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유강리 형산강변에서 열린 '제77회 식목일 기념 전경련과 함께하는 희망나무심기' 행사에서 포항 제2리라유치원생들이 꽃삽으로 나무에 흙을 덮고 있다.
연합뉴스
"어제가 식목일이었어?"
못 느끼는 게 당연하다. 아무도 이날 나무를 심지 않으니까. 더구나 공휴일도 아니고... 현장에서는 이미 나무심기의 적기가 3월 중순이란 걸 알고 있다. 식목일을 나흘 앞두고 한국일보 기자가 국내 최대 규모 묘목시장(경북 경산종묘산업특구)을 가봤더니 오가는 차량 하나 없이 썰렁했단다. 대목은 이미 한 달 전에 끝난거다.
"나무를 식목일에 맞춰 심는다는 건 옛말이에요."
벌써 10년 전부터 식목일을 3월로 앞당기자는 논의가 계속되어왔다. 기후변화로 한반도가 더워졌기 때문이다.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나무심기 가장 좋은 기온은 6.5도인데, 최근 10년간 식목일의 서울 평균온도는 10.6도, 남부지방은 더 높다.
지난해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국민 여론도 3월도 당기자는 의견이 50%를 넘는다. 그런데 왜 식목일을 앞당기지 못할까? 강력한 탄소흡수원인 나무와 숲에 대한 전 국민실천의 날로 식목일의 위상을 더 강화해야하지 않을까?
이렇게 필자가 발송하는 뉴스레터를 통해 열변을 토했더니 그 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식목일을 이런 식으로 바꿔보자'는 답장이 오기 시작하는데 내용들이 신박했다. 말 나온 김에 다양한 분들께 의견을 물어봐 보강취재를 했다. 그랬더니 한 편의 즉석 '세미나'가 됐다. 집단지성의 힘을 활용한 간이 심포지움이랄까?
모두 다섯 명의 시민들 의견을 추려서 소개한다. 공통점은 딱 하나, 단순히 날이 더워졌으니 나무심는 날을 당기자는 게 아니라 '숲과 나무를 다시 보고 실천하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식목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야 지지받을 수 있다
서용민 더툴스 대표는 손꼽히는 광고마케팅 전문가이다. 제일기획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다양한 품목의 광고 콘셉트를 만들어온 그는 식목일을 왜 앞당기지 못하는지 답답해하는 필자의 글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순전히 캠페인 차원에서 보자면…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식목일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캠페인을 통해 무언가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그 변화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봐요.
단순히 '기온이 높아졌으니 식목일 날짜를 당기자' 보다는 좀 더 시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을까. 나무를 심는 것 뿐 만 아니라 가꾸고, 보호하고, 활용하고 또한 그 의미에 대해 공유하는 날로.
그래서 나무를 심는 식목일이 아니라 아예 '나무의 날'로 바꿔서, 가능한 사람은 나무를 심고, 학교에서는 나무를 공부하고, 가정에서는 반려나무도 방문하고, 직장에서는 근처 가로수를 정비하는 식의, '식목일을 옮기자'에서 '나무의 날을 새로 지정하자'는 쪽으로 해야 결과적으로 날짜를 옮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서용민 더 툴스 대표)
우리 아파트 앞 '소나무' 부터 다시 보는 날
노건우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새로 나무를 심는 것보다 이미 심겨진 나무와 숲을 잘 가꾸는 것에 방점을 뒀다. IPCC(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 과학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숲과 나무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파트 앞에 조경용으로 심겨져있는 소나무 이야기를 꺼냈다. 충격적이었다.
"소나무는 대표적인 행정편의주의의 사례입니다. 소나무 자체가 기후변화에 적응력이 떨어지는 수종이에요. 각종 병해충으로 인해 이미 남부지방부터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걸 가장 익숙한 수종이라고 해서 조경용으로 많이 심어놓은 거죠.
