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란은 품종이 광범위하다. 독특한 색감과 모습을 지닌 희귀한 상품을 찾는 마니아층도 있다. 이 꽃은 파피오페딜룸이다.
김이진
수긍이 되는 이야기지만 한편으로 생각하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서양란 가격은 그다지 비싸지 않다. 다른 반려식물과 비교해 봐도 그럭저럭 중간쯤 되는 가격대다. 비싼 화기를 사용하거나 고급스러운 포장, 장식이 들어간 경우에는 가격이 올라가지만 식물 자체의 가격은 비싸지 않은 편이다. 호접란의 경우 한 포트에 만 원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김영란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서양란이라고 하면 무조건 크기가 크고 꽃망울이 주렁주렁 달린 화려한 모습이 최고였다. 개업이나 승진, 축하 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화분도 큰 것을 선택해 화환과 경쟁할 정도로 몸집을 부풀렸고 리본도 큼직하게 달았다. 그러다 김영란법이 적용되면서 크고 비싼 서양란의 자리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크기에 집착하는 서양란의 시대는 저물었다. 식물이나 꽃 상품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기를 얻기도 하고 속수무책으로 떠밀려 나기도 한다. 식물의 드라마는 조용하지만 격렬하다. 서양란은 크기를 버리고 우리 곁에 가까이 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 꽃이다.
사이즈를 최대한 줄여서 너무 크지도 않고 가격도 저렴한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집에서 누구나 쉽게 키울 수 있는 생활밀착형 스토리가 필요해졌다. 특히 미니호접란은 크기가 반으로 줄어드니까 앙증맞고 귀여운 느낌이 든다.
서양란은 남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이고, 주로 유럽에서 개량되었다. 인공교배종이 많아 700속 25,000종이 알려져 있다. 극지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륙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계의 대가족이다. 추위에 강했다면 모든 대륙에서 자라는 식물군이 되었을 것이다. 흔히 동양란은 향이 있고 서양란은 향이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서양란 중에도 향이 나는 식물이 많다.
착생식물이어서 일반적인 흙에서 자라지 않고 나무껍질이나 이끼, 푸석푸석한 토양에서 자란다. 아예 공중에서 뿌리를 드러낸 채 자라는 반다라는 품종도 있다. 추위에 약한 것과 착생식물이란 것만 숙지하고 있어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그늘지고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적당한 바람도 필요하다.
사망하는 이유 1위는 과습이다. 예전에는 서양란을 심을 때 나무껍질을 자주 사용했는데 요즘에는 수태를 선호한다. 주의할 점은 한 번 물을 주면 수태가 물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물 주는 시기를 길게 잡아야 한다.
아주 서서히 죽어가서 눈치 채기 힘든데 어느 순간 잎이 물컹해지면서 맥없이 쑥 뽑힌다. 내가 잎을 쏙쏙 뽑아본 경험이 제법 있다. 잎 표면의 쭈글거리는 형태를 보고 이쯤 되면 뽑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늘 적중하곤 했다. 꽃과 잎에도 물이 닿지 않도록 조심한다. 물 주는 호흡만 딱딱 맞춰도 키우는 품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적당한 무심함이 필요한 호접란
서양란 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품종이 호접란이다. 나비와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고 행복이 날아든다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호접란은 차분하고 전통적인 공간에는 찰떡으로 잘 어울리고 막상 들여놓으면 모던한 공간이든, 빈티지 공간이든 어디든 별 무리 없이 어울린다. 좀 튄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초록식물에 익숙하다면 화려한 색감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연한 색이나 흰색 정도는 괜찮다. 개량한복을 입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첫 나들이는 경복궁으로 시작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동네 공원에도 가고, 카페에도 자연스럽게 다니게 된다. 서양란도 첫 시작은 낯설지만 몇 번 보면 익숙하고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