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 베이비'가 다시 주목 받은 이유

아기모델인 ‘앤 터너 쿡’ 지난 3일 별세... 엄마와 아빠가 함께 만든 사랑의 양식

등록 2022.06.09 09:23수정 2022.06.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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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erber 사 홈페이지 화면 캡처.

gerber 사 홈페이지 화면 캡처. ⓒ gerber

 
얼마 전 미국 이유식 브랜드 '거버'의 아기모델인 '앤 터너 쿡'이 지난 3일 95세로 사망했다고 보도됐다. 건강한 아기를 상징하는 '거버 베이비' 캐릭터는 사뭇 다른 우리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지금이야 이유식이 보편화됐지만 반세기 전만해도 아기 이유식은 고사하고 분유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젖을 뗄 무렵 엄마들은 밥을 잘게 씹어서 아기 입에 넣어 주었다. 나 또한 그렇게 먹으며 자랐다.

이유식이 없다보니 자연적으로 아기들의 수유 기간도 길었다. 다산(多産)으로 아기들 젖이 모자라 굶을 때가 많았다. 엄마는 젖이 나오지 않으면 동냥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절초풍할 일이지만 그때는 모유를 '품앗이' 하듯 나눠 먹였다. 아마 우리나라의 이유식은 모유가 대신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변변한 이유식이 없던 시절 60~70년대 우리나라에서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가 유행했다. 해마다 잘 생기고 토실토실한 우승한 우량아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나중에 아기를 상품화한다는 이유로 폐지됐지만 모유 대신 분유를 권장하던 시절의 풍속이다.

1930년대 나타난 미국의 이유식은 거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캔 통조림처럼 이유식을 만든 것이 시초다. '도로시 거버'는 1927년 생후 5개월 딸에게 야채와 과일을 듬뿍 넣고 갈은 이유식을 손수 만들어 먹였다. 문제는 매번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도로시는 어느 날 남편에게 "캔 유아식은 왜 못 만들어?" 불평 섞인 제안을 했는데 이것이 이유식 상품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남편 댄 거버는 '프레몬트' 통조림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제안을 받아들여 만든 캔 유아식 시제품은 딸은 물론 주변 아기들도 좋아했다. 이에 회사는 유아식을 본격 생산하기 시작했다. 1931년 캔유아식 상품도 가족 이름을 따 '거버'로 명명했다. 거버는 인기에 힘입어 아기 엄마들한테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도로시와 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이유식에 귀여운 아기 그림을 담으면 엄마들의 관심과 흥미를 더 끌 것으로 예상하고 아기 그리기 대회를 개최했다. 여기서 우승한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앤 터너 쿡이다. 1941년에는 통조림 회사 이름도 아예 '거버'로 바꿨다. 1940년대 거버 유아식은 미국 가정의 아기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거버 베이비의 주인공 이름이 근 50년 1978년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정작 거버 이유식에 주목하는 것은 도로시의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는 교훈이다. 모성애도 한몫 했을 것이다. 당시 캔 이유식 제조는 무모한 발상이었다. 미국 부모 대다수가 유아식을 사치품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만약 남편이 도로시의 제안을 무시했다면 거버의 탄생은 불가능 했을지 모른다. 캔 이유식은 엄마와 아빠가 함께 만든 사랑의 양식인 셈이다.


1940년대 거버의 "오 베이비! 너만을 사랑해" 광고문구는 오늘날까지 거버사를 지켜낸 기업의 모토이다.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엄마가 믿을 수 있는 회사로 거듭나면서 거버는 다양한 이유식을 개발하고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 유모차, 의류 등 신상품도 출시해 모두 성공했다. 이런 역사와 배경 덕분에 거버 이유식의 아기모델은 죽어서도 그의 이름과 족적을 다시 한번 세상에 남길 수 있었다.
#이유식 거버 #도로시 거버 #거버 베이비 #우량아선발대회 #앤 터너 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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