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내리는 청천강.
신은미
비가 오니 푸르디푸른 청천강이 오늘은 하얗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냇가에서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지 수면 위에 작은 물보라를 일으킨다. 수위가 높아져 생겼을까... 나무가 우거진 작은 들판이 섬을 이룬다. 자연 그대로의 강은 이토록 아름답다. 우리들 생명의 근원이다.
2014년 겨울 내가 서울에서 '종북몰이'를 당할 때다. 북한에 대한 '고무찬양' 혐의를 찾으려는 검사의 질문이 떠오른다.
"북한의 강물이 깨끗하다고 강연에서 말했는데 북한의 강물이 어떻게 깨끗할 수가 있습니까?"
"깨끗한 걸 어떻게 해요. 아마 산업화가 안 돼서 그런가 봅니다."
당시 나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받으며 '북한은 아직 4대강 사업을 안 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려다가 말았던 기억이다.
"당신이 맛있다고 말한 대동강맥주를 북한의 전 주민이 마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은 경찰의 질문이 검찰의 강물 질문보다는 조금 더 철학적이었다.
차량은 청천강을 오른쪽으로 끼고 빗속을 헤집는다. 북녘의 동포들은 마을에 흐르는 냇물에 빨래도 하고, 미역도 감는다. 마시기도 한다. 자연이 내려주는 반짝이는 물을 어찌 '더럽다' 말해야 할까.
작은 땅에도 모내기를

▲ 평안북도 구장군. 동포들이 우비를 쓴 채 자전거를 타고 있다.
신은미

▲ 작은 논에 모 심는 평안북도 구장군의 동포들.
신은미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평안북도 구장군으로 들어선다. 우비를 뒤집어 쓴 북녘 동포들이 자전거를 타고 간다. 먼발치에선 한 여인이 우산을 들고 갈 길을 재촉한다.
언덕 아래 붙어 있는, 척박하게 메마른 작은 땅에도 모를 심는다. 비가 내려서 서둘러 나왔을까. 허리 펴는 사람 없이 모두가 드문드문 물이 고인 작은 논에 모를 찔러 넣는다.
1958년 석탄을 캐던 광부들이 발견했다는 이 동굴은 북한에서 가장 긴 동굴이란다. 그 길이가 무려 6km가 넘는다고. 왕복 12~13km를 걸어야 할 텐데 걱정이 미리 앞선다고 말하니 현지 해설원은 "동굴 끝까지 가지 않는다"라면서 나를 안심시킨다.

▲ 평안북도 구장군 '룡문대굴' 입구에서. 뒤로 김정일 위원장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신은미

▲ 룡문대굴 안의 모습.
신은미
세상 만물이 모두 모여 있는 지하의 우주다. 더 이상의 첨언이나 군말이 자칫 이 동굴의 아름다움을 해칠까 두렵다. 한 마디로 땅 위에도, 땅 속에도 '삼천리 금수강산'.
평양으로 돌아간다. 우리에게 북한의 핵시설로 유명한 '녕변(영변)'을 지난다. 주변이 너무 아름다워 차를 세운다. 도로 옆에 강물이 흐르고 저만치 산이 보인다. 저 산이 소월이 노래한 '영변의 약산'일까. 아, 평화롭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노래 속, 상상 속 우리들의 고향, 바로 이 모습이리라. 평양으로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경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거닐며 <고향의 봄>을 흥얼거린다. 옆에서 거닐던 경미가 따라 부른다. 은은한 노랫소리가 영변에 울려 퍼진다.

▲ 평안북도 녕변(영변). 이곳이 바로 '핵시설'로 알려진 그곳이다.
신은미
동포들, 안녕!
2017년 5월 24일, 일찍 일어나 가방을 챙긴다. '조선적십자회'가 보내온 쌀 '기증증서'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챙긴다. 성금을 보내주신 남녘 동포, 해외 동포 여러분들께 그리고 북한에 쌀을 보낼 수 있도록 허가를 발급해준 미 재무부에 보고해야 한다.
언젠가는, 중국에서 구입한 쌀이 아닌 남녘의 '사랑의 쌀'이 북녘 동포들 밥상에 오르기를 기원하며 눈시울을 적신다. 호텔방을 떠나며 드리는, 북한에서의 마지막 기도.

▲ 북한적십자사가 보내 온 쌀 기증증서.
신은미

▲ 공항가는 길, 택시 안에서 바라 본 북한동포들.
신은미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길거리에 붙어 있는 정치 선전구호도, 벽화도 아무렇지 않게 눈길을 스친다. 아직 5월인데 여인들은 양산으로 평양의 따가운 햇살을 가리고 어디론가 부지런한 발걸음을 옮긴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이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작별의 인사를 한다.
공항. 체크인을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경미야, 잘 있어. 이번 겨울에 꼭 올게. 반년 식량 김장도 함께 톤으로 담그고. 그리고 원산에 첫눈이 내리면 마식령으로 스키 타러 가자. 설경이, 설향이한테 이 오마니 잘 갔다고 전해줘."
"기다리고 있겠다"라는 경미를 뒤로 하고 출국수속장으로 향한다.
사랑하는 동포들이여, 안녕!
(* 이 약속은 2017년 9월 1일부터 시행된 미 국무부의 '미국인 북한여행금지 조치'로 인해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 경미와의 작별.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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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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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강물이 어떻게 깨끗합니까"... 검사의 황당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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