특히 좋은 아파트 단지일수록 산에서 잘 크고 있는 큰 소나무를 뽑아서 심어 놓습니다. 강원도나 경북 지역에서. 옮겨오는 과정에서 이를테면 세 그루 옮겨오면 한 그루 죽는 식입니다. 엄청나게 비싸고 가치있는 소나무인데 그런 식으로 죽어요. 수십년 수백년 살던 곳에서 뿌리 뽑혀왔는데 당연히 적응력이 떨어지죠.
게다가 요즘은 아파트 단지 마다 지하 주차장이 있기 때문에 토심 확보부터 어려워요. 너무 토심이 얕아서 뿌리활착이 힘듭니다. 그 소나무가 보유한 탄소보다도 이걸 캐서 가져오는 이동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이 더 많고요."(노건우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실제로 한국조경학회지에 게재된 '강원지역 대형 조경수 서울 이식에 따른 탄소 배출 연구'에 따르면 30년생 강원지역 소나무 1그루를 이식하지 않을 경우, 50년을 더 살면서 저장할 탄소량은 약 90kgC/그루인 반면, 서울로 이식해 오는 과정의 장비 및 인력 탄소배출량은 약 113.69kgC/그루였다. 소나무 한 그루가 여생 동안 탄소를 저장하는 양보다 이동과정에서 약 1.26배 많은 탄소가 배출되는 셈이다.
우리 아파트, 우리 도시의 탄소흡수원을 다시 보는 날
수도권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북 영천군에서 250년된 소나무 큰 그루를 아파트 주민들의 번영과 건강을 위해 심었다고 알리고 있다. 이상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을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답답하다며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있는 숲과 도심 녹지를 어떻게 온전하게 잘 보전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우선이라고.
"도심 녹지 중 공동주택 내 녹지 비중도 적지 않을 텐데요, 사유지라는 이유로 무분별한 가지치기와 농약 사용이 빈번합니다. 보통 아파트 분양 후에 시공업체 전문가가 조경을 관리하고요. 2년 후 하자 보수 기간이 끝나면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관리합니다. 그런데 아파트 관리의 기준인 각 시·도 '공동주택 관리규약'에는 가지치기 등 나무 관리에 관한 규정이 없어요.
농약을 사용할 때에도 어린이나 고령자 등 거주자에 대한 안전 기준도 없어 보입니다. 아파트 관리소 직원들에 대한 조경교육이나 장비 지원 등 공동주택 녹지 공간 설계·관리 기준 마련 방안이 필요해요." (이상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두 연구원의 말을 듣다보니 나무가 좀 더 피부로 와닿았다. 저 멀리 차를 타고 가는 식목일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안에 있는 혹은 입구에 있는, 그리고 내가 걷는 거리에 심겨져 있는 그 많은 나무에 대한 관심으로 '심리적 거리'가 단축됐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밤나무가 지역의 상징 나무라고 해서 가로수로 밤나무를 많이 심었어요. 그런데 밤나무는 가로수에 맞지 않은 수종이에요. 나무를 심는다면 제발 지역 특성에 맞게 잘 자랄 수 있고 탄소 흡수율이 높은 수종을 골랐으면 좋겠습니다. 관련 공무원들의 인식도 바뀌었으면 해요." (이상아 연구원)
노건우 연구원과 이상아 연구원은 식목일 논의가 서울과 경기도와 같은 수도권에서는 '신도시 개발과 도심내 녹지'에 대한 공론화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꺼냈다. 탄소를 흡수 저장할 뿐 아니라 생태적 가치가 너무나 큰 나무와 숲이 개발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훼손되면서도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계속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 경기도와 같은 지역의 도시계획에는 반드시 기본값으로 녹지생태계를 위한 녹지면적 비율과 관리방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도시 숲 바이오매스 총량제 등 도시 전체의 탄소흡수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도 필요해요."(이상아 연구원)
숲을 잘 가꿔서 산불을 예방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