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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한 장이 부른 비극... 20대 여성 노린 'OO카페' 실체

['OO 카페'의 민낯 ①] 대화카페 등으로 위장한 변종 성매매업소들... 면접 과정에서 '성희롱'도

등록 2023.02.20 15:24수정 2023.02.2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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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제보를 받았다. 카페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면접을 위해 방문한 곳이 성매매업소였다는 내용이다. 피해자는 20대 초반 여성으로, 알바몬과 알바천국 등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한 뒤 이 같은 일을 겪었다고 전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취재진은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에 20대 여성 구직자임을 밝히는 이력서를 직접 작성하여 공개했다. 곧바로 고수익을 제안하는 연락이 쇄도했다. 이들은 대화카페, 토킹카페, 이색카페 등 '이게 뭐지?' 싶은 카페로 위장하여 접근했다. 일반 카페, 보드게임 카페, 룸카페 등의 평범한 카페로 속여 면접을 유도하는 곳도 있었다.
   
업주들은 1만 원 이상의 높은 시급을 제안했다. 낮과 밤, 새벽을 가리지 않고 구인 제의는 계속되었다. 취재진은 실제 업소를 방문해 면접을 보기로 했다. 업주들은 면접 내내 '성희롱'을 서슴지 않았다. 단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력서를 공개한 20대 여성은 왜 이런 위험에 노출된 것일까.

취재팀 '라그랑주'는 은밀하고 교묘하게 성매매를 제안하는 서울시 내 변종 성행위 업소를 2022년 한 해 동안 추적했다.

20대 여성 대상 취업 사기, '이력서를 올렸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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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이 20대 여성임을 밝힌 이력서에 총 57개 번호로 약 500번의 연락이 왔다. ⓒ 팀 라그랑주

 
20대인 세아(가명)와 효은(가명)은 첫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한 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했다. 이들은 면접을 위해 'OO카페'를 방문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면접 자리에서 "명백한 취업 사기를 당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어떤 일을 겪었을까.
   
세아는 "룸카페인 줄 알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대뜸 사장이 가슴 크기를 물었다"라며 면접 보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에게 룸카페는 보드게임을 하고 간식을 먹으며 영화·드라마를 보던 장소로,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자주 가던 곳이다. 그러나 면접을 보며 그는 이곳이 '룸카페'가 아닌 '성매매업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겪은 구체적인 사연은 다음과 같다. 
 
"한 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했어요. 곧바로 룸카페인데 카운터 직으로 내일 면접 가능하냐는 문자가 왔어요. 면접을 보러 룸카페를 방문했어요. 처음엔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맞아줘서 이상한 곳이라고 전혀 생각 못 했어요. 그런데 '몇 살이냐', '대학은 다니냐'라는 질문이 '가슴 사이즈가 어떻게 되냐'는 물음으로 이어졌어요. 저는 조심스럽게 '정확히 뭐 하는 데냐'라고 되물었죠. 사장은 '신개념 대화 카페이고 절대 이상한 곳이 아니다'라고 했어요. 그러다가 어떤 사이트를 보여줬는데 가명인 여성들 아래로 키와 몸무게, 가슴 사이즈가 공개되어 있었어요. '발랄함', '적극적'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었어요. 생각했던 업무가 아니라 나가려는데 사장이 출구 앞에서 길을 가로막았어요.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웠어요."

효은(가명)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면접을 위해 방문했는데, 문에 붙어 있는 문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라고 전했다. 효은의 증언에 따르면 면접 장소는 방마다 잠금장치가 있는 성매매업소였다.
 
"면접을 보는데 사장이 '손님 접대 가능해?'라고 물었어요. 몇 마디 말이 오가고 사장이 직접 룸카페 구석구석을 보여줬어요. 방을 둘러보는데 '성관계와 성행위 금지', '스킨십은 허용'이라는 문구가 문 안쪽에 붙어 있었어요. 저는 놀라서 '스킨십과 성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곳인지 몰랐다'라고 말했어요. 그러다 어떻게 제게 연락을 했는지 궁금해서 질문했죠. 사장님은  'OOO(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이력서 공개한 것을 보고 연락했다'라고 했어요. 커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이력서를 공개했는데 제가 생각한 카페가 전혀 아니었던 거죠. 처음엔 전혀 몰랐지만 면접 보면서 성접대와 스킨십이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곧바로 나왔어요. 친한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말했어요. '이력서를 공개하면 그렇게 된다'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이력서를 내렸어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곳은 말만 카페이지 불법 성매매를 제안하는 은밀한 장소였다. 이들은 면접을 보기 전에 업무 중 '터치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사전에 알았다면 절대 안 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려 도전한 면접은 두 사람에게 악몽으로 남았다. 
   
취재진은 두 사람의 주장과 피해 사실을 토대로, 또 다른 피해자가 없는지 찾아봤다. 그러다 아르바이트 후기를 올리는 한 커뮤니티에 유사한 사연이 많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쾌한 유혹의 늪, 20대 여성 구직자의 안전은...
   
