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판문점 출입 두각 나타내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 26] 김자동의 판문점 취재 시절의 애환

등록 2023.03.16 15:57수정 2023.03.16 15:57
0
원고료로 응원
 1952. 4. 널문리. 초가집에서 바라본 판문점 정전회담장(왼쪽 흰색이 공산 측 막사, 오른쪽 검은 색이 유엔군 측 막사).
1952. 4. 널문리. 초가집에서 바라본 판문점 정전회담장(왼쪽 흰색이 공산 측 막사, 오른쪽 검은 색이 유엔군 측 막사).NARA
 
정치부에 소속하면서 판문점을 출입하였다. 당시 판문점은 굵직한 뉴스거리가 많았다.

△ 김자동 : 인제 정치부 일을 좀 겸해 좀 했고, 그 다음에는 판문점 취재를 대개 국방부 기자들이 했는데, 조선일보에서 국방부 출입하는 기자가 영어를 잘 못하고, 내가 보기에 처음에 정치부 경험하기 전에 어디 가서 출입처를 하나 갖고 싶어하니까, 나더러 대신 따라가 달라고 말이야. 국방부 출입은 사회부고 판문점도 따라서 사회부에서 취급하는 건데, 내가 나가면서 그 일은 정치부 소관으로 넘겨 가지고 판문점 출입을 내가 했어요.

판문점 출입할 적에 내가 거기서 비교적 두각을 나타낸 게, 공식발표는 회담이 끝나면 기자회견을 하고 미국 수석대표가 기자들한테 회담내용을 얘기해 주는데, 나머지는 안에서 하는 얘기를 창밖에서 들어요. 근데 세 가지 말을 하거든, 영어하고 중국어하고 우리말하고, 그런데 세 가지를 다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거든. 그러니까 밖에서 듣고도 내용을 다 베낄 수가 있다고. 말하는 거니까 놓치기 마련인데, 놓치는 건 그 다음번 통역하는 것도 베끼고 하니까. 나는 세 번 이야기하는 거 다 베끼니까. 모두들 와서 '지금 뭐라고 이야기 했죠?' 나보고 물어보고 말이야.

△ 한찬욱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 김자동 : 회의장이 천막이었거든, 천막인데 창문을 열어놓고 회의해요 보통. 특히 더울 적에는 밖에서 다 들을 수 있지. 다 듣는데 세 번 서서 베끼는 거니까 세 번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내용을 다 파악을 제대로 하고.

△ 한찬욱 : 주로 어떤 내용들입니까?

△ 김자동 : 주로 서로 위반했다는 거, 정전협정 위반했다는 거에 대한 비난이면, 또 상대방은 으레 부인하고 그거야 거의 늘 그거지. 기삿거리가 되고 전화로 연락하면 '판문점 특파원발'이라고 해서 신문 내고. 어떤 때 와보면 내가 그런 얘기 안 했는데 신문에 난 적도 있고 말이야. 내가 한 이야기도 빼먹기도 하고. 어쨌든 그래 거기 출입을 하고 출입하는 동안에 국방부 출입기자가 대부분인데 영어를 못 쓰는 사람이 많아요.
   
기자인데도 벙어리 노릇하고, 무슨 일 있어도 내가 나서서 이야기하고. 그러다 보니까 거기선 다른 덴 기자단이 있고 간사란 게 있었는데 출입기자. 거긴 그런 게 없었거든. 농담으로 날 간사라고 부르고 그랬어. 한 2~3년인가 출입하고 했어요. 별 재미도 없고, 기자생활 한 몇 해 해 보니까. 에이 이까짓껏.
   
더군다나(수석) 경무대하고 외무부 출입했는데, 외신이야 번역만 하는 거고 번역은 더 늦을 것도 없고, 배울 것도 없고. 다른 데는 그래도 정부 비난하는 기사도 나오고 하는데 외무부는 없거든. 외무부 내가 출입처에서도 농담으로 외무부 출입하는 애가 다 여당 기자지 야당 기자가 있나 이런 얘기도 했지만, 뭐 외교정책에 대해선 비판대상이 아니었으니까. 무조건 친미반공은 아주 그야말로 국시지. (주석 16)
1953. 4. 11. 판문점 정전회담 연락장교회의에서 부상병 포로 교환 합의서에 양측이 서명하고 있다. 1953. 4. 11. 판문점 정전회담 연락장교회의에서 부상병 포로 교환 합의서에 양측이 서명하고 있다.
1953. 4. 11. 판문점 정전회담 연락장교회의에서 부상병 포로 교환 합의서에 양측이 서명하고 있다.1953. 4. 11. 판문점 정전회담 연락장교회의에서 부상병 포로 교환 합의서에 양측이 서명하고 있다. NARA
 


김자동의 판문점 취재 시절의 애환은 이어진다.

판문점 취재기사는 현지에서 전화로 불렀다. 이튿날이면 <조선일보> 지면에 '판문점 김자동 특파원'이라고 제법 큼직하게 실리곤 했다. 그때만 해도 기자 이름을 다 쓰지 않고 H기자 등으로 영문 이니셜을 썼는데 당시 말단기자인 내 이름이 신문에 많이 실렸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내 기사에 불만이 많았다. 어떤 때는 내가 전혀 하지도 않은 이야기가 실리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내가 자세히 전한 이야기를 전부 다 빼먹기도 했다.


판문점에 출입할 때 발굴기사를 하나 쓴 적이 있다. 비무장지대 내에 민간인 마을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영어실력 덕분에 판문점 취재는 즐거웠고 또 보람도 있었다. 두 해 가량 판문점 출입을 했다. (주석 17)


주석
16> <면담집>, 97~98쪽.
17> <회고록>, 284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자동 #김자동평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찰까지 출동한 대학가... '퇴진 국민투표' 제지에 밤샘농성 경찰까지 출동한 대학가... '퇴진 국민투표' 제지에 밤샘농성
  2. 2 쌍방울 법인카드는 구속된 김성태를 따라다녔다 쌍방울 법인카드는 구속된 김성태를 따라다녔다
  3. 3 낙동강에 푸른빛 독, 악취... 이거 정말 재난입니다 낙동강에 푸른빛 독, 악취... 이거 정말 재난입니다
  4. 4 윤석열 정부가 싫어한 영화... 시민들 후원금이 향한 곳 윤석열 정부가 싫어한 영화... 시민들 후원금이 향한 곳
  5. 5 [단독] "가면 뒈진다" 명태균, "청와대 터 흉지" 글도 써 [단독] "가면 뒈진다" 명태균, "청와대 터 흉지" 글도 써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