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문화재단지의 놀이마당. 자연석을 박아 만든 반원형의 관중석이 길게 이어져 마치 대학의 노천극장 같았다.
장호철
얼마 전, 탁자가 안 보여서 중국산 접이식 탁자를 새로 들였다. 나는 어디 그늘 좋은 나무 아래 탁자를 펴고 준비해 간 도시락을 먹자며 소풍을 떠나온 것이었다. 도시락은 밥에다, 김치와 참죽나물 고추장장아찌, 상추·풋고추에 쌈장 등 찬합 3개가 다였다. 아내는 '풀밖에 없어서'라면서 마트에서 통닭 한 마리를 사 넣었다.
정오께 문의문화재단지 주차장에 닿았는데 시간이 어중간했다. 우리는 통닭 몇 조각으로 허기를 늦추고 양성문(養性門)을 지나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단지는 성문을 지나 오른쪽 산자락에 펼쳐져 있었다. 언덕을 오르니 널찍한 놀이마당이 나타났는데 자연석을 박아 만든 반원형의 관중석이 길게 이어져 마치 대학의 노천극장 같았다.
우리는 안동에 살 때, 제천의 청풍문화재단지를 여러 차례 찾아 '문화재단지'에 익숙한 편이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 다목적 댐을 지을 때 수몰 지역 내 문화유산을 원형대로 이전 복원하여 1985년 개장했다. 단지에는 보물 2점 등 모두 43점의 문화재를 옮겨놓았는데, 특히 복원한 초가에 전시한 생활유물 1600여 점이 인상 깊었다.
"청풍문화재단지도 충북이야. 충주댐을 세울 때 수몰된 마을의 유산을 복원한 건데, 여기는 대청댐을 건설하면서 청풍처럼 문화재단지를 조성했네. 안동도 안동댐과 임하댐, 댐을 두 군데나 세웠지만, 문화재단지는 따로 없어. 왜 그럴까?"
"정말! 그렇네. 왜 그랬을 것 같으우?"
수몰 지역 문화를 보전하는 방식, 충북과 경북의 차이
글쎄, 잘은 몰라도 안동은 수몰된 마을 자체를 호수 위쪽으로 옮겨 세우는 방식을 취한 듯하다.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외내'에서 종택과 누정(樓亭) 등 20여 채의 고택을 옮긴 데가 오천 군자마을(와룡면 군자리)이다. 외내는 광산김씨 일족이 600여 년 세거해 온 마을이었는데 수몰되면서 2km쯤 떨어진 군자리로 옮긴 것이다. (관련 기사 :
칠군자 마을에 항일지사의 빗돌이 외롭다)
도산서원 앞 분천마을에 있던 영천이씨 농암종택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도산면 가송리로 옮겨 '분강촌'이라 부르는 고택 마을을 완성했다. 분강촌은 규모나 역사 면에서 오천 군자마을에 버금가는 마을이다. (관련 기사 :
속세를 끊은 마을, 떠나기가 싫었네)
한편,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임동면 수곡(水谷·무실)·박곡·한들·용계마을이 수몰되자 여기 살던 전주류씨 일족이 구미시 해평면 일선마을로 집단 이주한 사례도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고가가 십여 채인 이 마을은 지금 '일선 문화재 마을'이 되었다. 안동의 경우는 혈족들이 세거해 온 집성촌이어서 흩어지지 않고 다시 모여 사는 게 가능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