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8월 K고등학교 시험지 유출 사건에 대한 광주시교육청의 특별 감사 발표 직후, 해당 학교에서 대응책으로 현수막을 내걸었다.
서부원
시간은 K고등학교 편이었다. 교장자격증을 발급함으로써 불과 3년여 만에 교육청이 K고등학교 앞에 되레 무릎을 꿇은 모양새가 됐다. 교장 자격증을 내어 준 것은 특별감사를 통해 전임 교육청이 내린 징계 요구가 '잘못'됐거나 '무리'한 것이었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이라곤 교육감 하나일 뿐인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여긴 걸까.
엄격했던 사립학교 교장 자격 심사가 형식화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교육청 안팎에서 쏟아진다. '교원의 4대 비위행위'에 대한 일벌백계는 아이들과 학부모, 나아가 시민들과 맺은 약속인데 최근 들어 흐지부지됐다는 지적이다. 교장 자격증 부여를 결정하는 교원양성위원회는 내부인사 6명, 외부인사 3인으로 구성된다. 그중 외부인사 3명이 새 교육감 취임 뒤 모두 교체된 사실은 이번 교장자격증 발급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광주시교육청은 왜 그랬을까. 시민들의 비판이 들끓자 교육청은 언론에 "학교 재단에서 해당 교사에 대해 징계 조처를 내리지 않아 서류상으로 교장 부적격 판정을 할 만한 요인이 없다고 판단했다"라고 핑계를 댔다. 비위행위에 연루된 건 맞지만, 서류상으론 드러나지 않았다는 황당한 해명이라고 생각한다. 편법·불법이 난무하는 학교를 묵인한다면, 과연 교육청의 존재 이유는 뭘까.
공교육 개혁?
개인적인 충격도 크다. 뉴스를 접한 당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온종일 방황하며 하루를 보냈다. 필자는 그간 K고등학교의 반교육적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여러 편 썼고, 시의회가 주최하는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심지어 공중파 방송에까지 출연해서 그 학교를 성토했다. 지금도 해당 학교 교사들과 학부모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성당 미사조차 참례하지 못하고 있다.
K고등학교의 시험문제 유출 사건이 폭로된 뒤, 하루 24시간을 '올인'하다시피 하며 열심히 싸웠다. 인근 학교 동료 교사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는 비난까지 오롯이 감내하며 의지로 맞섰다. 교사이기 전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교육청 감사관실은 물론, 교육과정 책임자까지 나서서 나를 옹호해줬고, 함께 어깨를 겯었다.
당시 일벌백계를 되뇌던 교육청의 호기로움은 지금 온데간데 사라졌다. 문제적 행위에 연루된 이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교장으로 영전하는 현실에 절망한다. 수년간 몸 바쳐 싸웠건만 결국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참담하다. "그래 봐야 너만 상처받는다"는 주위의 동료 교사들의 조언을 새겨들어야 했을까.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데, 이렇게 될 줄 정말 모르셨어요? 교육청에 대한 기대도 접으세요. '붕어빵에 붕어 없고, 교육청에 교육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교육청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일 뿐이에요."
한 동료 교사가 낙담한 나를 위로할 요량으로 건넨 말이다. 그는 교육청이든 학교든 기대가 없으니 실망할 일도 없다면서 웃었다. 교사들의 비위행위를 가벼이 여기는 교육감의 천박한 교육관만 탓할 것도 아니라고 했다. 교육감의 말 한마디에 과거 자신의 판단과 결정을 뒤집는 교육 관료들의 무책임이 더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 많은 교육 관료 중에 비위행위 연관 교사에게 교장 자격증을 주겠다는 교육감의 어처구니없는 결정에 맞서 직을 걸고 직언하는 이가 거의 없다는 게 서글프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교육 개혁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필자는 이번 사달을 한때 '진보 교육 1번지'로 불렸던 광주 교육의 퇴행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으로 규정한다. 퇴행의 조짐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일례로, 아이들의 건강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시행된 매주 수요일 야간자율학습 금지 지침이 사실상 폐지됐고, 심지어 토요일 자습까지 학교장 자율로 맡겨졌다.
일부 사립학교에서는 일찌감치 수요일 야간자율학습을 보란 듯 부활시켰고, 심지어 오래전 사라진 '0교시 수업' 실시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원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전가의 보도다. 단지 교육감 한 명이 바뀌었을 뿐인데, 교육은 거꾸로만 가고 교사들은 무기력해져만 간다. '수토 자습'이 허용된다는 소식에 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 보기가 부끄러운 암울한 시절이다.
"이러다 부모님 다니시던 1980, 1990년대 학교가 되는 것 아닌가요?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는 말이 실감 나네요."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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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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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교육의 퇴행... '징계요구' 대상에 교장자격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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