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의 수제비에도 예닐곱 가지의 재료가 조화를 이룬다.
서인희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와 방학 내내 함께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맞벌이 가정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의외의 복병을 만났습니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와 보낸 한 달, 가장 어려웠던 숙제는 '밥'이었습니다.
밥을 짓는다는 것은 차라리 예술적인 행위에 가깝습니다. 이미 온전하게 존재하는 재료들을 분배하고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듭니다. 한식의 경우에는 특히 한 가지를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만약 밥과 국, 두 가지 반찬으로 구성된 한 끼라면 그 네 가지 사이의 어울림도 생각해야 합니다. 영양적 균형을 고려하고, 플레이팅도 아름다워야 한다면 신경 쓸 일은 몇 배로 늘어나게 됩니다. 정말 창조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은 하루에 두 끼의 밥을 먹습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어려워집니다. 이 미션을 매일 두 번 완수해야 하고 심지어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쉼 없이 이어 나가야 합니다. 아침마다 "오늘 점심은 뭐 먹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을 먹고 나면 "저녁은 뭐 먹지?" 묻는 시간을 무한 반복하던 중 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 사람은 왜 하루에 두 번이나 밥을 먹을까?"
아이의 질문을 받고 매일 두 번 혹은 세 번씩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보다 그 밥을 짓는 사람들의 일상이 떠올랐습니다.
전업주부도 직업으로 인정하나요?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노동은 대부분 주부의 몫입니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에도 일을 나눈 비율이 다를 뿐 '주부'의 노동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외벌이 가정이라면 두말할 것 없습니다. 회사원으로도 살아보고 전업주부로도 살아보니 자연스럽게 가정을 운영하는 노동은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지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몇 년 사이 가사노동, 돌봄노동과 같은 단어가 사회적으로 꽤 공감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부의 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론화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을 보기 위해서는 다른 측면의 한 가지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 일을 해내는 과정의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인정하느냐는 것입니다.
'번아웃 증후군'은 심리학 용어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간단하게는 어떤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어느 시점에 갑자기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무기력해지는 증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번아웃 증후군을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로 판단하여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을 개정합니다. 이때 WHO는 번아웃 증후군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으로 정의하고 직업 관련 증상의 하나로 분류했습니다.
우리는 전업주부를 정말 직업으로 인정하고 있을까요?
주부와 직장인의 번아웃이 다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