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꽃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휴업하는 가게가 늘고 있다.
김은경
뭐하지? 뭘 하면 내 일상을 지킬 수 있을까. 고작 꽃 한 송이 이야기를 하기엔 지금 우리 일상이 너무 모질고 심각한 것 같지만, 요즘처럼 마음이 시달릴 때면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풍경에서 위안을 얻는다. 도로에 차가 정체돼 서 있거나, 주문한 책이 담긴 택배상자가 문 앞에 놓여 있거나, 장바구니 카트를 끌고 시장으로 향하는 아주머니만 봐도 기분이 좋다.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일수록 소중하게 느껴지고 안심하게 된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는 술에 찌들어 매일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나약한 어머니, 골칫덩이 형제들 사이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급기야 가족과 떨어져 혼자 돈 한 푼 없이 남의 방(집이 아니다, 방이다) 한쪽 구석에 얹혀 지내며 스스로 생계를 이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가 열여섯 살 때 일이다.
체호프는 이런 비참하고 괴로운 나날 속에서 어느 순간 마음을 다잡고 가정교사 일을 해 생계를 해결하고 자신의 학업에도 심취한다. 그때 그가 매일 아침 습관처럼 한 일은 얹혀 지내던 남의 방 한쪽 구석의 자기 공간을 정갈히 매일매일 치우는 것이었다. 내가 최근 낸 책인 <습관의 말들>에도 그의 이야기를 담으며 이렇게 적었다.
"일상의 태도가 성실해질 때 습관이 된다. 그리고 어떤 태도를 선택하는가도 습관처럼 반복된다. 나는 체호프가 방의 한쪽 구석을 늘 정갈히 했다는 것이 인상 깊다. 그 정갈한 아침마다 그는 매일 달라지고 스스로 소중해졌을 것이다." - <습관의 말들> 37쪽
요즘 내가 코로나19에 잠식 당하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습관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침에 눈 뜨면 침대에 누운 채 책 두 장을 읽는다.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부터 들여다보는 버릇을 없애려고 지난해부터 시작한 습관인데, 요즘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 한다. 눈 뜨면 스마트폰으로 뉴스부터 들여다보고 싶으니까. 실제로 한 2주일은 그랬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안톤 체호프처럼 잠자리를 정돈한다. 조금 일찍 서둘러 청소도 한다. 매일매일 방도 닦고 설거지도 바로바로 열심히. 주변을 최대한 정갈히 하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단정해지는 느낌이라 안정감이 생긴다. 지난해 작정하고 습관으로 굳히자며 결심했던 행동들인데, 일상이 무너진 것 같아 불안한 요즘 의외로 마음을 가지런히 다잡아 주어 도움이 된다.
새롭게 만들고 있는 습관은 외출했다 돌아올 때는 물론이고 수시로 손을 씻는 것이다. 당연한 행동 같지만 나는 소홀했던 행동이다. 솔직히 아직도 습관화되지 않아 자꾸 잊는데 무의식중에도 잊지 않고 습관이 되어 절로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이렇듯 내 일상을 유지하는 방법은 아주 소소하고 별것 없다. 아주 소소하고 별것 없는 일상의 풍경이 유독 소중하게 다가오는 요즘, 아주 소소하고 별것 없고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행동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는 내 일상을 지키고 있다.
마음이 아플 때, 슬플 때 혹은 즐거울 때를 겪는 사소한 태도,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는 사소한 말은 그 사람의 삶의 습관이다. 그 사소한 태도와 버릇들은 삶을 대하는 그 사람의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아픔과 슬픔, 애도를 달랠 때, 기쁨과 즐거움과 충만함을 누릴 때 무엇으로 달래고 누릴까. 세상사를 겪기 위한 당신의 소소한 습관이 부디 향기롭고 가볍기를 바란다. - <습관의 말들> 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