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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1220화

출근길이 막히다니... 대구에서 이게 얼마 만인가

[코로나19에 잠식되지 않기 위한 나만의 습관] 소소하고 별것없는 일상을 소중하게

등록 2020.03.13 08:28수정 2020.03.1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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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환자가 나온 지 어느덧 50여 일이 지나고 있다. 3월 12일 0시 기준 확진환자는 7869명에 달한다. 첫 확진자가 나오고 한 달여 만인 2월 28일경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높아졌는데, 그때쯤 내가 사는 대구에선 이미 일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사실 가까운 주변에 확진자가 있는 건 아니어서 처음에는 실감이 잘 안 났다. 그러다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확진자 수치를 속보니 특보니 하며 알리는 뉴스, 길가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 한산하다는 뉴스, 생필품 사재기로 어느 마트에는 물건이 동났다며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뉴스들을 내내 보고 들으니 어쩔 수 없이 두려움이 생겼다. 그러면서 내 일상도 점점 달라졌다.


우선 빈말로라도 "밥 한번 먹자" "술 한잔하자" 하는 약속들이 쑥 들어갔다. 하필 코로나19가 덮치던 무렵, 일할 데를 한 곳 더 정해 '투잡' 생활을 시작했다. 새로운 업무에, 달라진 생활에 시달리니 편한 사람들과 술이라도 한잔 나누며 속풀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각별히 조심하자'라는 마음만으로는 안 될 일이라 아쉽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계속됐다.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누군가의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은 그렇게 우리를 스스로 움츠러들게 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업무 중에 커피 한 잔 한다든가 잠시 휴식을 갖는다든가 하는 일조차 심리적 부담이 생겼다.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는 풍경이 거의 사라졌다는 얘기다.

차가 막히는 게 이리 기쁠 줄이야
 
출근길 차량 행렬 늘 차량 정체가 있던 곳도 확연히 차량이 줄었는데 오랜만에 차가 막혔다.
출근길 차량 행렬늘 차량 정체가 있던 곳도 확연히 차량이 줄었는데 오랜만에 차가 막혔다. 김은경
 
며칠 전 출근길 신호 대기에 걸려 정차해 있을 때의 일이다. 신호가 두 번이나 바뀌고서야 통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했다. '아! 이런 게 반갑다니' 하며 나도 모르게 좋아하고 있었다.

원래 두세 번은 신호가 바뀌어서야 통과할 정도로 막히는 곳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길이 텅텅 비어 무조건 한 번에 통과했다. 오랜만에 차가 '막혔다'는 것이 이렇게 기쁠 줄이야. 그 사소한 일이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 반가웠다.
     
지금은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약 2주간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하는 기간이다. 이 캠페인 이전에도 이미 대구는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됐던 것 같다.

대신 심리적 거리는 되레 가까워진 경험도 했다. "별일 없지?" "괜찮지?" 하며 대구의 친구와 친척들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의 지인들도 걱정된다며 다정한 안부를 물어왔다. 한두 통 전화를 받다 보니 나도 다른 이들의 안부가 걱정되고 궁금해져서 어느새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괜찮아? 별일 없지? 마스크는 구했어?"
 
"괜찮아? 별일 없지?" 다른 지역의 지인들이 보내온 마스크와 먹거리
"괜찮아? 별일 없지?"다른 지역의 지인들이 보내온 마스크와 먹거리김은경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어도 무너진 일상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어둡게 한다. 일명 '코로나 블루'.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불안감과 스트레스로 우울한 사람들이 늘고 있단다. 당연하다. 일상이 무너진 느낌은 몹시 마음을 지치게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막연한 공포는 아무 생각 없이 행하던 별것 아닌 행동도 신경 쓰게 만든다.


별일 없을 거라고, 위생 관리 잘하고 면역력 기르며 건강히 생활하면 별거 아니라고, 머리로는 알면서도 자꾸 마음은 가라앉고 어두워졌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공원 산책을 즐기시던 아버지도 소파에 앉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셨고, 매일 가던 스포츠센터가 임시 휴업을 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친구도 우울해 했다. 독서모임이니 가죽공방이니 소소하게 즐기던 취미생활도 모두 중단. 일제히 '잠시 멈춤'한 일상에 사람들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너무 우울한 마음에 단골 꽃집에 갔다. 우울하고 지칠 때면 천 원, 이천 원을 주고 꽃 한 송이를 사는 습관이 있다. 포장도 않고 한 송이를 사서 집에 와 꽂아 두고 가만히 바라보면 세상일이 그리 대단하지 않게 여겨져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마저 실패했다. 단골 꽃집 문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2월 24일~3월 8일까지 임시 휴무 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것도 원래 3월 1일까지라고 썼던 것을 8일까지로 수정했다. 저 날짜가 또 미뤄질까. 대체 언제까지...? 그래서 마음은 또 어두워졌다.
     