"이력서 올린 사람중에 이런 문자 받..."
"카페 면접봤는데 좀 이상한 거 같아요"
"불법 업소들 구인내용 좀 속이지 맙시다 ㅎㅎ"
   
세아(가명)와 효은(가명)만 그런 일을 겪은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두 사람이 겪은 일은 오랜 시간 누적되어 온 문제였다. 커뮤니티 내 글을 확인해본 결과, 최초로 해당 문제를 제기한 게시물이 올라온 시점은 2013년이었다. 
   
이와 관련된 게시물이 많이 올라온 건 2016~2018년이었고, 이러한 피해 후기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였다. '20대', '여성', '구직'. 단지 일자리를 구하려 했을 뿐인데, 20대 여성 구직자들은 불법 성매매 꾐에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노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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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직 사이트 커뮤니티 내 게시글 중 일부 ⓒ 화면캡처

 
해당 문제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취재진은 2022년 3월 19일부터 8월 17일까지 총 3곳의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했다. 이러한 현상이 20대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것인지 확인 및 비교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만 달리하고 나머지 조건을 통일하여 이력서를 올렸다.
   
이력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이는 23살', '학력은 4년제 대학교 재학 중', '희망업종은 일반음식점과 커피전문점, 레스토랑과 바리스타', '경력은 식당 서빙 경력 있음' 등이었고 가장 최근에 찍은 인물사진도 첨부하여 올렸다. 

여성에게만 쏟아지는 수상한 '○○ 카페'의 러브콜
   
'남성'의 이력서를 열람한 기업의 구인 제의는 '패밀리 레스토랑 서빙', '컨설팅', '호텔 식기세척' 등 예상 가능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같은 조건의 '여성' 이력서를 열람한 기업의 구인 제의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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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성임을 밝힌 이력서에 온 문자 ⓒ 팀 라그랑주

 
여성 이력서를 열람한 기업은 '대화카페', '토크카페', '룸카페', '보드게임 카페', '테마카페', '럭셔리 카페' 등, 앞의 명사만 달리 한 'OO카페'였다. 총 57개의 전화번호로 비슷한 연락이 왔다. 날짜로는 140여 일, 500여 개의 문자를 받았다. 카페의 실장이라고 밝힌 이들의 수상한 일자리 제안은 끊이지 않았다. 
   
서울시 25개 구를 대상으로 이력서를 공개했는데, 경기도 부천시, 고양시, 안양시, 군포시, 광명시 그리고 인천광역시 계양구, 부평구에서도 비슷한 연락이 왔다. 서울 전역과 경기 일부 지역에서 'OO카페'라며 보내온 문자는 '고소득', '출퇴근 자유', '편하게 면접만 보러 와요' 등의 내용을 공통으로 포함하고 있었다. OO카페가 제시한 시급은 최소 1만 원에서 8만 원까지 다양했다. 시급의 평균은 5만 원이었고, "차비를 제공하겠다", "면접 보러 오면 치킨 사주겠다"라는 달콤한 유혹도 난무했다. 
   
"터치 절대 없어요", "이상한 곳 진짜 아니에요", "주류는 절대 안 팔아요", "가볍게 차 한잔하면서 손님과 대화하는 업무예요" 등의 내용이 담긴 문자도 있었다. 취재진이 문자로 "뭐 하는 곳인가요?"라고 묻자, "그냥 음료 마시면서 손님과 대화하는 곳"이라고 설명하는 곳이 많았다. "솔직히 말해 스킨십이 있다"라고 처음부터 대놓고 알려주는 곳도 더러 있었다. 면접 장소를 묻는 말에 정확하게 카페 주소나 상호를 알려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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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임을 밝힌 이력서에 온 문자 ⓒ 팀 라그랑주


유사 성매매업소로 흘러간 이력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취재진은 나이와 성별, 경력 등 개인정보가 담긴 이력서를 비공개로 처리한 뒤인 9월 8일 "예전에 알바구할 때 연락했었던 스토리카페 매니저입니다. 생각나서 연락했어요. 요즘은 알바 안 구하세요?"라는 의문의 카톡을 받았다. 당시 취재진은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돼 이력서를 공개하면서 '안심번호'를 설정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력서를 비공개처리 했음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카톡을 보내온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구직을 희망하는 20대 여성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단순히 이력서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불법 성매매를 제안받은 실태를 제대로 밝혀내야 할 시점이다. 교묘하게 여성을 속여 유혹하는 불법 성매매업소의 실체를 낱낱이 알려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여성은 피해자가 될 것이다. 
   
20대 여성 구직자의 안전이 위협받는 현실... 이력서 한 장이 초래한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 제5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 '격려상' 수상작입니다.
#뉴스통신진흥회 #제5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 #격려상 #팀 라그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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