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 메인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임신 중에도 빛나는 자태'를 뽐내는 연예인들이 등장했다. 배만 뽈록 나오고 다른 신체 부위는 임신 전과 다를 바 없는 D라인은 임신부들의 '로망'이 되었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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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부터 체중에 민감했던 건 아니었다. 임신 5개월, '태교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남편과 오키나와 여행을 떠났다. 멋진 바다 풍경과 함께 셀카를 찍어서 가족채팅방에 올렸는데 친정엄마에게 온 메시지.
"살찐 거가, 부은 거가." 애써 무시했지만 엄마는 그 후에도 한 번 더 딸의 모습이 살이 찐 건지 부은 건지 확인하려고 했다. 멋쩍게 '살찐 거지ㅋㅋㅋ'라고 답을 보내자 돌아온 메시지.
"관리해야지."
나는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다(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싶지만). 그리고 몇 개월 동안 부산에 있는 친정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엄마가 임신한 딸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일은 두고두고 내게 상처가 됐다. 임신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엄마는 강조했다.
"너무 많이 먹지 마. 살찐 만큼 나중에 다 빼야 한다는 걸 명심해."
생각해보면 엄마는 늘 내 외모를 가장 먼저, 가장 신랄하게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 한구석에는 벽지에 140cm, 150cm, 160cm... 눈금을 그어놓은 공간이 있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세워놓고 키가 자라는 걸 매번 기록해 놓았다. 내 키가 160cm가 넘었을 때 엄마는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고 한다. 키가 작았던 엄마는 그걸 '성공'이라고 표현했다.
내 몸무게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엄마였다. 대학 진학과 함께 떨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오랜만에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살'에 대한 것이었다. 살이 쪄도 걱정, 살이 빠져도 걱정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하비(하체비만)'였는데 엄마는 내게 늘 엉덩이를 가릴 수 있는 상의를 입혔다. 외출복을 입고 나오면 엄마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했다.
"좀 긴 티는 없나."
드라마 <미스티>에는 고혜란(김남주 분)이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엄마는 김남주를 보고 정색하며 말한다.
"너 탄수화물 먹었니? 왜 이렇게 부었어?"
엄마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살아가면서, 특히 여자에게 '외모 자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외모, 성적, 취업, 결혼... 자식의 모든 것이 곧 엄마의 성취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엄마는 훌륭한 관리자가 되어야만 한다. 누구도 아빠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엄마는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가기 전 거쳐야 하는 검열관 같은 존재였다. 독립해 산 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지금도 거울 앞에 서면 엄마의 시선을 느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를 통해 내면화 한 사회적 시선을 느낀다. 그리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내 몸을 어떻게 바라볼지 끊임없이 의식한다.
탈의실에서 울던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