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꽤나 놀라웠던 모양이다. 고등어가 쓴 글.
진혜련
"여름,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여름, 저 물 마시고 와도 돼요?"
아이들은 나를 '여름'이라고 불러놓고 쑥스러운 듯 수줍게 웃었다. 금요일에는 아이들이 보통 때는 잘 하지 않던 질문까지 하며 유난히 내 주위를 맴돌았다. 어떤 날은 급식을 먹으러 가는데 누가 와서 내 손을 슬며시 잡았다.
"여름, 같이 가요."
평소 나를 좀 무섭게 생각하고 어려워하던 아이였다. 무엇이 아이로 하여금 내 손을 잡게 만들었을까? 나는 아이의 통통한 손을 잡고 아이가 해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급식실까지 걸어갔다. 교실에서 닉네임 부르기를 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다정함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키우고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닉네임 부르기를 매번 성공적으로 해낸 건 아니다. 나의 한계를 느낀 날도 있었다. 하루는 아이들이 복도에서 심하게 뛰었다. 여러 번 주의를 줬는데도 행동이 고쳐지지 않아 나는 화가 단단히 났다. 그때는 차마 아이들의 닉네임을 부르기 어려웠다.
나는 결국 호칭 없이 아이들을 엄하게 혼냈다. 내가 좀 더 성숙한 선생님이었다면 닉네임을 부르며 너희들이 다칠까 봐 걱정된다고 내 솔직한 마음을 전하면서 따뜻하게 타이를 수도 있었을 텐데. 당장 화가 나는 마음에 아이들을 너그럽게 품지 못했다.
금요일을 닉네임 데이로 정해놓긴 했지만 이제 우리는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닉네임을 쓴다. 얼마 전 우리는 우리반을 통칭하는 닉네임도 정했다. 나는 아이들을 부를 때 '얘들아' 대신 '별똥별'이라고 부른다.
내가 "별똥별,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국어책 펴세요"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싱글싱글 웃으며 "네. 여름"이라고 답해준다. 호칭만 바꾸었을 뿐인데 동화 속 교실 같은 장면이 우리 교실에서도 펼쳐진다.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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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대신 닉네임, 교실 안에서 일어난 뜻밖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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