안톤 체호프에게 배우는 일상의 자세
 
안녕, 꽃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휴업하는 가게가 늘고 있다.
안녕, 꽃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휴업하는 가게가 늘고 있다.김은경
 
뭐하지? 뭘 하면 내 일상을 지킬 수 있을까. 고작 꽃 한 송이 이야기를 하기엔 지금 우리 일상이 너무 모질고 심각한 것 같지만, 요즘처럼 마음이 시달릴 때면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풍경에서 위안을 얻는다. 도로에 차가 정체돼 서 있거나, 주문한 책이 담긴 택배상자가 문 앞에 놓여 있거나, 장바구니 카트를 끌고 시장으로 향하는 아주머니만 봐도 기분이 좋다.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일수록 소중하게 느껴지고 안심하게 된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는 술에 찌들어 매일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나약한 어머니, 골칫덩이 형제들 사이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급기야 가족과 떨어져 혼자 돈 한 푼 없이 남의 방(집이 아니다, 방이다) 한쪽 구석에 얹혀 지내며 스스로 생계를 이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가 열여섯 살 때 일이다.

체호프는 이런 비참하고 괴로운 나날 속에서 어느 순간 마음을 다잡고 가정교사 일을 해 생계를 해결하고 자신의 학업에도 심취한다. 그때 그가 매일 아침 습관처럼 한 일은 얹혀 지내던 남의 방 한쪽 구석의 자기 공간을 정갈히 매일매일 치우는 것이었다. 내가 최근 낸 책인 <습관의 말들>에도 그의 이야기를 담으며 이렇게 적었다.
 
"일상의 태도가 성실해질 때 습관이 된다. 그리고 어떤 태도를 선택하는가도 습관처럼 반복된다. 나는 체호프가 방의 한쪽 구석을 늘 정갈히 했다는 것이 인상 깊다. 그 정갈한 아침마다 그는 매일 달라지고 스스로 소중해졌을 것이다." - <습관의 말들> 37쪽
 
요즘 내가 코로나19에 잠식 당하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습관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침에 눈 뜨면 침대에 누운 채 책 두 장을 읽는다.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부터 들여다보는 버릇을 없애려고 지난해부터 시작한 습관인데, 요즘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 한다. 눈 뜨면 스마트폰으로 뉴스부터 들여다보고 싶으니까. 실제로 한 2주일은 그랬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안톤 체호프처럼 잠자리를 정돈한다. 조금 일찍 서둘러 청소도 한다. 매일매일 방도 닦고 설거지도 바로바로 열심히. 주변을 최대한 정갈히 하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단정해지는 느낌이라 안정감이 생긴다. 지난해 작정하고 습관으로 굳히자며 결심했던 행동들인데, 일상이 무너진 것 같아 불안한 요즘 의외로 마음을 가지런히 다잡아 주어 도움이 된다.

새롭게 만들고 있는 습관은 외출했다 돌아올 때는 물론이고 수시로 손을 씻는 것이다. 당연한 행동 같지만 나는 소홀했던 행동이다. 솔직히 아직도 습관화되지 않아 자꾸 잊는데 무의식중에도 잊지 않고 습관이 되어 절로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이렇듯 내 일상을 유지하는 방법은 아주 소소하고 별것 없다. 아주 소소하고 별것 없는 일상의 풍경이 유독 소중하게 다가오는 요즘, 아주 소소하고 별것 없고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행동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는 내 일상을 지키고 있다.  
       
마음이 아플 때, 슬플 때 혹은 즐거울 때를 겪는 사소한 태도,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는 사소한 말은 그 사람의 삶의 습관이다. 그 사소한 태도와 버릇들은 삶을 대하는 그 사람의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아픔과 슬픔, 애도를 달랠 때, 기쁨과 즐거움과 충만함을 누릴 때 무엇으로 달래고 누릴까. 세상사를 겪기 위한 당신의 소소한 습관이 부디 향기롭고 가볍기를 바란다. - <습관의 말들> 63쪽
 
동네 골목길 일상 풍경 그럼에도 봄이 왔고 봄꽃도 핀다.
동네 골목길 일상 풍경그럼에도 봄이 왔고 봄꽃도 핀다. 김은경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습관의 말들> 저자입니다.

습관의 말들 - 단단한 일상을 만드는 소소한 반복을 위하여

김은경 (지은이),
유유, 2020


#코로나19 #일상 #습관의말들 #습관 #힘내라대구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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