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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끝났다고요? 그래도 전 '최소한족'이 되겠습니다

[소소하고 확실한 실천] 육식 매니아의 우당탕탕 비거니즘 도전기

등록 2021.01.21 09:36수정 2021.01.2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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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전에 없던 순간을 매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요즘,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거대한 기후 위기와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 앞에서, 그저 무력하게 손 놓고 있어야 할까요? 그럴 순 없죠! 우리가 살아갈 지구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찾아나서려고 합니다. 시민기자가 되어 같이 참여해 주세요.[편집자말]
우주의 역사는 138억 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1년이라 친다면 인류가 나타난 시간은 12월 31일 23시 54분이라고 한다. 1년의 마지막 날 자정이 되기 몇 분 전 겨우겨우 등장한 인류는, 세상을 온통 제 것처럼 주무르는 이기적인 종족이다.

특히 나는 이기심의 끝판왕이다. 채식주의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그 맛있는 고기를 도대체 왜? 내게 가족끼리 둘러앉아 먹던 치킨은 추억이었고, 회식 메뉴의 꽃은 삼겹살이었으며, 기쁜 날엔 반드시 소고기를, 우울한 날엔 닭발을 먹는 게 인생의 철칙이었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라고 했으니, 고기 정도는 수단으로 대우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니 내 인생에서 채식은 영원히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나라에 전염병이 창궐했다. 햇빛을 못 봐 얼굴이 허옇게 뜰 때까지 집에 있으면서, 할 게 없어 글을 읽었다. 책 먹는 여우처럼 글이 나오는 족족 먹어 치웠다. 인간이 버린 마스크에 다리가 묶인 새를 보았다. 바다거북 코에 박힌 일회용 빨대를 보았다.

급격한 일회용품 사용 증가로 만들어진 쓰레기 산을 보았으며,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가 쓸모없다는 이유로 포대에 담겨 밟혀 죽는 것을 보았다. 도살장에 피를 흘리며 거꾸로 매달려있는 돼지들을 보았고, 수해 피해에 지붕 위로 내몰린 슬픈 눈의 소를 보았다.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아닌데... 이건 아닌데...'

인간에게까지 위험이 들이닥치자 두려웠다. 지난여름, 끝나지도 않던 장마에 목숨을 잃은 이들과 터전 밖으로 내몰린 이들의 이야기가 더는 남 일 같지 않았다. '장마가 미쳤어요'가 아닌 일종의 기후위기였다고 한다. 지구가 보내는 경고인 셈이다.

이제 총구는 인간을 향하고 있다 

인류의 이기심에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식물, 그다음은 동물, 이제 총구는 인간을 향하고 있다. 2100년에 한반도 기온이 7도 상승할 것이라는 기사를 읽고 그 전엔 눈을 감겠노라고 다짐했던 나는, 이제 두려웠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아니, 일어나고 있었다.


플라스틱 칫솔을 대나무 칫솔로 바꾸었고, 카페에 텀블러를 들고 갔으며, 장바구니를 잊은 날엔 꾸역꾸역 두 손으로 짐을 들고 왔다. 그래도 부족해서 계속 공부했다. UN의 추산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가축은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가스의 18%를 배출하는데, 이는 자동차나 비행기의 배기가스보다도 높은 비중이라고 한다. 

맙소사,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육식 소비를 줄이는 것이 먼저였다니. 이것이 내가 비거니즘에 도전한 이유다. 나를 움직인 건 두려움이었다. "일단 일주일만 해보자! 그리고 괜찮으면 계속 하자!" 비거니즘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중 계란과 유제품까지만 섭취하는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을 선택했다. 생선,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는 일주일 동안 입에 대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살 만하다. 일주일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반찬에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육식 매니아였음에도 '못 해 먹겠네! 때려쳐!'라는 생각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일주일 간 먹은 비건 음식 계란과 유제품을 섭취할 수 있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의 삶을 실천했기에 계란과 유제품도 포함된다.
일주일 간 먹은 비건 음식계란과 유제품을 섭취할 수 있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의 삶을 실천했기에 계란과 유제품도 포함된다.고나린
 

다만 시작 전에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냥 식사를 걸러버리거나, 채식이라고 부실한 식단을 섭취하는 일이 없도록 일주일 식단을 꼼꼼하게 짰다. 매끼를 음식답게 차려먹으며 채식 식사는 먹을 게 없다는 편견을 스스로 깨부수었다. 또한 계란이나 우유까지는 섭취가 가능해 빵도 먹고 카페도 갔다. 세상엔 맛있는 버섯이 참 많았고 제철과일은 참 달콤했다.

한국은 채식 불모지지만... 나같은 사람도 '해냈다' 

그러나 불편한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식당은커녕 메뉴조차 거의 없다. 점심시간에 꼭 밖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와야 하는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거의 없었다.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기로 했지만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는 이유로 눈치가 보였다. 결국 마라탕에 채소만 넣어 먹었는데, 육수를 고기로 만들었을 것 같아 자구만 죄책감이 들었다. 심지어 그날밤에 고기를 먹고 괴로워하는 꿈을 꾸며 식은땀을 흘렸다. 비건 불모지는 비건을 자책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로운 점은 강력했다. 채식의 묘미를 알았고, 짧은 기간이지만 체중도 감량했으며, 뿌듯한 기분은 덤이었다. 그리하여 일주일은 지났고 그 이후로 고기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혼자 밥을 차려 먹을 땐 여전히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으며, 환경을 위한 노력도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좀 두려움이 사라졌느냐고? 그것은 아니다. 나의 노력은 먼지 티끌보다 미미하다는 것과 나 하나 움직여 달라질 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계속하느냐고? '어차피 끝났다'고 비관하는 쪽을 어차피족, '최소한 뭐라도 해보자'고 희망을 말하는 쪽을 최소한족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주변 지인들을 최소한족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나의 도전을 보고 자신 역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채식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지인들의 연락을 종종 받는다. 함께 이어가보자고, 혼자 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느냐고 말해오는 지인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도전한다.

그러니 이 글은 육식 매니아였던 나의 반성문이자, 전국에 있는 육식 매니아들에게 던지는 솔깃한 제안이다. 동질감이 느껴지는 사람의 이야기일 수록 더 와닿지 않겠는가. 고기 없이 못 살던 나 같은 사람도 해냈다고, 어렵지 않다고 '직접' 해보고 말하는 진심 가득한 권유다. 비건 불모지를 함께 비옥한 땅으로 일구어 가자고, 자책하는 채식주의자가 되지 말자고 어느 20대 청년이 세상에 던지는 제의다.
#비건 #비거니즘 #채식 #채식주의자 #베지테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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