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쓴 편지입니다.
진혜련
아이들의 눈빛이 살아났다. 자신이 쓴 편지를 작가 선생님이 읽는다고 생각하니 마음가짐이 달라지나 보다. 교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연필을 꼭 쥐고 또박또박한 글씨로 편지를 써 내려갔다.
나는 아이들이 뭐라고 썼을지 궁금해 편지를 쭉 읽어보았다. 어쩜. 아이들의 편지에는 진심과 애정이 가득 묻어났다. 내가 작가라면 편지를 받고 무척 기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선생님들이 순간 너무 부러워졌다.
우리는 작가의 주소를 모르니 책 뒷장에 나와 있는 서지정보를 참고해 출판사 주소로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보내는 사람에는 각자의 이름과 학교 주소를 썼다. '책가방 없는 날'(체험 학습 위주의 수업을 하는 날)에 아이들과 다 같이 편지를 갖고 학교 근처 우체국을 방문했다. 아이들은 우표를 사서 봉투에 붙인 후 두근거린다는 표정으로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그후로 한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다.
"선생님, 편지 왔어요?"
아이들은 기다렸다. 부디 답장이 오기를. 하지만 교무실 우리반 우편함에는 각종 기관에서 오는 광고물만 쌓여있을 뿐 편지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나도 좀 속상했다. 형식적으로라도 잘 받았다는 내용을 담은 인쇄물 하나쯤은 보내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 어디에서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전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인 날, 메신저로 교무실에서 쪽지가 왔다.
"선생님. <해리엇> 작가님이 통화하고 싶다고 연락하셨어요. 번호 남기셨으니 전화해 보세요."
<해리엇> 작가님이라니! 나는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정해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어준다. 그중 아이들이 가장 좋았던 책으로 뽑은 책이 <해리엇>이다.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아이들 못지않게 이야기에 빠져 진한 감동을 받는다. 바로 작가님께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푸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판사를 통해 전해 받다 보니 아이들의 편지를 이제야 받았습니다. 너무 늦게 연락드려 미안합니다. 아이들이 쓴 편지를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아이들과 잠깐이나마 만남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할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자 나는 그만 너무 좋아 발을 동동 굴렀다. 편지를 잘 받았다고 직접 연락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 작가님은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하셨다.
동화책 창작뿐만 아니라 연극도 연출하시고 대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느라 무척 바쁘신 걸로 안다. 그런데도 편지를 보낸 아이들의 마음을 소중히 받아주시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자 하셨다. <해리엇>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따뜻한 마음이 작가님에게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가장 경이로운 답장을 받은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