었던 대학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으려고 장학금에 목을 맸던 기억도... 청춘의 낭만도 무모한 도전도 내 20대에는 없었다.
대학 입학 후 결혼하기 전까지 9년간, 서울에서 이사만 8번을 했다. 지방 출신이었던 나는 자취를 했는데 하숙집부터 시작해서 원룸, 셰어하우스, 고시원, 반지하... 그때는 그저 구조가 네모 반듯한 집에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역시나 자취를 했던 남편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90년대 초에 지어진 빨간 벽돌 빌라였던 첫 번째 신혼집 전세 기간이 끝나면서 이사 온 게 지금 살고 있는 문제의(?) 집이다. 부동산 중개인과 처음 이 집을 봤을 때, 거실에서 빛이 났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집이었고 큰 창으로는 초록빛 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바로 계약을 했다.
이사를 오기 전, 남편과 손잡고 몇 번이나 집 근처를 서성였다. 아, 여기가 우리가 살게 될 집이구나.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믿기지 않았다. 빨간 벽돌이 아닌 집도, 현관에서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가야 하는 집도 처음이었다. 지은 지 4년밖에 안 된 집이었다. 한참이나 맞은 편 길에 서서 이사 갈 집을 올려다보며 행복해 했다. 이 집은 그렇게 소중한 집이었다는 걸,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기까지도 정말 힘들게 왔다는 걸.
우리는 전세 계약을 2년 더 연장했다. 2층인데 아래가 필로티 주차장이라 아이는 층간소음 걱정 없이 마구 뛰어논다. 아이 키우기에는 이만한 집이 없는 것 같다. 집이 터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 없는 물건은 족족 나눠주거나 중고장터에 팔고 있다(그러면서 계속 사들인다는 게 함정). 복직 후에는 집에 있을 시간이 많지 않고, 언제부턴가 육아 블로그는 아예 보지도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분양'이라는 두 글자만 봐도 눈이 쏠리고 집 샀다는 친구 이야기에 사촌이 땅이라도 산 것처럼 속으로 배가 아프지만 아파트병은 차차 치유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무엇도 쉽게 확신하지 않기로 했다. 설령 나에 대한 것일지라도.
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창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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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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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고 찾아온 '아파트병', 나를 집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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