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작업 나선 50사단27일 오전 대구시 남구 대명동 일대에서 육군 50사단 제독차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14일 대구에 갔다. 코로나19 대구 31번 확진자가 나오기 4일 전이었다. 내가 사는 전북 군산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개학도 2주간 연기되었고, 에세이 쓰기 모임과 작가 강연 일정이 취소되었다.
대구에 간 이유는 바로 사촌언니의 49재 천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군산 8번 확진자가 나온 이후에 14일 동안 추가 감염자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나설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잔뜩 긴장이 되었다. 이럴 때 묘한 감정이 든다. 누군가의 큰 불행 앞에서 나의 작은 안위를 찾는 모습,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결코 유쾌한 감정은 아니다.
언니가 떠나고 형부와 두 아들이 남았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언니는 20대로 수줍었지만 세상에 대한 기대감에 차있던 모습이었는데, 시간은 언니를 어디로 데려다 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비보를 듣고 한 달이 지났지만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언니가 보냈을 힘들었던 시간을 자꾸만 더듬게 되었다.
내 마음을 편하고 싶어서 천도식에 갔다. 왠지 모를 죄책감도 덜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형부와 아이들에게는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을 테지만, 자신들만큼 아프지 않겠지만, 슬픔을 나누고 싶다고, 같이 울고 싶다고, 그래서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전하고 싶었다.
그저 옆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는 것만이라도 하고 싶었다. 마지막 길을 떠나는 언니에게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가라고, 가서는 많이 웃고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말고 언니 하고 싶은 것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는 길이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대구시외버스터미널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게 평상시와 다름없어 보였다. 같은 나라인데도 군산의 황량한 거리와 달라서 조금 놀랐다.
내가 다녀오고 3일 뒤인 18일 대구에서 처음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 뒤부터 감염자가 급속도로 늘어서 이 글을 쓰는 26일 기준으로는 대구에서만 677명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다 과외하는 학생의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무슨?"
"선생님이 며칠 전에 대구 다녀왔다고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뉴스 보다가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해봤어요."
대구에는 마스크 착용을 안 한 사람도 많더라는 얘기를 수업 중에 했던 기억이 났다.
"걱정이 되는 게 당연하시죠. 증상은 없지만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볼게요."
수업 중에는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다음 질병관리본부 1339로 전화를 했다. 14일에 대구를 방문해서 검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상담원은 발열이나 기침 등의 증상이 없으면 바이러스 검출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전염이 될 수도 있으니 기다리면서 관찰하라고 했다.
김천에 있는 백련암이라는 절에서 천도재를 지냈고, 대구 친정집에만 들렀다. 하지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탔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수업하기도 찜찜하고 가지 말았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했다. 떠난 이를 애도하기에도 힘든 시간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