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송 아래에서 환하게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야생화, 나도 그렇게 되어가는 중!
박미연
이제사 말이지만 나는 암환자다. 이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당연하게 해왔던 역할과 의무에서 상당 부분 해방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뒷짐지고만 있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막내에게 어찌 저녁밥을 차려주지 않을 수 있으리.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엄마이자 아내인 내가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최소한의 일이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오만가지가 눈에 밟힌다. 아무데나 벗어던진 옷가지, 여기저기 쌓아놓은 물건들... 내가 도맡아서 하기에는 방전된 배터리마냥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신경이 곤두선다.
어느새 아이들의 시간 관리까지 마음이 쓰인다. 아이들이 조금만 늦게 일어나도 그들의 동정을 살피느라 온 신경이 그쪽으로 향한다. 누가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쯤에서 '엄마노릇' 그만 하고 싶다.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암환자로 면책 특권까지 받았는데,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아이들을 향한 관심인지 걱정인지, 죽을 때까지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엄마됨의 후회는 별개
와중에 만나게 된 책이 오나 도나스의 <엄마됨을 후회함>이다. 금단의 열매를 먹듯 두근두근 읽어내려간 책이 나에게 이렇게 공명할 줄이야.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는 현재 나의 상황을 읽고 해석해 주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철학자 다이애나 티젠트 메이어스는 철저히 식민지화된 여성의 환상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 주입의 결과 엄마로서의 길이 유일한 시나리오로 그들 의식 속으로 들어와 다른 선택안을 모두 제거한다." - 37쪽
50,60대 대부분의 중년여성들은 그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규범에 따라 의문과 선택의 여지없이 임신, 출산, 육아의 길에 들어섰다. 어머니가 되는 것이 여성 완성의 길이요, 최고의 미덕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부응했다.
엄마의 헌신 유무에 따라 자녀들의 삶이 달라진다는 유언무언의 세례를 받으며 기꺼이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나쁜 엄마'로 낙인 찍는 사회적 시선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든 요인이다.
그렇다면 나도 엄마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걸까? 답하기 매우 곤란한 질문이다. 엄마됨을 후회한다고 말하는 순간, '나쁜 엄마'가 되기 때문이다. 나에겐 반인륜적이라는 사회적 시선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무엇보다 나의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렵다.
그런데 책속에 등장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과 엄마됨을 후회하는 것과는 별개라고 말한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언뜻 모순된 말처럼 들리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다양한 감정이 깃들기 마련이다. 모순된 감정이 서로 양립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유독 엄마들에게만 반대감정의 양립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죽을 때까지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구받는 엄마들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란 말인가. 엄마를 '성스러운' 자리에 모셔놓는 것, 이것도 엄마들의 인간됨을 억압하는 사회적 폭력 아닐까.
요 며칠간 엄마로서의 삶이 수렁에 빠진 것 같다는 마음, 알고보니 이런 맥락 안에서 고개를 든 것이었다. 엄마됨을 후회함! 만약 내가 경험한 엄마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20,30대로 돌아간다면, 엄마가 되진 않겠지.
막내에게 <엄마됨을 후회함>, 도서관 대출을 부탁하며 뒤가 켕겼었다. 엄마가 자기를 낳은 것을 후회한다고 여길까봐. 그럴리가! 다음번 영덕에서 돌아올 때는 엄마의 굴레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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