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지 출마'의 득과 실

중진 교통정리 쉽지 않아

등록 2020.03.03 16:43수정 2020.03.0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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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두고 험지 출마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이를 요구받는 중진들은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김형오 위원장을 위시로 하는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는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최고위원이 경남을 떠나길 바란다. 그러나 홍준표 전 대표는 자신이 고향 대신 민주당이 지난 선거에서 이겼던 경남 양산에 나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태세다. 김 전 최고위원도 고향 출마를 고집하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일부 중진은 타협안을 받아들이고 지역구를 옮겼다. 미래통합당 정우택 의원은 청주 상당을 포기하고 청주 흥덕으로 이주했다. 인천의 안상수 의원도 결국 미추홀을로 옮겼지만 처음에는 중동옹진강화를 포기하고 계양갑 출마를 선언했었다.

선거철만 되면 중진의 험지 출마 요구가 끊이질 않는다. 정당의 지도부는 중진 의원들에게 험지 출마를 강하게 압박하고 현 지역에서는 공천이 어려울 것처럼 으름장을 놓는다. 중진들은 절대로 아끼던 지역을 떠날 수 없다며 맞선다. 중진 의원의 험지 출마론은 대체 왜 선거 때마다 등장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일까.

정당과 후보자 개인은 험지 출마에 대한 입장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정당 입장에서는 험지 출마론이 선거 때 꺼내기 손쉬운 카드다. 당연하게도 모든 정당에는 어려운 지역과 쉬운 지역이 있다. 특정 당 후보의 당선이 거의 확실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사람이 당선된 후에 당에 입당할 '텃밭' 지역에 목을 매는 일은 전체 선거 판도를 감안할 때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다. 때문에 텃밭 지역에 집중하고 텃밭에서 중진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당은 없다.

반면 어려운 지역을 포기하고 선거를 시작하기 전에 포기하는 것은 상대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일임과 동시에 자칫하면 '지역 정당'의 오명을 쓰는 일이다. 정당으로서는 '양지'나 '텃밭'에 출마한 중진을 험지에 보낼 필요성이 매우 크다. 어차피 텃밭의 의석은 잃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중진 한 명을 빼서 남는 자리에 새로운 인재를 배치해서 인적 쇄신도 할 수 있으니 실익이 크다.

이에 부합하는 가장 완벽한 험지 출마는 민주당 정세균 총리의 종로 출마다. 정세균 총리는 전북 무주진안장수의 중진 의원이었으나 2012년 종로에 출마해 거물급 중진 홍사덕을 꺾었고 이후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꺾었다.

전북 지역은 민주당의 세가 강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따라서 이후에 민주당이 무주진안장수 지역을 잃는 일은 없었다. 대신 신인 박민수, 안호영 의원이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까지 성공시켰다.


그러나 개인 입장에서 험지 출마는 주저되는 카드다. 험지에서 승리한다면 정당사를 바꾼 거물이 되고 역사에 이름이 남을 것이다. 대권 후보로 발돋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험지는 괜히 험지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니, 사실은 패하기가 더 쉽다.

당선된 후에도 험난한 싸움이 기다리니, 관리도 쉽지 않다. 보수 정당 출신으로 호남에서 당선, 정당사의 기록을 남긴 전주의 정운천, 순천의 이정현 의원 모두 지역구를 버리고 떠났다. 정운천 의원은 미래한국당으로 떠났고 이정현 의원은 최근 서울 영등포 출마를 선언했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정당과 후보자는 험지 출마에 대해 입장이 다르다. 그러나 험지 출마에 동의해도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 문제가 험지 출마자를 기다린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험지'가 어디냐는 것이다. 황교안 전 대표는 험지 출마론을 꺼냈다가 수십 일을 끌었다. 결국 돌고 돌아 종로에 안착했지만 '당선 가능한 험지'를 찾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김이 빠진 후였다.

20대 총선에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대구도 험지라면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뒤 김부겸 후보에게 대패했다. 새로운보수당 시절 유승민 의원은 대구 동구을 출마를 선언하면서 역시 대구도 험지라고 말한 바 있다. 보수 통합 이후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당시 대구의 중진의원이 대구를 험지라고 말하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교통정리다. 정말 아무도 나가지 않는 선거에 혼자 나간다면 그걸 막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험지라고 해도 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먼저 활동하던 후보는 당연히 험지 출마를 명목으로 이동한 후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험지에서 열심히 지역 활동을 한 자신은 묻히고 험지 출마자가 모든 명분을 다 가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존에 험지에서 활동한 사람을 달랠 방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적절한 방안을 통해 화해를 모색하지 못한다면 험지 출마자로서는 모양이 서지 않는다. 새누리당의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는 제20대 총선에서 마포에 출마했으나 같은 당의 강승규 전 의원이 안대희 후보자에 반발하여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안대희 후보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고 민주당 노웅래 후보에게 패했다.

최근에는 청주 상당의 중진 정우택 의원이 민주당에 유리한 청주 흥덕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미래통합당의 김양희 청주흥덕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후배의 지역구를 빼앗으려는 행위"라며 극렬하게 반발, 갈등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어쨌든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당 내외의 반발과는 상관없이 험지 출마를 밀어붙일 기세다. 공천관리위원회는 홍준표 전 대표가 출마를 선언한 경남 양산을 지역의 추가 공모 방침까지 밝혔다. 중진들의 앞날엔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공천관리위원회 입장에선 반발하는 중진을 어떻게 제압하느냐가 관건이다. 인천 미추홀을의 윤상현 의원은 험지 출마를 요구받자 탈당했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묘수를 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강한 기세로 중진을 제압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치 #총선 #험지 #중진 #출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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