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2020년 10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 본사 앞에서 ‘갑질 로젠택배 규탄 및 불공정 계약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희훈
번번이 실패한 나의 도전
사실 택배 주문 안 하기를 의식할수록 내가 얼마나 '택배 의존적 삶'을 살고 있는지 확인할 뿐이었다. 택배로 내가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의 선택폭이 넓어졌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들이던 에너지와 시간은 줄었다.
오프라인보다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많으니 가정 경제에도 보탬이 되었다. 아기 기저귀만 해도 오프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은 아기 체형과 맞지 않아 자꾸 소변이 샜다. 여러 제품을 써 보고 더 이상 새지 않는 기저귀를 찾아 매일 하던 이불 빨래에서 벗어났다.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어 화장실 모래만도 한 달에 45Kg을 쓴다. 대형 마트에 가더라도 같은 제품의 고양이 모래를 찾을 수 없고, 다른 모래를 산다고 해도 45Kg을 집까지 옮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매달 고양이 모래를 인터넷으로 사고 택배로 받는다.
지난 가을에 사 입힌 큰 아이 옷들이 전부 작아져 새로 사야 했다. 택배를 줄여보려고 8Kg이 넘는 아기를 안고 백화점에 갔다가 2시간 만에 방전이 되어 돌아왔다. 집에서 택배로 받는 게 얼마나 편리한지 다시 확인했다. 나에게 택배는 멀리 있는 친정엄마의 마음도 배달해 준다.
쌀이 떨어졌다 하면 택배로 보내시고, 어떤 날엔 가마솥에 푹 고아 꽝꽝 얼린 사골과 반찬들을 보내주신다. 코로나로 친정에 자주 드나들기도 어려운 때에 택배가 있어서 우리 집 쌀과 반찬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내 삶에 보탬이 되지만, 노동자에게는 피해가 되는 택배 주문을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은 번번이 실패한다. 미미한 나의 시도가 무엇을 변화시킬지 회의적일 때 특히 그랬다.
사소한 노력이 가진 힘
책 <시간과 물에 대하여>를 읽는데 저자인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 환경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저자가 우리는 앞으로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게 될 거냐고 묻자, 달라이 라마는 우리의 자녀와 손자녀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니 우리 세대의 책임이 가장 막중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는 어딜 가도 목욕을 하지 않고 샤워만 합니다. 방에서 나갈 때는 늘 불을 끕니다. 그렇게 제 나름으로 사소하게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118쪽)"라고 말한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달라이 라마도 그렇다는데 하물며 중생인 내가 어떤 큰 변화부터 바라봤다니. 그제야 '택배를 줄이려는 사소한 노력도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겠다' 싶어 다시 용기가 났다.
택배 안 시키기를 시작한 지 5개월 째, 또 실패할 걸 알면서 다시 다짐한다. 택배 노동자의 과중한 업무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내 탓이라 생각하고 나를 몰아세우면서 택배를 안 시키니 오히려 금단 증상이 심해지는 것 같다.
택배 노동자 입장에서도 생계를 위한 노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번 달에 인터넷 쇼핑으로 꼭 구입해야 하는 것을 적어 보았다. 기저귀, 고양이 모래, 과탄산소다, 내가 읽을 책, 샴푸 이렇게 다섯 번 정도면 될 것 같다. 이번 달에는 다섯 개만 주문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인터넷 쇼핑 창을 보다가 '왠지 안 사면 손해'같거나 '어머, 이건 사야해' 싶으면 바로 사던 내가, 정말 필요한지 한 번 더 고민을 해보게 됐다. 필요한 것은 적어 두었다가 산책 겸 가까운 곳에 사러 다녀올 정도로 변했다.
나 하나 달라진다고 세상이 크게 바뀌진 않지만, 내가 나름대로 사소하게 기여하는 만큼은 변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나의 다짐을 가까이서 보고 있는 남편의 동참 같은 변화 말이다. 나의 택배 주문 안 하기 도전이 실패지만 실패가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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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주문 안 하기, 번번이 실패했지만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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