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9호 위반? 40년 넘게 11번째 재판 받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희생물 되어 계속 표류중

등록 2019.12.09 09:30수정 2019.12.0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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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법원

서울 서초동 법원 ⓒ 배남효

  
지난 6일, 대학생 시절이던 1978년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징역을 산 피해를 배상받는 민사재판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렸다. 나는 후배와 둘이서 원고 겸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사건 내용과 경찰의 불법수사에 관해 증언했다. 주로 형사에게 체포 연행되어 관악경찰서에 8일간이나 구금되어 강제조사를 받으면서 경찰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관해 증언했다.

불법적인 장기구금, 잠을 재우지 않는 철야조사, 강압적 진술강요, 구타와 체벌 등 수사과정에 있었던 위법성에 대해 변호사와 판사의 질문에 답변했다. 오래 전의 일이라 전부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억울하고 힘들게 당했던 일이라 답변하면서도 새삼 감정이 격해져고 분노가 치솟기도 했다.

대통령 긴급조치9호는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던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것이었다. 박정희의 종신집권을 보장한 유신헌법을 반대하면 처벌한다는 대통령 명령이었다. 헌법을 비판한다고 국민을 구속시키는 엉터리 악법으로, 1975년에 발동되어 박정희가 살해된 1979년까지 유지되었다.
 
 2018년 6월 27일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민사배상을 가로막는 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법에 대한 위헌심판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헌법재판소 앞에서 하고 있다.

2018년 6월 27일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민사배상을 가로막는 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법에 대한 위헌심판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헌법재판소 앞에서 하고 있다. ⓒ 배남효

 
많은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이 유신독재반대투쟁을 하다가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다. 나도 그중의 한사람으로 억울하게 징역 1년을 살았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재판으로 끝나지 않고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꼬리를 물면서 무려 11가지 재판으로 이어오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까지 받은 재판을 보면 1978-79년에 긴급조치위반 형사재판 1심, 2심, 3심 모두 3가지를 받았다. 그후 박정희가 살해되자 사면을 받고, 30여 년이 지난 후에 무죄를 요구하면서 재심을 청구하였다. 재심 재판은 1심과 2심을 거치면서 패소하여 합치면 모두 5가지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하여 긴급조치9호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재판까지 포함하면 6가지 재판을 받은 셈이다. 그후 이 위헌판결을 근거로 손해배상민사재판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민사배상재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으로 부당하게 희생물이 된 것이다.
 
 긴급조치로 징역을 산 사람들을 중심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으로 희생물이 된 민사배상재판에 대해 공동대책을 마련하는 토론회를 열고 있다.

긴급조치로 징역을 산 사람들을 중심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으로 희생물이 된 민사배상재판에 대해 공동대책을 마련하는 토론회를 열고 있다. ⓒ 배남효

 
이미 밝혀진 대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박근혜 정권과 야합하여 긴급조치를 비롯한 과거사 사건의 손해배상을 억지로 막았다. 그 이전에 똑같은 사건이 민사배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못 받게 만든 것이다. 이 때문에 민사배상재판은 1심, 2심, 3심 모두 패소하는 부당함을 겪었는데, 이전에 받은 재판까지 다 합치면 무려 9가지 재판으로 늘어난 것이다.

다시 민사배상을 가로막는 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법과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하여 일부 위헌판결을 받았다. 이 재판까지 합하면 10가지의 재판을 받은 셈이다. 헌재의 위헌판결을 근거로 다시 민사배상재판을 서울고법에 제기하여 11번째 재판을 하면서 심리가 진행중이다. 지난 6일 법정에 출석한 것이 바로 이 재판의 심리였다.
 
 2019년 5월 13일 서초동 법원 앞에서 민주인권단체들이 대법원에게 긴급조치 사건에 대해 사법정의를 실현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년 5월 13일 서초동 법원 앞에서 민주인권단체들이 대법원에게 긴급조치 사건에 대해 사법정의를 실현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배남효

 
지금 긴급조치 민사배상재판의 상황을 보면 양승태 대법원에서 내린 판결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긴급조치9호는 위헌이나 긴급조치9호에 따른 공권력 행사는 정당하기 때문에 국가가 손해배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괴한 판결이었다. 지금 긴급조치 민사배상재판이 많이 열리고 있는데, 대부분 이 대법원 판례에 따라 패소당하고 있다.

법원의 태도는 하급심이 상급심인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패소 판결을 내린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를 부정하고 긴급조치권 행사도 불법이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용감한 판결이 나오고도 있으나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결국은 다시 대법원에 가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저지른 잘못을 시정하는 새로운 판결이 나와야 모두 해결될 것이다. 정권이 교체되어 대법관들도 바뀌고 김명수 대법원장도 사법적폐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니 기대가 된다.


이번 서울고법에서 승소하여 정말 40여 년에 걸친 긴급조치재판이 모두 끝나면 좋겠는데 결과는 알 수가 없다. 만약에 패소하면 다시 대법원에 상고심을 해야 하니, 그러면 모두 12가지 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1978년에 시작된 재판이 2019년에 이르기까지 40년을 넘게 꼬리를 물며 11가지 재판으로 이어오니 지겹고도 힘들다. 하루속히 이 땅에 사법정의가 뿌리내려 긴급조치재판도 완전히 끝나고 정당하게 배상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긴급조치9호 #손해배상민사재판 #박정희유신독재 #억울한 징역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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